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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2세 아르헨 차관보 변겨레 "언제나 한글이름으로 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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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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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7.01
한인2세 아르헨 차관보 변겨레 "언제나 한글이름으로 결재"

한인2세 아르헨 차관보 변겨레 "언제나 한글이름으로 결재"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2016 한·중남미 함께 가는 미래' 포럼에 참석 중인 한인 2세 변겨레(Antonio Kyore Beun) 아르헨티나 문화부 차관보가 30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외교부 출입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6.6.30 seephoto@yna.co.kr

유창한 한국말 구사…"손바닥 맞아가며 배워 절대 잊을 수 없어"

"정치, 큰 변화 일으키는 방법…정부 투명화, 빈곤 없애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김효정 기자 =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얼굴이 달라서 사람들이 저를 쉽게 기억해요. 그래서 두 배로 겸손하게 하고 두 배로 더 노력합니다."


한인 2세로서 아르헨티나 주류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출, 중앙정부 고위직까지 오른 변겨레(29, Antonio Kyore Beun) 아르헨티나 연방정부 문화부 차관보는 유창한 한국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외교부 주최로 열리고 있는 '2016 한·중남미 함께 가는 미래' 포럼 참석 등을 위해 지난 25일부터 방한 중인 그는 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외교부 출입기자들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보좌했던 이반 페트렐라 시의원이 연방정부 문화부 차관에 임명되면서 지난 1월부터 문화부 차관보에 발탁됐다.

그의 부모님은 1980년 단돈 10달러를 들로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갔고, 언제나 모국을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세 아들의 이름을 겨레, 얼(25), 결(20)로 지었다. 남동생 결은 아르헨티나 대통령궁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인 2세로 대통령 연설문 작성팀의 일원이다.

이 때문이지 그는 간담회 내내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인 2세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점을 강조했고,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부모님의 강인한 훈육을 소개했다.

"'겨레'라는 이름이 한민족이라는 뜻이 있다고 설명하면 사람들이 더 좋아해요. 저를 현지이름인 안토니오로 아는 분은 거의 없어요."

그는 "결재를 할 때도 '변겨레'로 한다"면서 "한국계 아르헨티나인이 고위관료가 됐다는 도장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언제나 사인을 한국어로 한다"고 소개했다.

변 차관보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열심히 해야 한다는 교육을 많이 받았다"면서 "무엇을 시작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장을 봐야 하는 그런 점이 저의 장점이 된 것 같다"고 자신을 평가했다.

한인2세 아르헨 차관보 변겨레

한인2세 아르헨 차관보 변겨레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2016 한·중남미 함께 가는 미래' 포럼에 참석 중인 한인 2세 변겨레(Antonio Kyore Beun) 아르헨티나 문화부 차관보가 30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외교부 출입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6.6.30 seephoto@yna.co.kr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외국인으로서 어떻게 관료가 됐느냐고 묻는데, 저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저는 한국계 아르헨티나인이지 절대로 외국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은 저에게 '태평양 한복판에서 헬리콥터에서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그냥 해변이 보일 때까지 열심히 헤엄쳐야 하는 상황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다"면서 "(그래서)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정신으로 일했던 것 같고, 문이 하나 열리고 또 하나의 문이 열리면서 차관보직까지 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12살 때부터 부모님이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을 자주 시켰다면서 15세 때는 2천300㎞ 떨어진 남쪽 도시에 가서 그곳 주지사와 면담하고 오라는 미션을 준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된 배경으로 "어머니로부터 손바닥을 하도 맞아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말이 한국말"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 태어나 한인 2세로 살면서 독일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문화변동 때문에 정체성이 약간 혼란스러울 시기가 있었다"면서 "한국 독일 아르헨티나에서 제일 좋은 점을 퓨전(융합) 시켜서 더 나은 나의 비전을 만들어야겠다는 그런 다짐으로 극복했다"고 전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법대 시절, 22세에 정당 소속으로 학생회 활동과 함께 정치에 입문한 그는 "남을 도울 방법 같았다. 정치가 큰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투명화, 현대화가 제일 큰 바람"이라면서 "장기적으로 빈곤을 없애고, 돈이 있든 없든 같은 기회를 줄 수 있는 그런 정부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변 차관보는 "한국과 아르헨티나 작가들이 상대국을 서로 방문해 3개월간 머물면서 경험을 쌓는 교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다음 달 1일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와 만나 협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lkw777@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6/30 19:49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