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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막걸리 붐 일으킨 이동재팬 김효섭 사장
작성일
2011.02.09




한국산 막걸리,    일본을 취하게 하다


가난한 농군의 술이라고 천대 아닌 천대를 받았던 막걸리가 뜨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시장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1995년에 설립된 이동재팬은 요즘 밀려드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매일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 분량(1리터 15병 기준 1천상자)의 이동막걸리가 도쿄 본사의 물류창고에 들어와 바로 거래선으로 빠져나간다.

 

현재 일본에서는 약 45개 업체가 막걸리를 취급하고 있으나 이동재팬이 공급하는 막걸리가 전체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 막걸리업계가 도수를 14도에서 6, 8도로 낮추고 포장을 고급화하는 등 이동막걸리를 견제하고 있지만 이동재팬은 고지 선점의 이점을 살려 시장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달콤한 맛` 강조 여성층 집중공략

 

닛코리~, 맛코리~, 이동맛코리~. 올해 봄부터 일본 모 공중파TV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광고 노랫말이다.

 

일본 여성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닛코리(생긋 웃는 모양)~, 맛코리(막걸리 일본식 발음)’라는 리듬의 이 광고는 이동재팬이 만들었는데 이 노래를 따라부르는 일본인들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김효섭 이동재팬 사장(47). 그는 대학 졸업 때까지만 해도 일본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성균관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만큼 유학을 간다면 중국으로 갔어야 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는 중국이 아닌 일본이 훨씬 낫다는 얘기를 듣고 일본으로 유학처를 정했다.



시잠점유율 60%에 이르는 이동재팬의 이동막걸리는 올해 20억엔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1986년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본어학원에서 1년간 일본어를 배운 뒤 도립대학 연구생으로 1년을 보냈다. 그 후 도쿄국제대학 대학원에 입학해 1990년 석사과정을 마쳤다. 공부를 더 할 생각도 있었지만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오사카에 있던 모 전자부품 수입상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첫 월급이 18만엔(180만원)이었다. 집 월세를 내고 용돈을 쓰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었다. 이 같은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장래가 막막하기만 했다.

 

인생 상담을 위해 절친한 선배를 만나러 도쿄에 들렀다. 그 선배와 함께 바람을 쐬러 들른 곳이 ‘도쿄식품박람회’였다. 그 전시회에서 팩으로 포장된 모 막걸리회사 제품 보관기간이 1년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시골 출신이라 막걸리 유통기한이 짧다고 생각했던 그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막걸리를 들여와 일본에서 팔자’라는 생각이 들자 즉시 실행에 옮겼다.

 

당시 농수산물유통공사 산하 일본 내 자회사이던 한국물산()에 부탁해 수입을 위탁했으며 이를 판매하기 위해 유한회사를 설립해 6개월에 걸쳐 시장조사까지 마쳤다. 그러나 이 자회사는 김 사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설립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결혼자금 명목으로 모친에게서 받은 3000만원만 날렸다. 하는 수 없이 1992년부터는 주류 도매업체인 혼다쇼텐에 영업담당 사원으로 취직했다. 언젠가는 주류 유통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던 만큼 영업활동을 하면서도 짬짬이 일본 내 주류 유통, 상품지식 등을 열심히 공부했다. 아울러 인맥도 넓혀 나갔다. 김 사장이 나중에 회사를 설립할 때 큰 도움을 준 주류 도매업체 경영주인 오바야시 사장도 이때 만났다.

 

1994년 말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이동막걸리를 제조하는 이동주조()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사업계획서에는 일본 현지법인 설립에 필요한 물적·인적 지원을 이동주조 측에서 전혀 받지 않고 회사를 설립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동주조 측이 회사 신설을 승인하자 자본금 1천만 엔을 오바야시 사장에게서 빌려 19957월 이동재팬을 설립했다.

 

회사를 설립했지만 직원은 본인뿐이었다. 그런 만큼 사장이 주문전화를 받는 여직원, 영업사원, 배달사원 등 1인 다역을 해야 했다. 휴대폰과 사무실 전화를 연결해 놓고서 배달 중에 걸려오는 주문 전화를 받았다. 혼자서 승합차에 막걸리 10상자, 진로소주 5상자를 싣고 100km, 200km가 넘는 곳까지 배달을 다니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한 가지만은 꼭 지키자고 다짐했다. “일본은 톨게이트 비용을 비롯한 교통비가 비싼 만큼 한 번 가져간 물량은 반드시 팔고 귀가하자.

 

창업 후 5년째가 되면서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올랐다. 이동막걸리에 대한 홍보와 광고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동막걸리 영업 타깃을 70만 명 가량인 재일동포나 한인들이 아닌 12천만 명인 일본인으로 잡았다. 그런 만큼 광고도 일본인들이 많이 보는 잡지를 위주로 냈으며 지하철 등에는 포스터 광고를 게재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와 그 뒤에 분 한류 열풍도 막걸리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이 같은 순풍에 힘입어 이동재팬은 창업 이래 매년 120%(전년 대비)씩 성장해오고 있다. 회사 설립 때는 한 번 수입해오는 막걸리 물량이 200상자에 불과했지만 1년이 지난 후 1회 주문량이 1천상자로 늘어 한 컨테이너 물량을 채울 수 있었다. 매출도 20068억 엔, 200710억 엔, 201016억 엔으로 계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에는 매출 20억 엔을 기대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60%의 힘

 

이동재팬은 20081억 엔을 들여 12TV채널 텔레비도쿄의 일요일 밤 8시 프라임타임에 막걸리 광고를 내보냈다. 당시 종업원 13명에 불과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1억 엔의 거액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판매 확대를 위한 투자라고 판단해 실행에 옮겼다. 지난해에는 소비자가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로고와 라벨을 제작해 적용했다.

 

이와 함께 2008년 도쿄 우에노에 57평 규모의 안테나 숍을 열었다. 이곳은 막걸리와 함께 묵,, 골뱅이무침, 삼합 등 한국의 전통적 안주 100여 종을 판매하는 음식점으로, 전체 손심의 80%가 일본인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32일 김효섭 이동재팬 사장은 ‘한국 농산물 수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막걸리와 한국 음식의 전도사로서 톡톡히 역할을 학고 있는 셈이다. 또한 영업사원을 통해 막걸리를 차겁게 얼린 샤베트 막걸리, 포도와 바나나 등을 넣은 막걸리 칵테일 등 다양한 음용법을 전파하면서 수요층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도쿄 타카다노바바에 두 번째 안테나 숍을 오픈했고 올해는 4월 말 예정으로 도쿄 이케브끄로의 세이브 백화점에 3호점을 입점할 예정이다. 김 사장은 “안테나 숍 1,2호 점이 모두 인기를 끌자 백화점에서 먼저 입점 요청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시장에서 보리소주의 매출 신장세가 두드러진 점에 착안, 본사에 요청해 쌀 대신 보리를 사용한 막걸리를 들여와서 판매하는 등 사업의 다각화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동막걸리와 별도로 1999년 식품 제조·유통업체인 ‘우리물산’을 설립했다. 한국 유자차, 김치 양념장, 전통김, 소주 등을 주문 제조 또는 수입해서 팔고 있다. 일본시장을 겨냥한 소주와 일회용 커피처럼 마실 수 있는 유자차 등도 개발해 훼미리마트 등 편의점에 납품하고 있다. 우리물산은 지난해 매출 5억 엔(50억 원)을 올렸다.

 

김 사장은 중국 진출도 꿈꾸고 있다. 중국 주류 유통시장과 중국인 음주문화에 대한 시장조사는 끝난 상태다. 다만 중국의 평균적인 경제수준이 일본이나 한국과는 차이가 있는 만큼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최종 중국 진출 시기를 결정할 생각이다.

 


김효섭 사장의 일본 진출 성공노하우


 비즈니스는 신뢰구축이 중요하다.  

 

김효섭 이동재팬 사장이 폐쇄적인 일본 주류 유통 분야에서 단기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도와준 일본인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일본인이 오바야시 사장. 주류 도매사업을 해오던 오바야시 사장은 95년 이동재팬이 설립될 때 1000만엔을 차용증도 받지 않고 빌려줬다.

 

당시 오바야시 사장은 “김효섭 씨는 성실하고 신용이 있어서 꼭 성공할 것”이라며 격려해줬다. 이처럼 오바야시 사장은 당시 자기 밑에서 4개월가량 일하던 김 사장을 무척 신임했으며 독립하려고 했을 때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사장은 “현지인 도움이 없이는 외국인이 타국에서 사업체를 꾸려 나가기가 매우 힘들다. 울타리 노릇을 해줄 현지인을 찾아내 우선 그 사람부터 감동시키고 마음을 사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우물을 파라.

 

김 사장은 92년부터 줄곧 주류 유통 분야에 종사해왔으며 특히 막걸리에 집중했다. 막걸리 분야에서 최고봉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매진했다.

 

사실 13년 전에 일본에서 막걸리를 판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 일본인이 '막걸리'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기 때문. 음식점 10곳을 들르면 5곳에서는 아예 실내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이용객이 많은 음식점은 바빠서 귀찮다고 거부했으며 손님이 없는 음식점은 손님도 없는데 재수없이 장사치가 온다고 거절했다.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그때마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그가 취급하고 있는 막걸리 양은 일본 전체에서 유통되고 있는 막걸리 중 절반 이상에 달한다. 일본시장에서 막걸리를 유통시키는 업체가 무려 20여 곳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시장 점유율이다.

 

여성층을 적극 공략하라

 

김 사장은 이동막걸리를 ‘여성이 선호하는 술’이라고 광고했다. 예부터 텁텁하고 걸쭉해서 육체노동을 하는 도중에 즐겨 마시는 막걸리라는 한국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포지셔닝 전략을 일본시장에서 활용한 것. 이 같은 전략이 적중해 막걸리를 찾는 일본인 중 80% 이상이 여성이다. 막걸리의 달큼한 맛을 선호하는 일본 여성이 많다. 일본 술문화는 자신이 마시고 싶은 술 종류를 선택해 개인별 주량에 따라 적당히 마신다. 보통 한 사람이 3잔에서 5잔 정도 마시는 만큼 막걸리를 많이 마실 때 생기는 숙취나 트림 등 약점이 일본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

 

독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일본 여성들은 6~8도인 이동막걸리 알코올 도수를 선호한다. 맥주보다는 약간 진하고 소주에 비해 약한 술인 막걸리를 순한 술로 생각하는 여성이 많은데 이동재팬은 이들을 적극 공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