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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인 무역인이 뛴다] ⑥미국 조병태씨
월드옥타 주역 조병태씨 (창원=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모자 판매회사 소네트를 경영하는 조병태(65) 회장. 조 회장에게는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재건에 불을 붙인 주역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2011.4.21 ghwang@yna.co.kr 모자 판매로 1억2천만달러 매출..월드옥타 주역 (창원=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모자 판매회사 소네트를 경영하는 조병태(65) 회장에게는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재건에 불을 붙인 주역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1996년 월드옥타 회장을 맡아 당시 10개 지회에 100명(10개 지회)도 채 안되던 회원 수를 2년 만에 1천200명(48개 지회)으로 늘림으로써 월드옥타가 오늘날 세계 61개국 113개 지회에 6천200명의 정회원과 8천500명의 차세대 회원을 거느린 최대 재외동포 경제단체로 성장하는 기틀을 다진 것.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월드옥타 제13차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에 참가한 조 회장은 21일 "협회를 물려받았을 때 부채가 6만달러가 넘고, 사무국 직원은 1명밖에 없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막막했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우선 전 세계 경제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를 발전시켜 함께 성장하며 국내 중소기업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지회 확대를 최우선 사업으로 꼽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워싱턴, 중국, 동남아시아, 남미, 유럽 등을 발로 뛰어다니며 수많은 동포 기업인을 만났다. 이들을 일일이 설득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필두로 워싱턴, 애틀랜타, 댈러스와 중국,, 영국,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등 30여곳에 월드옥타의 깃발을 꽂았다. 재임 1년 만인 1997년 10월 자비를 털어 뉴욕에서 처음 개최한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는 27개국 35개 지회에서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듬해인 1998년 고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경제위기를 맞자 월드옥타는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2차 대회를 개최하면서 위기 타개에 힘을 보태고 나섰다. 조 회장은 "당시 수출상담회는 물론 고국에 달러 보내기 운동, 모국 상품 구매운동, 금모으기 운동 등을 함께 전개하자 한국 정부가 월드옥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당시 김종필 총리는 행사장을 찾아 고국사랑운동의 실천자이며 역사적인 분들이라고 치하했다"고 전했다. 조 회장이 경영하는 소네트는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진출과 동반 성장이라는 월드옥타의 정신에 꼭 들어맞는다. 이 회사는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유풍실업이 생산하는 모자를 수입해 브랜드를 달아 미국과 캐나다, 유럽에 판매하고 있다. 작년에 판매한 모자는 자그마치 3천만개. 매출액은 1억2천만달러에 달한다. 올해는 이미 연말까지 3천500만개의 모자를 주문 받아놓은 상태다. "미국 인구의 40%는 대한민국 중소기업이 만든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우리가 판매하는 브랜드의 모자가 한 가정에 하나씩은 있다고 보면 됩니다. 유풍실업의 기술개발과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이 회사가 판매하는 모자 브랜드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초첨단 기능성 제품인 '플렉스피트'를 비롯해 헐리(Hurly), 빌라봉(billabong), 볼컴(volcom), 디씨슈즈(dcshoes) 등 250개에 달한다. 조 회장은 미국 시장을 점유할 수 있었던 노하우를 '최고의 제품(Product)', '적절한 가격(Price)', '판매처(Place)', '제품에 맞는 홍보(Promotion)', '고객(People)' 등 '5P'로 꼽았다. 조 회장은 "앞으로 10년 동안 세계시장에 으뜸가는 기업을 만들어 미국 사회에 매년 수익의 10%를 기부하겠다"며 "월드옥타를 경제 6단체로 진입시키는 일도 이뤄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재외동포는 엄청난 자산이다. 이들을 이끌어줄 리더가 현재 없는데, 싱가포르 이광요 수상이 화상의 리더이듯이 이명박 대통령도 퇴임 후 같은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핸드볼 선수였던 조 회장은 유풍실업 뉴욕지사장으로 재직하다 미국에 정착했다. 뉴욕한인경제인협회 회장과 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회장, 전미한미재단 총회장 등을 역임했다. ghwa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4.27
[국내]
[한인 무역인이 뛴다] ⑤ 러시아 이경종씨
월드옥타 블라디보스토크 지회장 이경종씨 (창원=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월드옥타 블라디 보스토크 지회장이자 연해주한인회 회장인 이경종(51)씨는 21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은 포화상태지만 러시아는 무궁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며 "극동의 중심에서 한인 무역의 꽃을 피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2011.4.21 noanoa@yna.co.kr 한국 제품으로 러시아 시장 개척 (창원=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중국은 포화상태지만 러시아는 무궁한 발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월드옥타 블라디보스토크 지회장이자 연해주한인회 회장인 이경종(51)씨는 21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블라디보스토크란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이라며 "극동의 중심에서 한인 무역의 꽃을 피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년에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다"며 "지역 전체가 경제발전 분위기를 타고 있기에 한인 커뮤니티도 동반 성장하기 위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1999년부터 12년째 러시아에서 사업해온 그가 강조하는 것은 `원칙과 정도'다. 이씨는 "그동안 러시아에서 돈을 번 상당수 한국인은 현지 분위기상 편법과 일탈을 피하기 어려웠고, 돈을 벌면 정착하지 않고 다른 나라로 가버렸다"며 "한인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업하고 러시아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호텔ㆍ관광학을 전공한 이씨는 1997년 현대그룹 소속으로 블라디보스토크 현대호텔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러시아 땅을 처음 밟았다. 2년이 지나고 귀국할 시점이 되자 `러시아에 미래가 있다'고 판단, 회사를 그만두고 현지에서 무역회사 팔콘 크레스트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이씨는 러시아의 원목을 한국으로 들여오고 한국의 컴퓨터 부품을 러시아로 파는 사업에 손을 댄 이후 러시아와 한국에서 제재소와 종이컵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두 차례 불이 나는 등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다. 다행히 4년 전부터는 한국의 건물 외장재와 체육복 원단 등을 러시아로 들여와 파는 사업이 자리를 잡았고, 최근에는 러시아의 정제유 거래를 중계하는 일에도 뛰어들었다. 이씨는 "러시아의 격변기 속에서 사업하다 보니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했다"며 "특히 러시아 사회를 이해하기보다는 한국인 특유의 `내 방식'을 고집한 탓에 실수가 컸기에 뒤에 오는 한국인들은 그런 실수를 줄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그는 "월드옥타 블라디보스토크 지회를 2008년 새로 만들어 현재 1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며 "지회장으로서 한인 무역인 네트워크를 강화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조직으로 이끌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noano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4.27
[국내]
미용도 한류시대!
2011.04.25
[국내]
한국에 역수출되는 생활 도자기
[앵커멘트] 재독동포가 만든 생활 도자기가 한국으로 역수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정서에 맞으면서도 독일인들의 실용성까지 가미했다는데요. 김운경 리포터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독일 중부 에센의 옛 탄광촌 한켠에 자리잡은 도자기 공방. 접시부터 국그릇, 찻잔까지 다양한 형태의 그릇들로 가득합니다. 한국 고유의 색깔과 질감에 실용성까지 갖추고 있어 독일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인터뷰:수잔네 라우바흐, 도자기 애호가] "작은 예술품이지만 아주 진귀한 작품입니다. 이 도자기는 박물관처럼 진열장에 전시하지 않고 실제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보리스 피켄하겐, 공방직원] "이 도자기에는 미학적인 것과 기능성이 합쳐져 있는데요.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독일인들에게는 도자기를 그릇 세척기에 넣어 세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이 생활 도자기를 만드는 이는 동포 도예가 이영재 씨입니다. 지난 1972년 간호사인 어머니를 따라 독일로 건너온 이 씨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도자기와 함께 했습니다. 물레를 돌려 하나하나 손으로 빚는 이 씨의 도자기에는 기계로 대량 생산된 그릇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이영재, 동포 도예가] "쓰시는 분들도 뭔가 우리가 만들면서 느끼는 행복이라는 것을 그분들도 느낄 수가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서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씨의 도자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4월부터는 한국 유명 백화점에서도 판매가 시작됐습니다. [인터뷰:이소영, 프랑크푸르트 동포] "동포가 만든 도자기가 한국으로 수출되니까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의 예술혼에 독일의 실용정신을 담아낸 이 씨의 시도가 도자기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독일 에센에서 YTN 월드 김운경입니다.
2011.04.25
[국내]
한국 디자이너, 캐나다 시장 노크
[앵커멘트] 미국에 이어 캐나다 의류 시장에서도 한인 디자이너들의 진출이 활발합니다. 최근에 열린 밴쿠버 패션위크에서 한인 디자이너의 작품이 호평을 받으며 현지 진출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이은경 리포터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야자수를 연상시키는 머리를 한 모델들이 차례로 걸어나옵니다. 빨강과 노랑, 검정 색상이 어우러진 과감한 디자인의 의상이 돋보입니다. LED 안경이 달린 헬멧을 쓴 모델이 나오자 관객들은 신기한듯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올해 '밴쿠버 패션위크'에 초청된 한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입니다. [인터뷰:케이리 디머크, 관객] "마지막 쇼가 좋았는데, 색상과 모양을 활용한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작품의 구성 또한 아름다웠어요." 이번 패션쇼에는 캐나다와 프랑스,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디자이너 25명이 참가했습니다. 한국에선 디자이너 곽현주 씨와 하상백 씨가 참가해 2011년 추동 콜렉션을 선보였습니다. 지난 가을에 이어 두 번째 참가한 하 씨는 독특한 소재를 활용해 현지 언론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인터뷰:하상백, 패션 디자이너] "신체의 비율을 줄무늬라든가 끈을 이용해서 제 나름대로 편집을 해보는 그런 디자인을 한번 시도해봤어요." [인터뷰:곽현주, 패션 디자이너] "캐나다 시장에 다양한 인종들이 있는데, 그 계층의 젊은 여성들한테 잘 받아질 거라고 생각이 돼서..." 한인 디자이너의 작품들은 현지 바이어들의 호평을 받으며 현지 진출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인터뷰:제니퍼 그레이, 캐나다 바이어] "한인 디자이너 2명의 작품은 색상이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예상한만큼 아주 훌륭했습니다." 이번 밴쿠버 패션위크를 계기로 더 많은 차세대 한인 디자이너들이 캐나다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YTN 월드 이은경입니다.
2011.04.25
[국내]
[한인 무역인이 뛴다] ④ 브라질 이도찬씨
재봉틀 5대로 매출 600만달러 의류업체 성장 (창원=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못사는 사람은 이유가 있습니다. 투자하는 것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습니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이노센스'라는 브랜드의 여성의류를 팔아 연간 600만달러의 매출을 내는 이도찬(50)씨는 21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공 비결로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이씨는 월드옥타 지회장으로서 경상남도 창원에서 개막된 월드옥타 제13차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96년 상파울루 한인 밀집지역인 봉헤치로 뒷골목에서 옷가게를 하다가 중심로로 옮겼더니 연매출이 10배나 뛰었다"며 "과감한 투자 없이는 비전이 없음을 체험하고 공격적 전략을 펼쳐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뒷골목에서 장사할 때는 패션잡지를 사서 보는 것도 아까워 빌려보고 카피 옷만 만들었는데, 전략을 바꾼 뒤로는 매달 파리ㆍ런던ㆍ밀라노 같은 도시를 방문해 패션의 흐름을 읽고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현재 봉헤치로 `본통'에 10∼20대 여성을 겨냥한 의류 도매점 4곳을 운영, 직원 100명을 두고 있으며 작년부터는 한국의 강화마루를 브라질로 수입하는 무역업도 시작했다. 한인들끼리 `본통'이라 부르는 이 중심로는 500m 길이 도로 두 곳으로, 한인 의류점 100씩 200개가 들어서 있어 누구나 가게를 얻고 싶어하는 곳이다. 그는 스물세 살이던 1984년 생활고 때문에 가족과 함께 상파울루에 이민했다. 집에 재봉틀 5대를 마련하고 부모와 이씨를 포함한 세 아들은 쪽잠을 자면서 재봉틀을 돌렸다. 한인 동포들은 이씨 가족처럼 의류 하청업에서 시작해 가게를 내고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식으로 진화, 현재 브라질 여성의류 시장의 30%를 주도하고 있다. 이씨는 "브라질 의류시장은 아주 빠른 속도로 변한다"며 "한인들은 매주 매장 디스플레이를 바꾸고, 새 옷을 내놓은 지 일주일이 지나면 30%, 한 달이 지나면 70%를 할인하는 등 `급한 성격'을 십분 활용해 독보적인 지위에 올랐다"고 자랑했다. 또 "한인 2세들이 의상학을 공부해 부모의 사업을 돕고, 이어받는 경우가 많아 서비스와 경쟁력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며 "내 딸도 패션학과에 진학해 벌써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본통에 넓은 땅을 구입해 대규모 전용 매장을 짓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도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noano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4.21
[국내]
[한인 무역인이 뛴다] ③ 중국 남기학씨
대학강사서 사업가 변신…연매출 250억원 (창원=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중국 선전(深천<土+川)의 조선족 기업인 남기학(49)씨. 그가 경영하는 플라스틱 사출업체 예지아(燁嘉) 정밀플라스틱은 중국 경제만큼이나 놀라운 성장세를 구가하며 연 매출 1억5천만위안(한화 250억원) 대로 올라섰다. 지난 2001년 직원 40명을 두고 기업을 일으킨 지 꼭 10년 만이다. 월드옥타 지회장으로서 19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개막된 월드옥타 제13차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남씨는 20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철저히 현지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에서 하던 대로 중국에서 사업하면 실패하기 쉽다"며 "중국 현지의 사업문화와 인력관리 요령을 잘 파악하고, 빠른 일 처리도 좋지만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인들이 중국에 오면 무조건 싼 것을 찾는데 소탐대실하기 십상"이라며 "적정한 가격의 품질 좋은 부품이나 제품을 찾아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헤이룽강(黑龍江)성 지시(鷄西) 출신인 남씨는 조선족 학교에서 초.중.고교 과정을 마친 뒤 대학에서 자동제어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지시대학에서 5년간 강사로 재직한 그는 1994년 중국 최초 개방도시인 선전의 플라스틱 사출공장 기술자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어는 물론 일본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기계설비 이론에 실무까지 겸비한 남씨는 2001년 독립해 예지아 정밀플라스틱을 설립했다. 남씨는 사업에 나선지 1년만에 금형공장을 짓고, 이듬해 제2 사출공장을 세우는 식으로 해마다 공장을 늘려 현재 6개의 공장에 직원 1천여명의 이끌고 있다. 한국에는 은행 통장용 프린터기와 케이블 TV 수신기, 전화기 등의 부품을 납품한다. 지난해에는 1억5천만위안의 매출을 달성했다. 남씨는 또 일본회사의 투자를 받아 선전 외곽의 새로운 공단에 업소용 게임기 외형을 만드는 공장을 짓고 있다. 올해 가을 완공되면 전체 직원이 2천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는 "사업이라는 게 참 별나다"며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직원 500명을 고용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딱 10년 만에 직원수를 2천명까지 늘리게 되니까 자꾸 목표를 상향 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남씨는 "남들 앞에 떳떳이 서려면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땀 흘려야 한다"며 "5년 뒤에는 상장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noano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4.21
[국내]
[한인 무역인이 뛴다] ②일본 남융행씨
YKK지퍼 수출중계…연매출 3천만달러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고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내 이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루이뷔통, 마크제이콥스, 코치 등 명품가방 회사에 YKK지퍼를 독점 공급하는 일본 세이유코퍼레이션의 남융행(57) 대표는 19일 월드옥타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 참석을 위해 방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객 이익 우선주의'를 사업 철학으로 내세웠다. 재일교포 2세로 오사카에서 태어난 남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남씨는 "학창시절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하고 인식도 좋지 않아서 주변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며 "하지만 내적 갈등이 너무 심해서 대학 들어가자마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한국어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1979년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재일교포라는 태생 때문에 대기업 취직은 꿈도 못 꾸고, 지인의 소개로 YKK지퍼 수출대리점에 입사했다. 일본인 요시다 다다오가 1934년 설립한 YKK사의 지퍼는 1만번을 열고 닫아도 끄떡없는 지퍼계의 `명품'으로, 세계 지퍼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남씨는 YKK의 다양한 지퍼 가운데 가방에 사용되는 지퍼만 취급하면서 가방 원단과 단추, 장식품 등을 지퍼와 함께 한국의 봉제업체에 가져다 팔았다. 6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험을 쌓은 그는 1984년 서른 살 되던 해에 YKK와 별도의 수출대리점 계약을 하고 세이유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사무실 구할 돈이 없어 재택근무를 하고, 직원 한 명 두지 못한 1인 기업이었지만 밤낮없이 발로 뛴 덕택에 2년 만에 직원을 4명으로 늘릴 수 있었다. 남씨는 "바이어를 만나러 갈 때 항상 두세 가지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준비했다"며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고를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을 준비한 것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업을 키워가는 재미에 푹 빠졌지만, 엔고가 심해지면서 도저히 회사를 운영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1995년 일단 폐업하고 5년 동안 동종 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며 기회를 엿봤다. 드디어 2000년 세이유 코퍼레이션을 재가동한 남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의 유명 가방회사 `코치'가 생산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면서 남씨에게 YKK지퍼 공급을 의뢰한 것이다. 처음에는 코치에 연간 300만달러 어치의 지퍼를 공급했는데 `최상급의 지퍼를 납품한다'는 인정을 받으면서 1천800만 달러까지 물량을 늘렸고, 루이뷔통과 셀린 등 다른 명품회사로부터 주문이 들어와 지난해 연매출 3천만 달러를 달성했다. YKK지퍼 수출대리점이 많았지만 핸드백용 지퍼는 자연스럽게 남씨 회사가 독점 공급하게 됐다. 그는 홍콩법인에 이어 다음 달에는 베트남 호찌민에도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남씨는 "높이 뛰려면 무릎을 많이 구부려야 한다는 말을 믿고 오랜 시간을 참고 견뎌냈다"며 "이제는 후계자를 양성하면서 월드옥타 오사카 지회장으로서 동포기업인들의 사업을 실질적으로 돕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noanoa@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4.19
[국내]
[한인 무역인이 뛴다] ①필리핀 이원주씨
이원주 케이 리 패션 대표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필리핀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의류 생산업체 `케이 리 패션(Kay Lee Fashion)'의 대표는 한인 동포 이원주(57)씨. 월드옥타 30주년 기념식에서 지식경제부장관상을 받고자 방한한 이씨는 18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신뢰를 최우선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성공 비결을 전했다. 2011.4.18 noanoa@yna.co.kr 연매출 3천만달러 `케이 리 패션' 대표 <※편집자 주 = 최대 재외동포 한인 경제인단체인 월드옥타(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는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아 18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기념행사를 갖는데 이어 19일부터 나흘간 경남 창원시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제13차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를 연다. 연합뉴스는 이번 행사에 참석하는 한인 무역인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활약상을 보인 인물들을 취재해 소개한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신뢰를 최우선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18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월드옥타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지식경제부장관상을 수상한 이원주(57) 케이 리 패션 대표는 자신의 회사를 필리핀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의류 생산업체로 키운 비결을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경남 고성 출신인 이씨는 1976년 군 제대 직후 지인 소개로 부산의 국제그룹 산하 조광무역 와이셔츠 공장에 입사하면서 의류업계에 발을 들였다. 기계공 말단직으로 입사한 이씨는 `이왕에 시작한 일,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워보자'는 심정으로 와이셔츠 원단을 재단해 바느질하고, 포장을 해서 실어 보내는 전 과정을 부서별로 찾아다니며 묻고 어깨너머로 배웠다. 왕성한 호기심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받은 그는 1980년 필리핀 마닐라 공장에 1년간 파견되는 기회를 얻었고, 이를 계기로 1983년 미국 의류회사로부터 필리핀 공장의 매니저를 맡아달라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다시 필리핀 땅을 밟았다. 이씨는 "미국 본사는 나를 필리핀에만 두지 않았다"며 "미국, 홍콩, 남미의 국가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둘째 아들이 태어난 지 열흘 뒤에야 소식을 들을 정도로 정신없이 일에 몰두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3년 반이 지나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인 파트너와 둘이 소자본으로 여성의류 하청공장을 차렸다. 이씨는 `주문하면 품질과 납기는 무조건 지킨다'는 원칙 덕택인지 1년여 만에 직원이 300명까지 늘자 파트너와 분리, 1987년 자본금 25만 달러를 투입해 `케이 리 패션(Kay Lee Fashion)'을 설립했다. 코리아(Korea)의 첫 글자 `K'를 변형한 회사 이름은 `코리아에서 온 이씨가 세운 패션업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업 초장기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신용장을 여느라 일주일 동안 은행을 드나들며 사정을 해야했고, 납기를 맞추려고 열흘간 밤샘작업을 하고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 노조원들의 불법파업으로 폐업신고를 하고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케이 리 패션을 열고 처음에는 미국ㆍ유럽회사의 하청업체로부터 재하청만 받다가 1989년 직접 주문을 받기 시작해 200명이었던 직원은 2천500명까지 불어났고, 2006년∼2008년 연간매출 4천만 달러를 달성했다. 그의 회사는 주로 바나나리퍼블릭과 폴로, 캘빈클라인 같은 유명의류를 필리핀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데, 2009년부터 미국 금융위기 여파로 주문이 줄었지만 여전히 3천만달러 이상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씨는 "사업을 하면서 거짓말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거짓말과 변명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할 수는 있어도 잘못은 또 다른 잘못을 낳기에 결국 발목을 잡는다"고 비즈니스 철학을 밝혔다. 그는 2003년부터 사단법인 JTS코리아(이사장 법륜스님) 필리핀지부 대표로서 10여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민다나오 오지에 40여개 학교 설립을 지원해왔으며 올해 1월부터는 필리핀한인총연합회 회장을 맡아 필리핀 동포 10만명을 대표하고 있다. noanoa@yna.co.kr
2011.04.19
[국내]
역경을 딛고 성공한 동포 여성들
[앵커멘트]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파워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데요. 미국 텍사스에도 역경을 딛고 성공한 동포 여성들이 있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김길수 리포터가 전해 드립니다. [리포트] 이른 아침, 한 여성이 회사에 제일 먼저 출근해 일에 몰두합니다. 어린 시절, 한국의 한 보육원에서 입양돼온 조옥주 씨입니다. 조 씨는 3년 전, 작은 철공소를 인수해 남자들도 꺼리는 힘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인터뷰:조옥주, 철강회사 사장] "철강산업은 모든 건설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에요. 이런 사실에 흥미와 호기심을 느껴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직원 7명에 연 매출 3억 원에 불과했던 회사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입니다. 3년 동안 직원이 서른 명으로 늘고, 매출은 열 배나 뛰었습니다. 조 씨는 미국의 경제잡지 포춘지에 성공한 여성 경영자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조옥주, 철강회사 사장] "전국적으로 철강사업을 확장해서 고용창출을 이끌어 내고 싶어요." 댈러스의 한 피자가게가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저렴하고 맛좋은 피자'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연일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가게의 사장 크리스티나 한 씨는 10년 전 미국으로 이민 온 동포입니다. [인터뷰:크리스티나 한, 브라자 데쌍테 대표]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화장실 청소 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하루는 청소하면서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화장실도 넘치고 그래 서 그냥 가운데 앉아서 엉엉 운 적이 있거든요.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1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한 씨는 낮에는 피자가게, 밤에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연 매출 80억 원을 올리고 있습니 다. [인터뷰:크리스티나 한, 브라자 데쌍테 대표] "브라자 데쌍테를 전국 미국 내에다 열고 한국에도 열고 싶은 희망입니다." 일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성실함으로 낯선 미국 땅에서 성공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여성 동포들의 사연이 동포사회에 잔 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텍사스에서 YTN 월드 김길수입니다.
201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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