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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中 상하이에 코리안타운 조성 전망
한국인들은 상하이 민항취 홍췐루와 그 주변에만 4만명 가량이 집중적으로 모여살고 있어서 체계적으로 코리아타운을 발전시킬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중국 경제수도 상하이에 코리안타운이 조성될 전망이다. 상하이한국상회는 최근 상회 회장 및 부회장, 사무차장 등 20여명이 (가칭)코리안타운 조성 추진위원회 결성을 위한 예비모임을 가졌다고 1월 4일 밝혔다. 한국인들은 상하이 민항취 홍췐루와 그 주변에만 4만명 가량이 집중적으로 모여살아 자연스럽게 코리안타운이 형성돼 있지만 이를 더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인 것이다. 정한영 한인회장은 “진정한 의미의 코리안타운을 조성함으로써 우리의 상품과 문화를 특화시켜 대외적으로 알리고 업체들의 홍보와 매출증대에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인 거리라는 별칭이 있는 홍췐루를 먼저 개발한 후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주변지역들로 코리안타운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한 지역 상인은 “홍췐루의 상가번영회 활동이 미비해 지역 상인들의 발전과 고충을 논의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는데 코리안타운 조성 움직임이 일어나 매우 반갑다”고 말했다. 상하이 한인들은 금융위기 후 10만명 가량에서 크게 줄었다 최근 대기업 주재원과 자영업자들이 홍췐루 등을 중심으로 다시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국제도시인 상하이는 과거 열강들의 조계지였던 영향으로 지역별로 유럽과 일본 등 다양한 나라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다. 영국의 경우는 상하이 외곽에 별도의 영국인 마을을 조성, 집단으로 모여살고 있다.
2011.02.21
[국내]
신용회복위, 재미동포 신용회복 서비스
신용회복위, 재미동포 신용회복 서비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기자 = 신용회복위원회는 내달 2일부터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관할지역에 거주 중인 해외동포 중 국내 채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현재 주 총영사관 관할 재미동포 중에서 과거 국내에서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된 사람은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을 방문해 본인 확인을 받은 후 인터넷, 전화 또는 이메일을 통해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청해 신용회복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신청자에 대해 부채상황과 변제능력, 상환방법 등에 대한 상담을 거쳐 채권금융회사의 동의를 받아 채무감면, 분할상환 등 채무조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과거에 국내 채무를 갚지 않아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된 해외 거주민은 나중에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재개할 때 금융채무불이행자 등록 사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앞으로 미국 전 지역과 중국, 일본 등 전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동포들을 대상으로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82-6337-2000, www.ccrs.or.kr) indigo@yna.co.kr (끝)
2011.02.21
[국내]
美실리콘밸리 한인네트워크 1천 명 시대
임상수 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 특파원 첨단기업 종사자 모임. 韓-美 기술 가교역할 기대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실리콘밸리 지역의 한인 ITㆍ바이오 단체인 K-그룹과 2009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한인 고급 인력의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진은 코트라 박기식 전략사업본부장이 K-그룹을 대상으로 한국 정부와 기업의 고급 두뇌 유치 사업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 미국 첨단기술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에서 구글과 애플, 인텔 등 글로벌 IT기업에 근무하는 한국인 하이테크 종사자들의 모임인 ‘베이에리어 K-그룹’(www.bayareakgroup.org)의 회원 수가 1천명을 돌파하며 급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07년 3월 실리콘밸리 거주 엔지니어 등 26명이 모여 한국인 IT전문가들의 모임을 만들기로 하고 이듬해 2월 회원 140명으로 정식 출범한 지 근 3년 만이다. 현재 회원수는 1천2명. 이 같은 K-그룹의 급성장은 90년대 닷컴 붐을 타고 밀려온 중국, 인도계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파워그룹으로 부상한데 비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한국인들도 활발한 정보교류와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매머드’ 네트워크를 가지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원 수가 2천∼6천명에 달하는 중국이나 인도의 실리콘밸리 내 단체에 비해 아직 규모는 작지만 인종, 국가를 기준으로 한 모임으로는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지원을 받는 러시아와 함께 3위 수준으로 도약한 것이다. 특히 K-그룹의 주축이 현재 기업 내 중간관리층인 30대 초·중반이어서 향후 성장가능성이 큰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내 한인회를 비롯해 전국 조직이 아닌 특정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 1천명을 가진 단체는 없다. 50∼100명 정도의 핵심 멤버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의미 있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어 회원들이 유익하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잇다. 실제로 지난해 K-그룹은 학술세미나만 8차례 했으며 이를 통해 기술 함양과 회원들간 네트워킹을 통한 일자리 추천, 경력관리, 한국과 실리콘밸리간 교류 증진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실리콘밸리에 한국인 엔지니어가 4천명 정도 되는데 K-그룹은 이중 한국말을 할 수 있는 1세와 1.5세대가 주축이다. 미국 첨단산업의 핵심지역인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 1천명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IT기업에 근무하는 한국인 하이테크 종사자들의 모임인 ‘베이에리어 K-그룹’이 결성 3년만에 회원 수가 1천명을 돌파하는 등 급성장하고 있다. ‘K-그룹’ 송영길회장(가운데)과 운영진들이 실리콘밸리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에서 회의를 가진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계는 많게는 6천명이 넘는 단체도 있지만 모국의 인구 수를 대비해 본다면 한국민의 비율이 훨씬 높은 셈이다. 80%가 석·박사 또는 경영대학원(MBA)를 졸업한 분들인 만큼 엄청난 인재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K-그룹은 그간 한국의 주요 IT대기업들과 활발한 기술교류를 하는 동시에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술 흐름과 벤처문화 등을 배우려는 국내 기업인과 대학생들을 위한 견학프로그램까지 운영하는 등 한국의 첨단기술산업 발전에도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영학석사(MBA)를 포함해 석·박사의 비율이 80%를 넘어서는 K-그룹은 주로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이곳 기업에 취업했거나 부모와 함께 어릴 때 이민을 온 뒤 실리콘밸리에 취업한 한인 1세대와 1.5세대로 구성돼 있다. K-그룹을 이끄는 송영길(43) 회장은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종사자 중 한인은 4천명 정도로 추산되며, 최근 한 달 평균 30명 정도씩 꾸준히 늘고 있다”며 “실리콘밸리에 거주하고 하이테크 종사자만 가입이 가능해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 등 다른 직종 종사자들도 많이 신청하지만 거절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K-그룹 회원들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기업인 구글에 31명이 근무하는 것을 비롯해 시스코시스템즈(32명), 마벨(19명), 오라클(18명), 야후(18명), 인텔(16명), 애플(15명) 등 주요 IT기업 종사자가 전체의 70%를 넘는다. 최근에는 회원들이 중심이 된 신생기업이 4개나 출범했다고 K-그룹은 전했다. K-그룹은 무엇보다 실리콘밸리 내 채용과 창업 관련 주요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지원하는 한편 기술트렌드 등에 맞춘 경력 관리 등을 포함한 회원들간 활발한 네트워킹을 주요 활동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웹서비스·소프트웨어·네트워크·칩 디자인·에너지·바이오 등 6개 분과별로 국내외 주요 전문가들을 초청해 매달 1차례 이상 기술교류세미나를 여는 등 최근 첨단기술흐름 정보도 공유하고 있다. 또 지난해 실리콘밸리에 견학을 온 국내 기업인과 학생 등 300명을 대상으로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의 산업시찰을 지원하고, 글로벌 기업 근무경험이나 창업 경험 등을 공유하는 행사도 15차례나 여는 등 미국과 한국간 기술정보 격차를 해소하는 가교역할도 하고 있다. 이번 1월에도 경기과학고생 40명을 포함해 3개 단체가 실리콘밸리를 찾아와 K-그룹의 안내를 받았다. K-그룹은 지금까지 자원봉사 형식으로 이뤄진 견학프로그램을 공식사업으로 쳬계화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온 국내 주요기업과의 기술 정보교류를 정례화하기로 하고, 내년부터는 삼성정밀화학, LG디스플레이, 하이닉스와 정기적으로 기술교류회를 열기로 했다. 송 회장은 “K-그룹 회원 중에는 이곳에서 첨단기술관련 각종 노하우를 배운 뒤 귀국해서 실리콘밸리 출신 중국인과 인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국의 첨단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소개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내 한인들의 위상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이곳에 진출하는 인재들의 수준은 중국, 인도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최고이지만 짧은 이민역사 등으로 인해 실리콘밸리 내 위상은 아직 분발해야 하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취업이나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처한 여건에 따라 해줄 수 있는 조언도 모두 달라지겠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라는 점과 함께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만 보지 말고 장기적인 플랜을 가져야한다”며 “한국인들이 수줍음을 잘 타 폐쇄적인 경우가 많은데 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서양인들처럼 자신을 알리고 남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지면 그만큼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고 조언했다.
2011.02.14
[국내]
정재상 뉴질랜드텔레콤 한인팀장
뉴질랜드 국영 텔레콤 최초 입사 한국인, 4년 연속 서비스 최우수 사원 선정, 사내 최다 표창 기록 보유, 최초 한인담당 팀장.’ 정재상(44) 뉴질랜드텔레콤 한인담당 팀장은 회사에서는 성실과 근면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2000년 뉴질랜드로 이주해 텔레콤에 입사해 10년 만에 아시아계 담당 중에서 제일 많은 팀원을 보유한 팀장이 됐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한인은 3만 명이다. 12만 명에 달하는 중국 이민자를 담당하는 직원이 12명인데 비해 한인 담당 직원은 17명이다. 뉴질랜드텔레콤은 뉴질랜드에서 브랜드파워 1위의 회사로 8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이다. 정 팀장이 입사하던 때는 마침 한인들이 뉴질랜드 이주 붐이 일기 시작할 때였다. 당시 전화기, 인터넷, 휴대전화 등 통신관련 국영업체였던 뉴질랜드텔레콤은 늘어나는 한인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통신 서비스를 할 전담요원이 필요해졌고 그는 최초 한국인 입사자가 됐다. 일반 직원들은 신청, 서비스, 비즈니스 등 분야별로 담당자가 있는 데 비해 그는 처음부터 1인 3역을 했다. 그리고 입사 첫해에 3개 부문 최우수 사원으로 뽑혔다. 성공의 비결에 대해 정 팀장은 “중요한 것은 도전하는 용기다. 결국, 이민자는 디아스포라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 살더라도 차별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더 부지런하고 노력해서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직원 신규채용 시 차세대 한인들을 뽑기 시작했다. 1명, 2명 늘어나더니 어느새 중국인 담당보다 많아졌다. 그는 “회사에서는 효율을 중요시한다. 12만 명 중국인과 비교하면 3만 명밖에 안 되므로 오히려 인원이 줄어야 하지만 역으로 한인담당 직원들의 역할을 아시아계를 비롯한 다른 담당 업무까지 확대시켰고 한인 특유의 신속한 일 처리와 효율적인 관리로 성과가 높은 부서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뉴질랜드도 인간관계가 중요한 사회라고 평가했다. 능력이 있어도 네트워크가 없으면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네트워킹을 활용해서 한인 차세대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요컨대 소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인간관계에 따라서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소수 아시아계가 주류사회로 들어가려면 주류사회와 좋은 네트워킹을 가진 사람을 통한 소개가 필요하다”며 그는 자신이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축산업 1위 국가인 뉴질랜드와 한국은 앞으로 더욱 긴밀해 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 팀장은 “한·뉴질랜드의 협력 관계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 질 것이고 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인사회가 발전해야 한다. 우선 주류 사회 진출이 늘어야 하는데 그 밑거름이 되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1.02.14
[국내]
월드옥타 30주년..최대 한인 네트워크로 성장
<월드옥타 30주년..최대 한인 네트워크로 성장> 61개국 회원 6천명..4월 기념식.수출상담회 개최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재외동포 경제인 모임인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World-OKTA)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61개국 113개 지회에 6천여명의 정회원과 8천여명의 차세대 회원을 거느린 월드옥타가 태동한 시기는 지난 1981년 4월.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2년∼1986년)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정부가 본격적인 수출 진흥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때였다. 정부는 당시 한국 상품만 전시되는 유일 종합상품전이었던 `서울교역전'을 국제무역전람회로 확대하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교포 무역인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서울교역전 개최를 하루 앞둔 1981년 3월31일 미국과 일본, 서독 등 해외 16개국에서 온 101명의 교포 무역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을 계기로 같은해 4월2일 `해외한국교포무역인 연합회'가 정식 발족됐다. 연합회는 지역별로 모국상품 구매단을 결성해 1983년부터 1991년까지 매년 1∼6차례씩 한국을 방문해 모국상품 구매유치 상담을 벌였고,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1994년 1월 상공자원부(현 지식경제부)에 사단법인 `해외교포무역인연합회'로 정식 등록했다. 연합회는 이어 모국상품 구매사절단 수준의 활동을 뛰어넘는 `한민족 경제공영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결의, 단체 이름을 `해외한인무역협회'(옥타)로 바꾸고 1년 여 준비기간을 거쳐 1996년 제1회 `코리안 네트워크 출범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옥타가 세계 한인 경제인 네트워크로 발전하는 계기가 돼 1999년부터 `한민족경제공동체 해외지도자 연수회'가 시작됐다. 이는 2001년 3차 대회부터 `세계대표자대회 및 워크숍'으로, 2007년부터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로 명칭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앞서 2000년에는 단체 명칭이 월드옥타로 변경됐다. 권병하 월드옥타 회장은 11일 "2000년대 들어 해외한민족경제공동체 대회, 세계대표자회의 및 워크숍이 성공을 거두면서 월드옥타가 해외동포 경제단체 중 최고의 조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면서 "2002년 국회에서 재외동포경제정책연구회가 발족해 춘계 및 추계 세미나를 월드옥타와 함께 개최하면서 정부 주무기관에서 바라보는 옥타의 위상 역시 한 단계 상승했다"고 말했다. 월드옥타는 4월18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창립 30주년 기념행사를 갖고, 22일까지 경상남도 창원에서 제13차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를 갖는다. kjw@yna.co.kr (끝)
2011.02.14
[국내]
천세택 한인총상공인회 중남미회장
<연합인터뷰> 천세택 한인총상공인회 중남미회장 멕시코 거주 20년.."동포 사회가 우리 문화 알려야" 독도 오페라 해외 공연 추진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700만에 이르는 해외동포들이 각자 거주지 국가에서 자신과 한국의 존재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 때가 됐습니다." 천세택(58) 세계한인총상공인연합회 중남미회장은 10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하며 "올해 독도를 소재로 오페라를 만들어 미국, 프랑스,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공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 회장은 1990년 멕시코로 이민 가 의류 사업으로 기반을 잡은 `성공한 한상(韓商)'으로 꼽힌다. 그는 100여 년 전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 간 한인 후예들을 찾아내 지원했고, 멕시코 이민 100주년(2005년) 행사 등을 개최하면서 멕시코에서 한국을 알리는데 힘써왔다. 이런 공로로 박종범(53)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장 등 5명과 함께 경상북도 투자유치 자문관에 위촉되기도 했다. 중국 미디어그룹 DMG와 합작으로 DMG코리아를 설립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서울에 머물고 있는 그를 만나 앞으로의 사업 구상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북도 투자유치 자문관에 위촉됐는데. ▲어제 저녁 대구에서 투자유치 자문단 만찬을 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위촉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해외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유치 노하우를 발휘해 지역경제에 이바지해 달라고 말했다. 20여 년 해외에서 사업을 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 유치를 위해 힘쓰겠다. --한.중 합작 미디어회사를 만든다는데. ▲중국 굴지의 광고회사인 DMG와 합작해 DMG코리아를 만들기로 하고 조만간 조인식을 갖기로 했다. 오래 전부터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관심을 가져오다 합작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DMG 김옥청 대표는 한국인으로, 중국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 문화를 중국에 알리는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우선 스포츠와 연예, 극장 등 문화공연 이벤트 사업을 할 것이다. 김 대표의 아이디어가 풍부해 앞으로 큰 프로젝트가 많이 나올 것이다. 나는 DMG코리아의 명예회장을 맡기로 했다. --세계총상공인연합회는 어떤 단체인가. ▲20년 전 창립돼 이명박 대통령이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 당시 의원이던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 특보가 이사장을 맡았다. 56개국에 지회가 있고 대륙별 회장을 두고 있다. 현재 활동중인 회원은 350여 명이고, 일본 파친고 업계의 큰 손인 한창우 씨가 회장이다. 5년 전까지 국내에서 회의를 열어오다 이후에는 대륙별로 돌아가며 매년 행사를 갖는다. 2008년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 한인 대표 약 300명이 참석하는 총회를 열었다. 올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총회가 열린다. --국내에서도 동포 관련 행사가 많은데. ▲동포 관련 행사들이 많아지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수 백 명이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 행사 주최 측은 호텔 숙식비를 지출하고 있다. 국내 경제에 보탬이 되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동포 행사는 현지에서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동포 관련 행사를 대륙별 동포 거점 지역에서 개최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도 인근 지역 동포사회를 아우르면서 해당 지역에 한국을 알리는 효과를 톡톡히 거둘 수 있다. 2008년 칸쿤 총회 때는 한인동포들 외에 북미 지역 경제인 및 단체장 등 약 250명이 참석했다. 앞으로 동포 행사는 동포사회를 찾아가 현지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취지로 열리면 좋겠다. --멕시코에서 `애니깽' 후예들을 찾았다고 했는데. ▲애니깽 후손들을 찾아 한인사회에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멕시코 전역에 약 6만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997년 이들 약 100명을 멕시코시티에 초대해 2박3일간 머물게 하면서 대규모 문화행사를 열었다. 현지인 태권도 사범 50명이 시범을 보이고, 한글학교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농악과 부채춤을 선보이며, 2.5㎞ 도로를 행진했다. 당시 어느 소수민족도 그런 행사를 치른 적이 없었고, 대사관에서도 극구 반대했지만 대성공을 거뒀다. 7대 일간지 컬러 지면에 대서특필됐고, 멕시코시티 시장은 해마다 행사를 치러도 좋다고까지 했다. 멕시코에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 2년 전까지는 재외동포재단에서 매년 애니깽 후손 15명을 한국에 초청해 중소기업 기술 연수를 시켜줬는데 중단돼 아쉽다. --멕시코 이민 동기와 현재 사업은. ▲1984년 에콰도르로 이민을 가 6년간 옷을 수입해 판매하면서 기반을 잡았고, KOTRA 초청으로 멕시코시티에 관광을 갔다 시장성을 보고 1990년 멕시코로 이주했다. 에콰도르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대문과 동대문에서 옷을 사거나 주문생산해 들여와 판매하다 지금은 현지에서 생산해 팔고 있다. 5년 전부터는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아이템을 물색하다 안경렌즈를 선택, 1년 정도 안경렌즈 분야에 대해 공부한 뒤 LG옵티컬을 설립했다. --내년 재외동포 참정권 행사가 예정돼 있는데. ▲10년 전부터 참정권 획득 운동을 벌였다. 멕시코에 20년을 살면서 아직 시민권을 받지 않은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민들은 참정권 행사에 관심이 많은데 공관에서만 투표할 수 있는 여건에서 얼마나 투표에 참가할 지는 미지수이다. 멕시코 교민 수는 약 3만 명이고, 후손들까지 합쳐 시민권을 받은 사람은 약 1만명 정도이다. kjw@yna.co.kr (끝)
2011.02.14
[국내]
고종호 필로스테크놀로지스 회장
재미동포 기업 기술, 대만 팍스콘에 접목 재미동포 사업가인 고종호(66) 필로스테크놀로지스(이하 필로스 그룹) 회장이 개발한 티타늄 나노 표면 열처리기술(PST. 한국에서는 TNHT로 알려짐)이 오는 3월부터 대만 최대 전자회사인 팍스콘의 제품에 접목돼 생산된다. 방한 중인 고 회장은 1월 18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지사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필로스 그룹의 자회사인 필로스 인터내셔널 홀딩스가 팍스콘의 제조공장이 있는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필로스 차이나 공장을 설립하기로 양사가 합의했다”고 밝혔다. 필로스 그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에 맞춰 1월 19∼21일 시카고에서 열리는 미-중 경제회의를 앞두고 합의 내용을 워싱턴에서도 발표했다. PST 기술은 티타늄을 금속모재(母材)의 표면에 침투, 확산시키는 세계적인 특허 기술로 인성, 경도, 내마모성 등 금속의 다양한 성질들을 향상시켜 표면 처리된 금형과 공구의 수명을 연장시킨다. 고 회장에 따르면 팍스콘은 지난 1년 6개월간 PST 기술에 대한 시험 결과 금형과 공구 수명이 2~4배까지 늘어나는 등 코팅, 열처리, 질화열처리 등 기존의 표면처리 방법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것을 확인한 뒤 적극적으로 협력을 요청해왔으며, PST 기술 적용으로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고 제조비용도 대폭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 회장은 “팍스콘과 파트너십을 통해 우리의 표면처리 기술이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진출한 것은 의미가 깊다”며 “팍스콘은 PST 기술이 미국과 한국 내 고객사들에 막대한 비용절감 효과와 부가가치를 가져다준 것처럼 자사도 전세계에 저비용-고품질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최상의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고 회장의 아들인 새무얼 고 필로스그룹 사장은 후진타오 주석을 수행하는 중국 경제인과 미국경제인 간 열리는 미-중 경제회의에 참석해 이날 체결된 계약 내용을 브리핑할 예정이다. 대만 홍하이그룹의 다국적 자회사로 1974년 설립된 팍스콘은 세계 최대의 전자부품 제조업체로 2007년 포춘 100대 기업으로 선정됐다. 필로스그룹은 고 회장과 새무얼 고 대표가 함께 고안한 PST기술이 2009년 미 연방 중소기업청(SBA)으로부터 ‘일리 노이주 올해의 중소기업인’으로 선정되면서 주목받았다.
2011.02.09
[국내]
일본에 막걸리 붐 일으킨 이동재팬 김효섭 사장
한국산 막걸리, 일본을 취하게 하다 가난한 농군의 술이라고 천대 아닌 천대를 받았던 막걸리가 뜨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시장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1995년에 설립된 이동재팬은 요즘 밀려드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매일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 분량(1리터 15병 기준 1천상자)의 이동막걸리가 도쿄 본사의 물류창고에 들어와 바로 거래선으로 빠져나간다. 현재 일본에서는 약 45개 업체가 막걸리를 취급하고 있으나 이동재팬이 공급하는 막걸리가 전체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 막걸리업계가 도수를 14도에서 6, 8도로 낮추고 포장을 고급화하는 등 이동막걸리를 견제하고 있지만 이동재팬은 고지 선점의 이점을 살려 시장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달콤한 맛` 강조 여성층 집중공략 닛코리~, 맛코리~, 이동맛코리~. 올해 봄부터 일본 모 공중파TV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광고 노랫말이다. 일본 여성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닛코리(생긋 웃는 모양)~, 맛코리(막걸리 일본식 발음)’라는 리듬의 이 광고는 이동재팬이 만들었는데 이 노래를 따라부르는 일본인들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김효섭 이동재팬 사장(47). 그는 대학 졸업 때까지만 해도 일본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성균관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만큼 유학을 간다면 중국으로 갔어야 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는 중국이 아닌 일본이 훨씬 낫다는 얘기를 듣고 일본으로 유학처를 정했다. 시잠점유율 60%에 이르는 이동재팬의 이동막걸리는 올해 20억엔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1986년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본어학원에서 1년간 일본어를 배운 뒤 도립대학 연구생으로 1년을 보냈다. 그 후 도쿄국제대학 대학원에 입학해 1990년 석사과정을 마쳤다. 공부를 더 할 생각도 있었지만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오사카에 있던 모 전자부품 수입상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첫 월급이 18만엔(약 180만원)이었다. 집 월세를 내고 용돈을 쓰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었다. 이 같은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장래가 막막하기만 했다. 인생 상담을 위해 절친한 선배를 만나러 도쿄에 들렀다. 그 선배와 함께 바람을 쐬러 들른 곳이 ‘도쿄식품박람회’였다. 그 전시회에서 팩으로 포장된 모 막걸리회사 제품 보관기간이 1년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시골 출신이라 막걸리 유통기한이 짧다고 생각했던 그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막걸리를 들여와 일본에서 팔자’라는 생각이 들자 즉시 실행에 옮겼다. 당시 농수산물유통공사 산하 일본 내 자회사이던 한국물산(주)에 부탁해 수입을 위탁했으며 이를 판매하기 위해 유한회사를 설립해 6개월에 걸쳐 시장조사까지 마쳤다. 그러나 이 자회사는 김 사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설립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결혼자금 명목으로 모친에게서 받은 3000만원만 날렸다. 하는 수 없이 1992년부터는 주류 도매업체인 혼다쇼텐에 영업담당 사원으로 취직했다. 언젠가는 주류 유통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던 만큼 영업활동을 하면서도 짬짬이 일본 내 주류 유통, 상품지식 등을 열심히 공부했다. 아울러 인맥도 넓혀 나갔다. 김 사장이 나중에 회사를 설립할 때 큰 도움을 준 주류 도매업체 경영주인 오바야시 사장도 이때 만났다. 1994년 말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이동막걸리를 제조하는 이동주조(주)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사업계획서에는 일본 현지법인 설립에 필요한 물적·인적 지원을 이동주조 측에서 전혀 받지 않고 회사를 설립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동주조 측이 회사 신설을 승인하자 자본금 1천만 엔을 오바야시 사장에게서 빌려 1995년 7월 이동재팬을 설립했다. 회사를 설립했지만 직원은 본인뿐이었다. 그런 만큼 사장이 주문전화를 받는 여직원, 영업사원, 배달사원 등 1인 다역을 해야 했다. 휴대폰과 사무실 전화를 연결해 놓고서 배달 중에 걸려오는 주문 전화를 받았다. 혼자서 승합차에 막걸리 10상자, 진로소주 5상자를 싣고 100km, 200km가 넘는 곳까지 배달을 다니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한 가지만은 꼭 지키자고 다짐했다. “일본은 톨게이트 비용을 비롯한 교통비가 비싼 만큼 한 번 가져간 물량은 반드시 팔고 귀가하자.” 창업 후 5년째가 되면서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올랐다. 이동막걸리에 대한 홍보와 광고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동막걸리 영업 타깃을 70만 명 가량인 재일동포나 한인들이 아닌 1억2천만 명인 일본인으로 잡았다. 그런 만큼 광고도 일본인들이 많이 보는 잡지를 위주로 냈으며 지하철 등에는 포스터 광고를 게재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와 그 뒤에 분 한류 열풍도 막걸리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이 같은 순풍에 힘입어 이동재팬은 창업 이래 매년 120%(전년 대비)씩 성장해오고 있다. 회사 설립 때는 한 번 수입해오는 막걸리 물량이 200상자에 불과했지만 1년이 지난 후 1회 주문량이 1천상자로 늘어 한 컨테이너 물량을 채울 수 있었다. 매출도 2006년 8억 엔, 2007년 10억 엔, 2010년 16억 엔으로 계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에는 매출 20억 엔을 기대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60%의 힘 이동재팬은 2008년 1억 엔을 들여 12번 TV채널 텔레비도쿄의 일요일 밤 8시 프라임타임에 막걸리 광고를 내보냈다. 당시 종업원 13명에 불과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1억 엔의 거액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판매 확대를 위한 투자라고 판단해 실행에 옮겼다. 지난해에는 소비자가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로고와 라벨을 제작해 적용했다. 이와 함께 2008년 도쿄 우에노에 57평 규모의 안테나 숍을 열었다. 이곳은 막걸리와 함께 묵, 전, 골뱅이무침, 삼합 등 한국의 전통적 안주 100여 종을 판매하는 음식점으로, 전체 손심의 80%가 일본인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3월 2일 김효섭 이동재팬 사장은 ‘한국 농산물 수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막걸리와 한국 음식의 전도사로서 톡톡히 역할을 학고 있는 셈이다. 또한 영업사원을 통해 막걸리를 차겁게 얼린 샤베트 막걸리, 포도와 바나나 등을 넣은 막걸리 칵테일 등 다양한 음용법을 전파하면서 수요층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도쿄 타카다노바바에 두 번째 안테나 숍을 오픈했고 올해는 4월 말 예정으로 도쿄 이케브끄로의 세이브 백화점에 3호점을 입점할 예정이다. 김 사장은 “안테나 숍 1,2호 점이 모두 인기를 끌자 백화점에서 먼저 입점 요청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시장에서 보리소주의 매출 신장세가 두드러진 점에 착안, 본사에 요청해 쌀 대신 보리를 사용한 막걸리를 들여와서 판매하는 등 사업의 다각화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동막걸리와 별도로 1999년 식품 제조·유통업체인 ‘우리물산’을 설립했다. 한국 유자차, 김치 양념장, 전통김, 소주 등을 주문 제조 또는 수입해서 팔고 있다. 일본시장을 겨냥한 소주와 일회용 커피처럼 마실 수 있는 유자차 등도 개발해 훼미리마트 등 편의점에 납품하고 있다. 우리물산은 지난해 매출 5억 엔(약 50억 원)을 올렸다. 김 사장은 중국 진출도 꿈꾸고 있다. 중국 주류 유통시장과 중국인 음주문화에 대한 시장조사는 끝난 상태다. 다만 중국의 평균적인 경제수준이 일본이나 한국과는 차이가 있는 만큼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최종 중국 진출 시기를 결정할 생각이다. 김효섭 사장의 일본 진출 성공노하우 비즈니스는 신뢰구축이 중요하다. 김효섭 이동재팬 사장이 폐쇄적인 일본 주류 유통 분야에서 단기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도와준 일본인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일본인이 오바야시 사장. 주류 도매사업을 해오던 오바야시 사장은 95년 이동재팬이 설립될 때 1000만엔을 차용증도 받지 않고 빌려줬다. 당시 오바야시 사장은 “김효섭 씨는 성실하고 신용이 있어서 꼭 성공할 것”이라며 격려해줬다. 이처럼 오바야시 사장은 당시 자기 밑에서 4개월가량 일하던 김 사장을 무척 신임했으며 독립하려고 했을 때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사장은 “현지인 도움이 없이는 외국인이 타국에서 사업체를 꾸려 나가기가 매우 힘들다. 울타리 노릇을 해줄 현지인을 찾아내 우선 그 사람부터 감동시키고 마음을 사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우물을 파라. 김 사장은 92년부터 줄곧 주류 유통 분야에 종사해왔으며 특히 막걸리에 집중했다. 막걸리 분야에서 최고봉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매진했다. 사실 13년 전에 일본에서 막걸리를 판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 일본인이 '막걸리'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기 때문. 음식점 10곳을 들르면 5곳에서는 아예 실내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이용객이 많은 음식점은 바빠서 귀찮다고 거부했으며 손님이 없는 음식점은 손님도 없는데 재수없이 장사치가 온다고 거절했다.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그때마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그가 취급하고 있는 막걸리 양은 일본 전체에서 유통되고 있는 막걸리 중 절반 이상에 달한다. 일본시장에서 막걸리를 유통시키는 업체가 무려 20여 곳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시장 점유율이다. 여성층을 적극 공략하라 김 사장은 이동막걸리를 ‘여성이 선호하는 술’이라고 광고했다. 예부터 텁텁하고 걸쭉해서 육체노동을 하는 도중에 즐겨 마시는 막걸리라는 한국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포지셔닝 전략을 일본시장에서 활용한 것. 이 같은 전략이 적중해 막걸리를 찾는 일본인 중 80% 이상이 여성이다. 막걸리의 달큼한 맛을 선호하는 일본 여성이 많다. 일본 술문화는 자신이 마시고 싶은 술 종류를 선택해 개인별 주량에 따라 적당히 마신다. 보통 한 사람이 3잔에서 5잔 정도 마시는 만큼 막걸리를 많이 마실 때 생기는 숙취나 트림 등 약점이 일본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 독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일본 여성들은 6~8도인 이동막걸리 알코올 도수를 선호한다. 맥주보다는 약간 진하고 소주에 비해 약한 술인 막걸리를 순한 술로 생각하는 여성이 많은데 이동재팬은 이들을 적극 공략했다.
2011.02.09
[국내]
박기출 월드옥타 수석부회장
새해부터는 싱가포르 한인회장도 맡아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재외동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각지 동포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많다. 세계 61개국 113개 지회에 6천여 명의 회원을 둔 최대 민간 한인 네트워크인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World-OKTA) 수석부회장이면서 싱가포르 한인회장에 최근 선출된 박기출(55)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월드옥타 제16대 집행부의 수석부회장 일은 지난달 시작했고, 9대 한인회장으로서의 업무는 새해부터 시작된다. 박 회장은 30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최대 해외 한인 경제단체 임원이 되고 곧바로 한인회장을 맡은 연유에 대해 "두 가지 일 모두 생각지도 않다가 지난 10월 말 비슷한 시기에 맡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이들은 박 회장이 그동안 쌓은 `공력'이 만만찮고 이제부터 현지 한인사회의 리더로서 역할을 수행할 때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20년 전인 1990 쌍용건설 주재원으로 싱가포르 땅을 밟아 10년간 일한 뒤 2001년부터 개인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베 트남과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두고 자동차 시트를 제작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의 동남아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다. 또 싱가포르 한국학교 일에도 열심이었으며 2008년 월드옥타에서 101번째로 생긴 싱가포르지회 초대 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국내 토종 치킨요리 브랜드인 BBQ의 아시아태평양본부를 유치해 아시아와 중동 등 39개국에 판로를 연 것도 그였다. 변두리 지역에 있던 한국학교가 약 한 달 전 싱가포르에서 최고학군으로 통하는 부키팅기 지역으로 이전, 유치원부터 중등과정까지 갖춘 종합학교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를 비롯한 싱가포르 한인 경제인들의 기여 덕분이었다. 새해 한인회장으로서의 포부를 묻자 그는 "아직 당선자 신분"이라면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싱가포르 교민 수는 불과 5천∼6천 명에 불과했지만 최근 2만 명 정도로 늘어나는 등 교민 사회도 부쩍 커져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교민들이 우리말과 전통문화를 배우면서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한인회관을 만들려 하고 있다. 어렵게 마련하고도 예산 부족으로 임대를 준 한인회관을 명실상부한 한인 동포들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 또 최근 싱가포르에 취업한 한인 청년들을 위한 청년회를 조직할 생각이다. 이미 기반을 잡은 교민들이 중심이 되고, 새로 이주해 들어오는 젊은 한인 청년들까지 아우르는 커뮤니티를 만들면, 한인 동포사회가 더 큰 자부심을 갖고 발전을 기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박 회장은 또 "싱가포르 한인회가 생긴 지 벌써 47년이나 됐다"면서 "오랜 기간 분란 없이 조직을 유지해 온 훌륭한 전통을 지켜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월드옥타 수석부회장으로서의 포부를 묻자 그는 "월드옥타 역시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직이 됐다"면서 "선배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석부회장으로서 모국 중소기업들과 해외 바이어를 연결해주는 국제위원회 업무를 활성화할 계획이다.이를 위해 한국의 중소기업청이나 상공회의소 등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국내외를 연결하는 네트워킹을 확대하려 한다. 올해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이 발효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돼 있고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윤택한 싱가포르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이 많다. 재외국민 참정권 행사에 대한 질문에 그는 "재외국민이 모국 정치에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고 감사할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각지 동포 사회가 `마이너리티'(소수민족)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그 사회에 안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사는 200만 교포나 싱가포르에 사는 2만 교포 모두 소수민족일 뿐이라는 것. 그는 "모국 정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면 아무래도 작은 동포 사회가 반목으로 분열될 수 있다"면서 "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연평도 포격 사태를 언급하자 박 회장은 "경제적 영향이 크지 않아 상대적으로 안심은 되지만, 교민들도 사실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 "외교력을 발휘해서 한반도의 평화가 깨지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진출 전망에 대해 그는 "싱가포르는 자체 인구가 적어 정부가 앞으로 몇 년 내로 인구를 몇 백만명 늘리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면서 "경제인과 각 방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영주권만 가진 그 역시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몇 차례 시민권 획득 의사를 타진 받았다. 그는 "싱가포르는 정치와 경제 노선이 분명하고 동서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로서 `괜찮은 나라'임에 틀림없다"면서 "특히 조선과 금융, IT(정보기술), 물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들을 정부 산하 `경제개발위원회'(EDB)가 직접 찾아가 국내 유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BBQ 아태본부를 싱가포르에 유치하는데도 EDB의 도움이 컸단다. kjw@yna.co.kr (끝)
2011.02.09
[국내]
CEO 수출1호 김광로 印비디오콘 회장
김광로 비디오콘 회장은 11월 23일 한국무역협회에서 진행하는 ‘인도·아세안 시장 온오프 마케팅전략 세미나’에 참석해 ‘성공한 한상(韓商)’으로서의 생생한 성공스토리와 함께 국내기업에 적합한 해외 시장 진출담을 전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인도 진출하려면 현지화,체질강화 필수"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과 올해 발효된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으로 그 어느 때보다 인도·아세안 지역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관심이 뜨겁다. 인도는 ‘제 2의 중국’이라 불리며 풍부한 자연자원과 인구, 영토를 바탕으로 고속성장하고 있으며 BRICs 중 가장 역동적인 성장세가 기대되는 나라다. 아세안 역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잠재 소비력을 갖추었으며, 풍부한 천연자원과 넓은 시장을 보유한 신흥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이다. 이러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는 인도에 진출하여 사회적인 기여와 성공을 이루어낸 대표적인 한인 CEO가 있다. 바로 인도 최대의 가전업체인 비디오콘의 김광로 회장이다. ‘LG전자 인도 신화의 주역’, ‘한국의 CEO 수출 1호’. 비디오콘의 김광로 부회장의 이름 앞에 따라 붙는 수식어다. 인도에서 10년 만에 현지 시장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리며 LG전자를 1위 가전업체로 키웠으며, 2008년 7월에는 한국 기업의 경영자 출신 최초로 외국기업의 회장 겸 최고 경영자로 비디오콘에 스카우트되어 지난해 4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김 회장의 인도시장 성공 비결은 제조에서 생산, 판매까지 현지인을 두는 등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 있다. 또한 고급화 전략과 브랜드 인지도 상승을 위한 차별화, 홍보를 통한 이미지 메이킹 및 스포츠 후원 등의 마케팅을 통해 LG 전자의 인도 신화를 이룰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성공적인 인도시장 진출을 위해 외국기업의 진출 성공사례를 연구하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모색해야 하며,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세계화, 변화, 혁신, 차별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디오콘의 목표는 전자산업에서 글로벌 리더로 크는 것이다. 2012년 200억 달러로 매출을 끌어올리고, 세계 3대 TV 제조사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비디오콘의 생산 공장 및 사무실 등은 전 세계에 뻗어 있다. 한국에도 디자인 센터가 있다. 비디오콘의 29인치 TV. 현재 비디오콘의 주력 사업은 브라운관 TV다. 2010년부터는 LCD 패널 양산에 나섰다. 김 회장은 비디오콘에 영입된 이후 2년 반 만에 제품의 품질향상 및 생산성을 30% 올리는 성과를 일궈냈다. 한국 CEO 수출 1호로 불리는 김광로 인도 비디오콘 부회장이 인도를 포함한 해외 시장에서의 경험을 담아 출간한 경영 철학서 ‘세계경영 크레도’ 김 회장은 1946년 충남 강경에서 태어났다.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 LG그룹에 입사해 주로 미국·독일·두바이·중남미 등에서 해외영업을 했다. 1997년 LG전자 인도법인장을 맡아 불모의 시장이었던 인도에서 LG전자를 1위 가전회사로 올려놓았다. 그 공로로 2005년 LG전자 서남아지역 대표(사장)로 승진했다. 그는 2008년 1월 LG에서 은퇴했으나 그해 5월 인도 최대 가전업체 비디오콘 CEO로 영입됐다. 베누고팔 두트 비디오콘 회장이 김광로 CEO에게 직접 회장 겸 글로벌가전 영업담당 총괄직을 제안했다. 신문광(狂)을 자처하는 김 회장은 신문, 시사 및 경제잡지 등을 꼼꼼히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신문에 세상 모든 일과 아이디어가 있다는 게 지론이다. 한국발 인도행 직항 비행기를 통해 일간지와 경제지, 주간잡지, 월간잡지 등을 두루 받아본다.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같은 주요 외신도 반드시 챙긴다. 하루 내내 읽어야 할 듯한 분량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항상 느긋해야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게 지론이다.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으며 모두 미국에서 공부 중이다. 그는 얼마전 자신의 인도시장 성공 경험담을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그동안 경영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와 철학을 담은 ‘세계경영 크레도’라는 경영서다. 이 책에는 그가 1990년대 LG전자 인도법인장을 지내면서 일궈낸 성공신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인도 전역을 발로 뛰며 열악한 사업 환경을 극복해낸 경험담과 현지인 조직 관리 및 마케팅 노하우를 ‘세계화’ ‘열린 마음’ ‘권한위임’ ‘혁신’ ‘마케팅’ 등 다섯 가지의 주제와 27개 ‘크레도(Credo, 信條)’로 분류해 설명했다. 특히 김 부회장은 이 책에서 현지인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권한 위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강조했다. “근사한 말로 해서 권한위임이지, 기다릴 줄 아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자기는 70점밖에 안 되면서 부하 직원에게 100점을 요구하는 상사가 있다. 그러면 권한위임이 되지 않는다. 기대치를 70%로 낮추는 게 먼저다. 그러려면 참을성이 필요하다. 용서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용서하는 기업문화가 있으면 사원들이 용감해진다. 실수와 실책을 나무라지 않고 의욕을 북돋우면 서로 도전하겠다고 손을 번쩍 든다”. 다음은 김 회장 일문일답 인도의 저력은 무엇인가? 첫째, 민주주의국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인도를 부패 민주주의 또는 싸구려 민주주의라고 매도하기도 하지만, 인도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쿠데타도 없었던 곳이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남미에 비해 인도는 사업하기에 매우 안정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인도를 비교해 볼 때 중국은 앞으로 30년간 민주주의를 달성해 나가야 하고 인도는 경제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앞으로 30년이 인도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인도는 굉장한 포용력의 국가다. 언어, 문화, 화폐, 정치 등 모든 면에서 인도는 한 나라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십 가지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며 연성 문화(soft culture)를 갖고 있다. 또한 공무원 부패에 관해 언론에 나오는 것을 보면, 여과 없이 언론이 그런 모든 것을 보도하는 데에서 인도 민주주의의 힘과 포용력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 다량생산 시대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열심히 일하는 경성 문화(hard culture)가 유리했으나, 21세기 창의성의 시대엔 인도와 같은 soft culture가 유리하다. 우리의 hard culture와 인도의 soft culture가 융합되면 우리는 어디서든 비즈니스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인도는 거시경제지표가 매우 안정적이다. 매우 영리한 인도의 경제관료들은 관리능력이 뛰어나며 인도에서는 예측과 준비가 가능하다. 넷째, 인도에서는 영어가 통한다. 1년 동안 방콕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아 매우 불편했었다. 인도는 영어를 사용하므로 젊은이들도 영어를 통해 세계를 보기 때문에 그 눈이 훨씬 넓다. 우리나라의 스무 살 청년과 인도의 스무 살 청년을 비교해 보면 정말 큰 차이가 느껴진다. 인도의 지적 수준은 중국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다섯째, 인도는 사회적 안전이 보장된 사회다. 관리와 치안 체계가 매우 안정적이어서 사업하기에 적합하다. 마지막으로 인도의 장점은 젊다는 것이다. 15세 미만 인구가 총인구의 31%를 차지한다. 중국은 21%, 우리나라는 18%에 불과하다. 인도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들이 있다면? 인도인들은 굉장히 느리다? 나는 한 번도 느리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다. 항상 2개월 앞서 미리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시작은 늦게 하고도 마지막은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제는 4개월을 앞당겨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인도인들은 오히려 순종적이라 시키는 일을 부지런히 잘한다. 인도인들은 교활하고 사기성이 있다? 나는 인도에서 사업하는 10년 동안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도 5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데, 오히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사기성이 짙다. 떼일 것 같으면 주지 말란 이야기가 있듯이 너무 순진하게 사업을 하면 안 된다.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사업하다 보면 다 있기 마련인데, 인도인들도 그런 수준을 넘어서진 않는다. 인도는 부패가 심하다? 그동안 소송도 해 보고 인도의 세무서와 많은 일을 해 봤지만, 담당자들에게 2달러 정도 되는 작은 선물을 준 적은 있으나 큰 뇌물을 준 적은 없다. 공장을 경영할 때 우리에게 까다롭게 구는 조사관이 있었는데, 그에게 뇌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오히려 인도 직원이 제안했다. 그런 경우 오히려 우리는 더 쉽게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결국 부패 사이클에 들어가지만, 인도인들은 그렇지 않다. 인도인들 다루기가 어렵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 달성을 위해 너무나 열심히 일했다. 인도는 열대지방이라 더워서 무엇이든 천천히 해야 살아남기 때문에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낮잠을 자기도 한다. 처음에는 인도인들을 이해하기도 다루기도 어렵다고들 하지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면 오히려 쉽다. 그렇게 쉬엄쉬엄하면 생산성이 낮을 것 같지만, 우리보다도 훨씬 순종적이고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므로 결코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회사는 노사문제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인도 직원들이 해 달라는 것보다 오히려 더 잘해 줬기 때문이었다. ‘Happy employee, Happy business’라는 말이 있다. 요구하기 전에 잘해 줄 필요가 있다. 인도에서 사업을 할 때 유의 사항이 있다. 첫째, 인도는 신경제와 구경제가 섞여 있다. 우리가 20년 전에나 쓰던 2조식 세탁기나 직냉식 냉장고가 인도에서는 지금 잘 팔린다. 구경제가 70%, 신경제가 30% 정도라고 보면 되는데, 너무 신경제 쪽에 초점을 맞추면 볼륨이 작다. 많은 경우, 인도 시장이 크다고 신경제 쪽으로 투자하는데 막상 보면 시장이 너무 작다. 한국에서는 이미 지나간 기술도 인도에서는 수요가 많으므로 옛것을 잘 다듬어 새로운 것과 함께 공략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인도에서 사업을 하려면 자주 인도에 가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휴가 때라도 방문하고 자주 가서 인도를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이 있어야 애정이 생기고, 애정이 생겨야 이해할 수 있으며, 인도의 큰 흐름을 볼 줄 알게 된다. 회사 내에 그룹을 만들어 정해진 사람들이 자주 인도를 방문하고 직접 부딪혀 인도를 알고 영어도 늘게 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이런 식으로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함께 진출할 수 있으면 최소 비즈니스가 확보되므로 가장 추천할 만한 방법이다. 인도에도 코트라나 인도 회계회사 등 많은 자문기관들이 있지만, 외부기관 자문도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일반적으로 인도에 투자할 때 독자적으로 하는 것이 낫다고들 한다. 합작투자의 경우 50%를 투자했으면 50%만 신경 써야 하는데, 극성인 한국인들은 100%를 신경 쓰기 때문에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합작투자는 자신을 죽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넷째, 인도인들을 통제할 때 절대로 직접 하면 안 된다. 많은 경우 한국인들은 성질이 급해 직접 종업원들을 통제하곤 하는데, 인도 매니저들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종업원들에게 애정을 갖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솔선수범하면, 인도인들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완수한다. 인도의 매니저급들은 모두 우수한 인재이므로 그들을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김 회장은 인도시장 성공 비결은 제조에서 생산, 판매까지 현지인을 두는 등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 있다고 밝혔다. 인재 확보 계획은? 인도는 MBA 출신부터 엔지니어까지, 인재풀이 넓고 수준도 높다. 한국인처럼 행동이 빠르진 않지만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상당히 성실하다. 인도의 잠재력을 이야기할 때 교육열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이 수십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것은 교육열 때문이라고 한다. 인도의 교육 열기도 이에 못지않다. 인도의 강한 교육열을 바탕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은 많은 기술자와 MBA 출신 등 현지의 우수한 인재에게 글로벌 비즈니스의 기회를 제공, 인도 사회에도 공헌하고 싶다. 기술개발은 어떤 식으로 추진하고 있나? 선도적 연구보다는 응용기술을 확보하려고 한다. 혁신적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아직 버겁다. 현재 활발히 쓰이는 기술을 잘 응용하고 활용해서 소비자에게 더욱 친숙하고 편리한 제품을 선보일 생각이다. 글로벌화 추진 방향은? 확고한 인도 로컬 시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 글로벌 업체라면 내수 시장은 당연히 잡아야 한다. 두고 보라. 비디오콘은 수년 내 인도 1위 종합 가전업체로 등극할 것이다. 동시에 그 역량을 세계 시장으로 확대해 나가겠다. 10년 뒤면 글로벌 거인 비디오콘을 보게 될 것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 동유럽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 시장에서 생산 및 판매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시작이다. 이를 위해 다른 글로벌 기업과 협력도 모색하고 있다. 기술, 마케팅, 생산 등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라도 공고한 파트너십을 통해 협력이 가능하다. 한국 기업에도 마찬가지다. 인도 시장 진출을 꿈꾸는 국내외 동포 기업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인도는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고, 중국과 달리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라 의사 소통에도 문제가 없다. 소프트웨어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고학력 인재가 많은 것도 장점이다. 해외 시장 진출에 관심 있는 기업은 이곳을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다.
201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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