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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韓商 이끄는 정한영 휴먼텍차이나 사장
작성일
2010.07.09


집안 반대로 탤런트 접고 미국 유학
반도체·LCD
클린룸으로 中서 성공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한상(韓商) 기업가 정한영(丁漢榮) 휴먼텍차이나 사장은 외모가 예사롭지 않다. 기업인으론 드물게 보기 좋은 콧수염을 길러 단번에 눈길이 간다.

그는 한때 너무 말라 인상이 좋지 않다는 둘째딸 소라 양 권유로 콧수염을 기르게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UC리버사이드대학에 진학할 예정인 소라양은 최근 미스코리아 서울 선으로 뽑혀 상하이 교민사회에서 화제다.

남다른 외모처럼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1977년 문화방송(MBC) 탤런트 9기생으로 방송ㆍ연예계에 입문했다. 길용우ㆍ신신애 씨 등과 동기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6기생이니 3년 후배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집안에서 연예인이 되는 것을 반대해 1978년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 게 계기가 돼 1986년 친형 정규수 회장이 운영하는
삼우이엠씨 일을 도왔다. 반도체 클린룸을 건설하는 삼우이엠씨가 미국 지사를 만들자 통역을 하며 간간이 사업을 익힌 것. 그는 당시 삼성이 반도체사업에 진출하며 실리콘밸리에 공장을 건설할 때 통역을 맡았다. 삼성전자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 현대반도체 오리건주 유진 공장 등 클린룸 건설 때 영업ㆍ건축에 관여했다. 1990년대 말 현대반도체ㆍLG반도체가 영국에 공장을 짓는데 참여한 직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그는 중국 지사인 삼우이엠씨차이나로 자리를 옮겼다.

정 사장은 2001
삼우이엠씨차이나 법인 전환작업에 들어가 동사장(대표)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아직 삼우이엠씨차이나 지분 50%가 본사 몫이지만 정 사장도 30%를 보유하고 있다. 2005년 설립된 코스닥 상장업체 `휴먼텍코리아` 중국법인 휴먼텍차이나 지분은 지난해 11일부로 100% 인수해 직접 전권을 갖고 경영 중이다. 이 밖에 건축물 인테리어를 하는 자본금 1000만위안짜리 2급 건설업체도 합작 운영하고 있다.

10
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그는 월급쟁이 사장에서 자신이 직접 지분을 소유ㆍ운영하는 업체를 3곳으로 늘렸다. 지금은
삼우이엠씨 중국사업을 총괄하면서 베트남ㆍ캄보디아 등 해외사업에까지 발을 넓힌 상태다. 최근엔 필리핀으로도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매출규모는 연간 150~200억원이다.

그는 "
삼성전자LG전자가 쑤저우ㆍ광저우에 차세대 액정표시장치(LCD)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어 클린룸 공사가 늘어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는 또 "내년부터 생명공학 분야 클린룸과 병원 클린룸으로 눈을 돌려 본격적인 수주를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의 사업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말엔 공사를 하던 건물에 문제가 생겨 거의 사업을 접을 뻔하기도 했다. 중국 측이 55% 지분을 가진 한ㆍ중 합작회사에서 발주한 2만㎡, 13억원 규모 클린룸 공사를 하던 와중에 천장 자재들이 떨어지는 사고가 난 것. 10여 년간 건설공사를 하면서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터진 셈이었다.

그는 작업이 잘못 되면 전부 다시 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원칙주의자다. 천장 자재뿐 아니라 다른 업체가 설치한 전등을 비롯한 부속물까지도 모두 새로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발주자 측이 3층 건물의 꼭대기층 천장에 생긴 문제를 빌미로 1~2층 공사까지 모두 다시 할 것을 요구해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 사장은 돈도 돈이지만 발주자에게 약속한 공사 기일을 맞추는 게 급했다. 공사가 지연되면서 소송에도 휘말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칫 공사기간을 어기면 추가적인 손해배상도 불가피했다. 사건이 터진 게 크리스마스 직후인 1226일로 공사기한은 딱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때 정 사장이 의지한 것은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난중일기의 한 구절이었다. 그는 "다 버리겠다는 각오로 발주처와 대면해 자재비ㆍ전기설비 등 추가비용을 크게 줄였다"고 전했다. 사업 기일을 맞춰야 했던 발주처에서 오히려 작업을 당초 예정대로 끝내면 85만위안에 달하는 보너스까지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는 보름간 거의 잠을 못자고 밤샘 작업을 진두지휘한 끝에 난관을 돌파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초부터 상하이 한국상회 회장으로 선출돼 상하이 주재 한국 기업인 조직을 이끌고 있다. 그는 올해 상하이 한국상회 회장 자리를 한 차례 연임하고 있지만 내년엔 물러날 생각이다. 새로운 피를 수혈해 한상 기업조직을 한 단계 더 젊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
베이징 = 장종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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