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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韓商] 박종범 영산그룹 대표
작성일
2010.10.25


동구권에 한국제품 알려 한해 매출 1조원

 

◆제9차 한상대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에 한국제품을 알리는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종범 영산그룹 대표는 "10년간 우리나라 제품을 러시아와 동유럽에 수출하면서 한국제품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듯이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둔 무역회사인 영산그룹을 세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등 총 9개국에 12개 법인을 운영하면서 매출 1조원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박 대표의 오스트리아 생활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

1996
년 기아자동차의 오스트리아법인장으로 부임하면서 처음 오스트리아와 인연을 맺은 박 대표는 98년 외환위기(IMF)를 겪기 전까지는 그저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되면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박 대표는 한국으로의 귀국을 포기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오스트리아에 남기로 결정했다. 자동차를 판매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은 별로 해보지도 않아 머나먼 타국 오스트리아에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던 박 대표는 한국의 좋은 제품들을 유럽에 판매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무역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


박 대표가 가장 먼저 시작하게 된 일은 사탕 포장지를 한국에서 수입해 우크라이나에 판매하는 조그만 일이었다. 박 대표는 "선진국은 사회ㆍ경제적으로 조직이 완벽하게 짜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일말도 제대로 못하는 한국인이 끼어들 틈이 없어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한국의 집과 재산을 처분해 오스트리아에서 생활을 겨우 이어가는 힘겨운 나날들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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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라고는 달랑 여직원 1명으로 사업을 시작한 박 대표는 신규 바이어를 발굴하기 위해 동유럽 전역을 직접 발로 뛰었다. 1년에 200일 이상 출장을 다니면서 어떤 달에는 비행기를 22번이나 타기도 했다
.


그는 "사업 초기에는 하루에 2시간도 채 자지 못하면서 침대가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사탕을 포장하는 필름 수요가 점차 늘어나면서 2001년부터는 사업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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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필름 관련 제품들을 한국에서 수입해 동유럽에 수출하면서 사업이 본격화하기 시작했고, 원래 전공이었던 자동차 분야의 사업을 하고 싶어 타이어와 알루미늄휠, 엔진오일, 냉각수 등 각종 자동차 부품들을 수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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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그룹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자동차를 수입해 동유럽에 수출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특히 박 대표는 오스트리아 최대 은행인 뱅크오스트리아와 손을 잡고 수출무역금융을 자동차 수입상들에게 제공하면서 대히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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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박 대표의 노력으로 영산그룹 매출액은 20052000만유로에서 20061억유로를 넘어 2008년에는 우리나라 돈으로 1조원인 7억유로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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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기존에 하던 무역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차츰 제조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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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년 슬로바키아 기아자동차 공장 설립과 함께 자동차 개조 사업에 뛰어든 박 대표는 현대자동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 부품을 놓는 받침대인 철제 팔레트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특히 박 대표는 러시아에 자동차부품조립 공장을 현재 건립 중에 있으며 내년 3월 준공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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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한인회 회장이기도 한 박 대표는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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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6월 개관을 목표로 `한인문화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벌써 75만유로를 모금해 다음달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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