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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칼리만탄에 호텔 짓는 한상 나성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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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대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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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02

2010년 진출해 4개 자회사 둔 타타프리미어그룹 일궈
국내외 특허받은 골프공 '엑스페론' 해외 총판도 맡아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1976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1994년 광주예술전문대 사진학과에 입학했다가 그해 의무경찰에 자원입대했고, 제대 후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사회에 진출했다.


여기까지 나성문(41) 씨의 이력은 다른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중·고교 때 태권도 선수 생활을 했다는 점이 눈에 띌 뿐이다. 그러나 1997년 의무경찰 복무 후 그의 20여 년의 삶은 남들과 좀 특별하다.


그가 인도네시아로 출발하기에 앞서 2일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가 건넨 명함 앞면에는 사진과 함께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자카르타지회 이사', 뒷면에는 '에이스골프(Ace Golf) 국제 마케팅 디렉터'라고 표기돼 있다. 서울과 인도네시아에서 사용하는 휴대전화 번호와 팩시밀리 번호, 이메일 주소 등도 빼곡히 적혀 있다.


"지난달 22∼25일 울산에서 열린 제18차 월드옥타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에 참가하고, 에이스골프 본사가 있는 광주에 들렀다가 6주 만에 인도네시아로 돌아갑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요즘은 땅 위에 있는 시간보다 비행기 타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바쁩니다."


나 대표는 인도네시아에서 타타프리미어그룹(TATA PREMIER GROUP)의 대표를 맡고 있다. 중국계 아내인 칭타 스탠리가 회장이다.


그룹 산하에는 4개의 자회사가 있다. 유류·윤활유, 타이어·배터리, KCC 페인트, 중장비 부품, 마린 서비스, 무역 등을 하는 'TATA NIAGAMAS', 광물을 중개하고 광산 기자재 및 소모품을 취급하는 'TATA GLOBAL ENERGI', 건설업체 'TATA MULTI CIPTA KARYA', 호텔을 운영하는 'TATA GLOBAL INDONESIA' 등이다.


이 타타그룹을 실제 경영하는 그는 인도네시아 사업을 챙기면서도 최근 에이스골프의 해외 총괄 판매를 맡아 인도네시아-서울-광주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유럽 등지를 하루가 멀다고 날아다닌다.


"제 고향의 기업에서 개발한 골프공 '엑스페론'(Xperon)에 매료돼 해외 판매를 맡게 됐어요. 제가 이 골프공에 날개를 달아준다면 전 세계를 석권할 수 있을 것 같아 뛰어든 것이죠. 골프공 제작 과정에서 중력 때문에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는 원리를 밝혀낸 뒤 균형을 잡아주는 '듀얼 밸런스' 제조공법을 창안, 수많은 국내외의 특허를 받았습니다. 보기 플레이어는 파 플레이어로, 파 플레이어는 버디 플레이어로 만들 수 있는 신비의 공입니다."


나 대표는 휴대전화를 열어 비디오를 보여주며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경사가 없는 곳에서 퍼팅하는데도 공이 한쪽으로 계속 휘어나가는 영상을 보여줬다.


"95%의 골퍼는 골프공이 완전한 구형체가 아니라는 것을 몰라요. 무게중심이 골프공마다 다르죠. 그런데 엑스페론만큼은 정확한 무게중심을 찾아 생산하고 그곳에 '에임라인'(조준선)을 새겨넣고 있습니다. 이 선 방향대로 치면 공이 똑바로 나갑니다."


직접 꺼내 보여준 골프공은 시중에 유통되는 것과는 뭔가 달라 보였다. 올해 초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골프산업용품박람회인 '2016 PGA 상품 쇼'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정신없이 엑스페론의 특장점을 자랑하는 나 대표의 얼굴에는 뭔가 남과 다른 열정이 배어 나왔다.


말을 끊고 "연간 얼마나 매출을 올리느냐"고 묻자 "이제 시작"이라며 "지금까지 번 돈은 새로운 사업을 위해 개발하고 투자하는 준비 자금일 뿐이라고 에둘러 대답했다. 대신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말하며 웃었다.


나 대표의 그런 여유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의 삶은 지난 2010년 인도네시아에서 사는 아내를 만나 결혼해 그해 12월 그곳에 이민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나 대표의 부모는 그가 의무경찰에서 제대하자 미국에 유학을 갈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거절했고, 아예 대학 복학도 포기했다. 그러고는 의경 복무할 때 믿고 따르던 형사들의 권유로 인천에서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몇 달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업 자금을 만들었어요. 곧바로 서울 명동에 진출했죠. 처음에는 시계·지갑·다이어리·가방 등을 유통하는 잡화 장사를 했습니다. 인천, 충남 온양·천안, 부산, 마산 등 7개 체인을 둘 정도로 괜찮았죠. 그런데 1997년 불어닥친 IMF 한파로 쫄딱 망했습니다."


3년여 동안 부도의 후유증을 앓던 그는 경찰공무원이 되겠다고 시험 준비를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사상 최대의 경쟁률을 뚫지 못하고 쓴맛을 봐야만 했다.


이 길이 아니라고 자위하며 다시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이 또한 실패. 서비스업, 외판업 등으로 계속 바꿔가면서 발버둥을 쳤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인의 권유로 '케이.지 건설'에 입사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기획실장을 맡아 건설업 전반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내친김에 2002년 인하공업전문대 건축학과 야간반에 들어갔다.


하지만 낮에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주경야독의 꿈도 모 회사의 부도로 산산이 깨졌다.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난 그는 2003년 미래해운에 사무장으로 입사했다. 이곳에서는 선박관리 안전 매뉴얼을 공부했고, 선박 안전관리자 교육도 이수했다.


"1년 만에 미래해운을 그만두고 나와 개그맨 양원경 씨의 매니저로 일했어요. 또 공연기획사에서도 근무했고, 여행사에도 잠시 발을 들여놓았어요. 정말이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젊은 날에 산전수전 다 겪었어요."


그는 이렇게 쌓은 인맥과 경험을 인도네시아에서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다.


현재 칼리만탄티무르 주에 있는 도시 발릭파판에 '맥스 원 호텔'을 짓고 있다. 112개 객실을 갖춘 7층짜리 3성급 비즈니스호텔로 2017년 문을 열 예정이다. 이 지역은 보르네오 섬 최대 석유 기지의 하나이기에 관련 업계의 비즈니스맨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다.

나성문 인도네시아 타타프리미어그룹 대표.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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