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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곽 "K팝 뮤지션의 미국 내 성공 발판 만들고 싶어"
전 유니버설뮤직그룹 부사장, 스타트업콘 참석차 방한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창의력을 억지로 끌어내려고 해선 안 돼요.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딱 느낌이 올 때가 있죠." 12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캐런 곽 전 유니버설뮤직그룹 수석부사장은 창의력을 유지하는 비결을 소개하며 "음악을 진정으로 즐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캐런 곽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스타트업콘 2016'(Startup:Con 2016)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이어 "음악을 일로서만 접근해선 안 된다. 음악종사자들에게 때로는 팬의 입장에서 음악을 듣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계 2세인 캐런 곽은 미국 음반업계에서 'K.K.'란 별명으로 불리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학 시절 모타운레코드 인턴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탁월한 A&R(Artist & Repertoire) 능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A&R이란 아티스트를 발굴·계약·육성하고, 아티스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을 수집해 매칭하는 업무를 말한다. 캐런 곽은 애틀랜타의 라페이스 레코드 A&R 부문 부사장과 아일랜드 데프 잼 뮤직 그룹 수석부사장을 거쳐 세계 최대 음반사 유니버설뮤직그룹의 수석부사장을 지냈다. 하지만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해 회사를 떠났으며 현재는 소니뮤직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비록 직장을 그만뒀지만, 여전히 미국 대중음악계는 그의 능력이 필요했다. 세계적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최근 발표한 정규 9집 '글로리'(Glory)의 총괄 제작을 담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매니지먼트 측이 먼저 제작 책임을 맡아줄 것을 요청해 왔다고 한다. 지금은 미국 알앤비(R&B) 힙합계의 신성 티나셰의 새 앨범을 작업 중이다. 제작자로서 뮤지션과 성공적 관계를 맺는 비결에 대해 캐런 곽은 "스타는 스타"라고 강조했다. "항상 아티스트를 스타라고 생각하고 스타로 대하며, 아티스트들의 취향과 성향을 우선 파악한 후에 작업해야 한다"며 "또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크리에이티브 컨시어지'(Creative Concierge)라고 규정했다. 호텔에서 고객을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듯이 아티스트의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해 스튜디오 안팎에서 모든 걸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캐런 곽은 "훌륭한 뮤지션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었고 모든 음반이 다 각별했다"면서도 "특히 2007년에 나온 리애나의 '엄브렐라'(Umbrella)가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설명했다. 캐런 곽의 설득으로 '엄브렐러'라는 곡이 리애나라는 임자를 제대로 만나게 됐고 이 음반은 600만 장이 팔려나갔다. 이후 그는 머라이어 캐리, 저스틴 비버, 비욘세 등 세계적 스타와 함께 작업하게 됐다. 그는 또 미국 음악산업에서 자신이 이룬 성공에 대해 "여자로서 한국계로서 어느 분야든 쉬운 분야는 없다"며 "하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만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어 자신의 성공 배경에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다고 답했다. "자유분방한 사고와 열린 마음을 지닌 부모님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음악산업에서 일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고 많이 지원해주셨어요. 늘 감사하죠." 지난 8월, 30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그는 "한국에 오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꾸 생각난다"며 인터뷰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아울러 캐런 곽은 "미국의 음반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너무 바빠서 K팝에 관심을 두진 못했다"면서도 "본능적으로 한국 음악에 끌리는 요소가 있다"고 했다. 그는 "K팝과 미국 대중음악의 컬래버레이션(협업)에 관심이 있고 이번 방한 동안 몇몇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들을 만나 볼 계획"이라면서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꼭 한국 아티스트나 프로듀서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어떤 아티스트를 만날 계획이냐는 질문에 캐런 곽은 '영업 비밀'이라며 웃어 보였다. kihun@yna.co.kr 브리트니 스피어스 앨범 제작자 캐런 곽 브리트니 스피어스 앨범 제작자 캐런 곽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캐런 곽 전 유니버설뮤직그룹 수석부사장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10.12 ryousanta@yna.co.kr 질문에 답하는 캐럭 곽 질문에 답하는 캐럭 곽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캐런 곽(Karen Kwak) 전 유니버설뮤직그룹 수석부사장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10.12 ryousanta@yna.co.kr 질문에 답하는 캐럭 곽 질문에 답하는 캐럭 곽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캐런 곽(Karen Kwak) 전 유니버설뮤직그룹 수석부사장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6.10.12 ryousant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2 16:23 송고
2016.10.13
[사람들] 남촌문학상 수필부문 수상 캐나다 문인 백복현 씨
"경계인의 삶이 내 문학의 토양…고국에 동포문학 더 알리겠다"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운 좋게 좋은 출판사를 만나 그동안 써 두었던 수필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는데 고국에서 문학상까지 받게 돼 영광입니다.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을 소재로 한 문학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힘이 납니다." 12일 서울시 종로구 함춘회관에서 열리는 '제8회 남촌문학상 시상식'에서 수필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캐나다 문인 백복현(57·여) 씨의 소감이다. 그는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힘든 타향살이의 유일한 위안은 모국어로 글쓰기였다"며 "이번 수상은 더욱 열심히 정진해 동포문학을 고국에 더 많이 알리라는 격려라고 생각한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문예계간지인 '문예바다'에서 주관하는 남촌문학상은 GS그룹 공동창업주인 고(故) 허준구 명예회장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으며 매년 소설과 수필부문의 신간 가운데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백 씨가 지난 6월에 출간한 수필집 '내 모니터 안의 화단'의 올해 수상작으로 뽑았다. 위원회는 "최근 트렌드인 개인의 신변잡기를 다룬 수필들과 달리 백 씨의 작품은 이민사회의 다양한 단면을 뛰어난 문체로 그리고 있어 참신하게 다가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내 모니터 안의 화단'은 백 씨가 지난 2년간 캐나다 토론토 한국일보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등에 발표한 글을 모은작품이다. 한인사회의 각종 이슈에 대한 단상, 토론토 험버 병원 간호사로서 근무지인 병원에서 마주치는 일상, 고국에 대한 그리움 등을 담았다. 백 씨는 "동포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글솜씨가 어느 정도 인지, 어떤 글이 유행인지, 고국의 문단에서도 통할 수 있는지 늘 궁금해한다"며 "동포문학인과 고국의 문인이 교류하는 '문학사랑방' 같은 사이트를 재외동포재단에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공립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2002년 가족이민으로 캐나다로 건너갔다. 6년 전부터 글쓰기에 도전해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신춘문예 수필부문 가작(2011), 미주중앙일보 신인 문학상 수필부문 가작(2012),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시 부문 가작(2013)을 수상했고, 2014년에 재외동포재단이 공모한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대상을 차지하며 고국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1 13:58 송고
2016.10.12
[사람들] 윤상식 필리핀 '망고장학회' 이사장
5년간 국내 필리핀 다문화가정 자녀 83명에게 장학금 지급 "필리핀에 한인은 좋은 이웃·형제라는 이미지 심겠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필리핀에 살면서 사업을 하고 아이도 키우며 가정을 이뤄나가고 있어요. 삶의 터전인 셈이죠. 이 나라에 한국인은 좋은 이웃이고 형제라는 이미지를 심는 것은 우리 차세대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윤상식(59) 필리핀 '망고장학회' 이사장은 "필리핀에 사는 한인은 현지 사회와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누구보다 강하다. 한인이 현지인에게 살해되거나 빈번하게 공격을 받는 최근의 상황이 그런 마음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민주평통자문위원회 해외자문회의 참석차 방한한 윤 이사장은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언론 보도 때문에 필리핀이 험악한 나라가 됐다. 치안이 불안해 살 수 없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려면 필리핀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0년간 필리핀에서 살아온 그의 이런 생각을 실천한 것이 망고장학회의 설립이다. 그는 지난 2012년 대한체육회 필리핀지회 회원들과 함께 '달콤한 미래를 꿈꾸라'는 의미에서 망고장학회를 만들었다. 해마다 고국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열리는데, 맹목적으로 참가할 것이 아니라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며 의기투합했고, 한국 내 필리핀 이주여성의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2012년 경기도 고양을 시작으로, 2013년 대구, 2014년 제주, 2015년 강원도 강릉, 2016년 충남 아산에 이르기까지 5차례에 걸쳐 필리핀 다문화 가정 자녀 83명에게 총 4천15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2017년 충북 충주에서 열리는 제98회 대회 때는 장학생 10명을 더 선발할 계획이다. 장학생은 전국체전을 여는 지자체에 4개월 전 공문을 보내 추천을 받는다. 지난 6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장학금 전달식에는 필리핀 출신인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의원이 참가했다. 윤 이사장은 이 전 의원을 망고장학회 한국자문위원에 위촉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이 내년부터 '엄마 나라말(타갈로그어) 경연대회'를 열어보자고 제안했어요. 전국의 필리핀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대상으로 행사를 열고, 장학금을 주거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엄마 나라에 보내주는 이벤트에 필리핀 한인사회가 나서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좋은 생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화답했어요." 윤 이사장은 이 전 의원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민주평통 자문회의에 참가한 필리핀 자문위원들과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필리핀지회가 주축이 되고 한인사회가 동참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경남 합천 출신인 그는 부산 의류 제조업체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1987년 필리핀에 있는 의료 제조업체의 초청으로 현지에 건너갔으며 1994년 사직서를 내고 독립해 '대한어페럴'을 차렸다. 여성 의류 전문인 이 회사는 미국 폴로, 갭(GAP) 등을 주문자제작방식(OEM)으로 만들어 수출한다. 마닐라에서 70여km 떨어진 바탕가스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90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연간 1천만 달러 매출을 올리고 있다. 대한체육회, 월드옥타 이사, 12∼17기 민주평통 자문위원 등으로 활약했으며 필리핀 한인사회의 '맏형'으로 통한다. 윤상식 필리핀 '망고장학회' 이사장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2 15:45 송고
2016.10.12
[중국동포 성공시대] (17) 서울시 명예부시장 이해응 박사
불고깃집 석쇠 닦으며 11년 '형설지공', 이화여대서 여성학 박사 "'조선족은 위험' 인식 심는 대신 갈등 해결할 상담사 키워야" "다문화정책, 낙인 찍어 차별 부추긴 측면 있다" 따끔한 충고도 조선족 4세 여성학 박사 이해응 씨는 '은평한중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의 1인 기업을 차리고 서울 역촌동에 공동 사무실을 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서울시 명예부시장으로 일하며 보람도 컸고 많이 배웠습니다. 말 그대로 실권은 없고 명예만 있는 자리라지만 서울시의 주인이자 시민의 대표라는 걸 실감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이번 달 서울시 명예부시장에서 물러나는 조선족 4세 여성학 박사 이해응(41) 씨는 7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명예를 누리도록 도와준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는 2012년 처음으로 외국인 명예부시장이 된 몽골 출신 온드라흐 씨에 이어 지난 2014년 7월 9일부터 2기 명예부시장으로 일해왔다. 각종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내고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에도 참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임기 만료일은 지난 7월 8일이었으나 후임이 뽑히지 않아 연장됐다. 서울시는 외국인·여성·청년·어르신·장애인·전통상인·중소기업인·문화예술인 등 각 분야의 인사를 추천받아 12명의 명예부시장을 두고 있다. 제3기에는 이들의 지위를 높이고 인원을 늘려 이달 안으로 16명의 명예시장을 위촉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명예부시장 재임 기간에 가장 기억나는 일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에 참여한 것을 꼽았다. 서울시는 2014년 8월 180여 명의 전문위원과 시민위원을 위촉해 다섯 달간의 토론을 거쳐 서울시민 인권헌장 초안을 만들었으나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두고 '동성애 옹호' 논란이 불거져 공포하지는 못했다. "각계각층의 시민이 모여 격론을 벌이는 광경은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참여민주주의의 현장을 목격한 거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갔다가 뜨거운 참여 열기를 보고 이 회의에 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 국적이 없는 사람은 서울시민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죠. 성소수자 이슈에 묻히기는 했으나 만일 개신교계가 이 조항에 거세게 반대하지 않았다면 이주민 문제가 가장 큰 논란을 빚었을 겁니다." 비록 공식 선포는 무산됐지만 시민위원들은 인권헌장을 독자적으로 발표하고 지난해 말 책으로도 펴냈다. 이 씨는 지난해 12월 구성된 서울시 외국인 주민대표자회의에 참여해 정책 제안과 입법 지원 등에 나선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해응 서울시 명예부시장이 은평한중문화마을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 씨는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서 태어났다. 조선족 10여 가구가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지린성 메이허커우(梅花口)시의 해동중등사범학교를 거쳐 옌볜(延邊)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증조부 때 만주로 건너왔다고 들었는데 고향은 어디인지 모릅니다. 제가 어릴 때 조부모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제가 17살 때 세상을 떠나 물어보지 못했죠. 어머니한테서 우리가 전주 이씨 집안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를 지낸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셔서 집에 책이 많았죠. 아버지 영향으로 저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남을 가르치려면 나부터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늘 책을 가까이하며 공부하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이 씨는 졸업 후 옌볜대 행정직원으로 근무할 때 그곳 연구소 '여성연구종심'(女性硏究中心)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의 자매결연 프로그램에 선발돼 1년간 교환 연구원으로 서울로 오게 됐다. 2001년 2월 말부터 한국여성연구원에서 연구와 조사를 돕고 여성학 과목도 청강했다가 한국의 여성학에 큰 매력을 느껴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2002년 8월 이화여대 석사과정에 등록하고 공부에 매달렸다. 은행에 다니던 남편도 뒤따라 서울로 들어왔다. 2013년 8월에야 박사학위를 땄으니 꼬박 11년이 걸린 셈이다. 연구원 시절과 달리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니 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생활비가 모자라 틈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고 한다. 불고깃집에서 하루 6시간씩 석쇠를 닦고, 그 집에서 주인 자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여성학은 나를 알고 사회를 알기 위한 학문입니다. 제가 석박사과정에서 여성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저 자신이나 한국·중국의 사회를 겉핥기로만 알았겠죠. 중국의 여성학은 이론과 연구 중심입니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남녀평등이 실현됐거든요. 한국의 여성학은 여권 신장 운동과 함께 체계화돼 실천학문의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한국 여성의 정치 참여나 경제활동은 중국에 뒤지는 대신 여성의 NGO 활동은 한국이 훨씬 활발하죠." 이 씨는 올해로 만 10년을 맞은 한국의 다문화 정책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따끔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예전에는 결혼이민자들이 어디 가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몰라 어려움을 많이 겪었죠. 10년 전 정부가 다문화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치며 지원책이 쏟아졌고 각종 제도도 마련됐습니다. 그러나 다문화인들을 구분해 지원하려다 보니 오히려 낙인을 찍어 차별을 부추긴 측면이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존중하는 풍토가 중요한 거죠. 동포정책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중국동포들은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라 역사적 특수성을 인정해 달라는 겁니다." 이 씨의 한국 생활도 16년째를 맞았다.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왜 그렇게 눈치가 없느냐"는 핀잔도 받고 북한식 사투리 탓에 주눅도 들었지만 이제는 중국 출신이라고 하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대학에 있을 때는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크게 받지 않았어요. 여성학계에 소수자나 약자를 배려하려는 분위기가 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대학 밖에서는 그렇지 않더군요.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에 와서 돈 많이 모았느냐', '한국 남자와 결혼하려고 왔느냐', '중국에도 이런 물건 있느냐' 등 은근히 저를 무시하는 질문을 자주 받았죠." 그는 처음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곧바로 반박하거나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두려워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채 몸을 잔뜩 웅크렸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질문을 농담으로 받아넘기기도 하고 거꾸로 질문을 던져 중국동포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주려고 한다. 이곳에 와 있는 동포 청소년에게도 "내가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면 누가 내게 다가오겠느냐"라며 "자신에게 당당해져야 소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최근 한일관계나 한중관계를 지켜보며 양국의 배경을 함께 지닌 재외동포나 다문화가정이야말로 우호협력의 가교이자 평화를 이루는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한국과 중국이 축구 경기를 할 때 '어느 나라가 이겼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면 '둘 다 이기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승부를 전제로 한 스포츠에서는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저희 심정이 꼭 그렇습니다. 결혼이주민이나 다문화가정 자녀 역시 두 나라가 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상처를 입고 피해를 보거든요." 중국인이나 중국동포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보도가 나올 때도 가슴을 졸인다. 혼자 방 안에 있어도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고 한다. "중국인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팩트임에 틀림없지만 매체에 비치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다양한 측면이나 조선족 단체의 입장은 한국의 주류 매체에 잘 반영되지 않습니다. 많은 범죄가 아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가정폭력은 남녀 간, 가족 간의 문제이지 조선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 범죄에는 배경이 있기 마련이어서 개인만 비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중국인은 위험하다는 인식만 심어줄 게 아니라 가족 갈등이나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도록 상담사를 키우는 노력이 더욱 절실합니다." 이 씨는 지난 3월 어린이집에 다니는 6살짜리 딸과 함께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중국 국적이다 보니 보육 지원을 받지 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무역업에 종사하는 남편은 중국 국적을 유지하며 재외동포 비자(F-4)를 갖고 있다. 이 씨는 현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공동연구원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초빙연구원으로 일하며 이화여대, 연세대, 서울여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은평한중문화마을'이란 이름의 1인 기업을 창업해 올 초 공동 사무실도 냈다. 중국어 통번역과 여성 관련 연구 프로젝트 수행이 주된 업무다. 그의 관심은 여성학 연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2009년부터 아시아 지역 이주여성들과 '생각나무BB센터'라는 모임을 만들어 이중언어 강사를 양성하는가 하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도 활발히 봉사하고 있다.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0 07:00 송고
2016.10.10
[사람들] 중국 양말 제조기계 시장 평정한 최송호 씨
월드옥타 이우지회장 "26년간 꾸준히 한우물만 팠지요" (정선=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양말을 생산하는 기계 분야에서 영업을 시작으로 제조, 판매, 무역까지 26년간 한 우물을 판 덕분에 업계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중국 이우지회장인 최송호(51) 저장주지명광기계유한공사 대표는 저장성 주지시에서 양말 제조 기계를 생산해 연 매출 2천만 달러(약 223억원)을 올린다. 중국의 양말 공장 10곳 중 6곳이 그가 만든 기계를 사용한다.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월드옥타와 연합뉴스가 공동개최한 '제21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 참석차 방한한 그는 7일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무엇이든 시작하면 한 눈을 팔지 않는 성격이라 우직하게 매달렸더니 어느새 남들도 인정해 주더라"고 말했다. 최 씨는 양말을 생산하는 기계 중에서도 마무리 공정에 필요한 스팀·다리미 작업 기계를 만들어 중국 내수시장과 동남아 등지에 판매하고 있다. "양말 제조공정에서 스팀 작업은 착용감 등 품질을 좌우하기에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기계가 아주 인기가 있어요. 중국 양말 제조 공장 10개 중 6개는 제가 만든 스팀 기계를 쓰고 있습니다."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투먼시에서 태어난 그는 연변대 졸업 후 국영기업에서 1년 반 정도 근무하다 1990년 샤먼에 있는 한국 양말 제조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조선족의 장점을 살려 판매 실적을 쌓았다. 6년간 중국 전역을 돌며 양말 공장주들과 안면을 텄고, 이러한 경험은 1997년 회사를 차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창업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결혼 후 첫 딸이 태어나 더 의욕적으로 일에 매달렸는데 다니던 회사가 1996년 갑자기 부도가 났다. 실직 위기에 몰려 살길을 고민하던 차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고객사 사장으로부터 중고 양말 기계를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평소 고객 관리를 잘해온 덕분에 쉽게 구매자를 연결할 수 있었다. 고가의 기계이다 보니 50대를 판 수수료가 자그마치 50만 위안(약 8천300만 원)이나 됐다. 자신이 받던 월급(1천500위안)의 333배였다. "돈을 어떻게 버는 것인지 깨닫게 되자 실직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어요. 용기를 내 사업체를 차렸고 업계에서 인정받던 영업력 덕분에 한국 양말 기계 제작사 5곳의 총판을 시작했죠. 한국산 기계가 품질을 인정받던 시절이라 회사는 승승장구했어요. 3년 만에 매출 1억6천만 달러를 올리며 업계를 평정했다고나 할까요." 중국은 현금 거래를 중시하기 때문에 매일 돈을 마대자루에 담아 은행으로 들고 가다 보니 은행 직원들이 돈을 세느라 퇴근을 못 한다고 싫어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외환위기는 그도 비껴갈 수 없었다. 기계를 공급하던 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두 번째 위기가 왔을 때 그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양말 생산 기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차라리 제조회사를 차리자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도산으로 실직한 한국 제조사의 엔지니어들도 합류하겠다고 밝혀와 공장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제품을 내놓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영업은 수월했다. 평소 쌓아둔 인맥 덕분이었다. 납품한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직접 달려가 수리를 해주며 고객 만족에 최선을 다한 덕분에 쉽게 시장 점유율을 계속 높였다. 그는 최근에는 해외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월드옥타의 네트워크를 통해 동남아와 중남미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에서 제조 공장이 아시아와 중남미로 빠져나가고 있어 해외 진출이 시급한데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건 동포기업인 덕분입니다." 최 대표는 "이번 대회에서 중남미 한상들과의 교분을 두텁게 쌓은 것이 큰 보람"이라며 "인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월드옥타 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한다"고 밝혔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07 14:19 송고
2016.10.07
[매출 1억弗 노하우] ⑤ 권병하 말련 헤니권코퍼레이션 회장(끝)
글로벌 전기부품·공업용 수소수 생성기 제조로 연매출 1억달러 "고객과 신의 지켜라, 당장 손해봐도 결국 몇 배 남는 장사" (정선=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장사꾼은 무조건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과의 신의를 지키는 게 몇 배 남는 장사입니다." 전력공급 전달장치인 '부스덕트' 제조 분야에서 세계 3위의 기업을 일군 권병하(67) 말레이시아 헤니권코퍼레이션 회장은 5일 기업 경영의 첫 번째 원칙으로 '신의'를 강조했다. 생산품의 95%를 수출하는 헤니권코퍼레이션은 세계적인 기업인 GE와 지멘스 다음으로 업계에서 인정을 받으며 연간 1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권 회장이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해외에서 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말레이시아로 건너간 것이 1983년이다. 철저한 시장 조사를 통해 첫 사업아이템을 산소용접기용 '노즐'로 정했다. 시장을 일본산이 독점하고 있었는데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한국산을 수입해 보급하면서 착실하게 사업을 키웠다. 한국 시멘트 공장이 말레이시아에 진출하자 전봇대 공장을 세워 말레이시아 전역에 처음으로 나무가 아닌 시멘트 전봇대를 보급하면서 회사를 확장했다. 이후 전기산업에 진출해 지금의 부스덕트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만들었다. 성장의 비결을 묻자 그는 "고객과의 약속은 환경이 바뀌어 손해를 보는 일이 생겨도 철저히 지켰고, 하나를 요구해오면 둘을 준다는 마음으로 응했다"고 답했다. 권 회장은 2001년 싱가포르 지하철 공사를 맡은 프랑스기업에 8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제품을 공급했다. 200만 달러어치를 공급한 시점에서 공사장 붕괴사고가 났고 고객사는 책임 소재를 놓고 싱가포르 정부와 소송을 벌이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3년이 지나 소송이 마무리됐을 때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다. 직원들은 손해가 크니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권 회장은 애초 계약대로 납품을 추진했고, 결국 600만 달러 이상을 손해 봤다. 보상은 뜻밖에도 납품한 프랑스기업으로부터 왔다. 신의를 지킨 것에 감동해 이후 굵직한 국제 공사 때마다 헤니권 제품을 써서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그는 "제조업은 주식 거래하듯 치고 빠지는 게 아니므로 길게 보고 거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도움됐다"고 설명했다. 고객에 대한 헌신적인 자세가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 사례는 또 있었다. 영국 런던의 히스로 공항 터미널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에 납품했는데 현장 책임자가 제품 설명서만으로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메일을 보냈다. 권 회장은 즉시 저녁 비행기로 엔지니어를 보내 이틀간 충분히 사용법을 설명하고 돌아오게 했다. "하루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데 이틀간 설명해달라고 했어요.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서 종일 설명하고 바로 비행기로 돌아간다니까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엔지니어를 하루 쉬게 하려고 했다고 하더군요. 감동을 하였다며 완공 기념식에 비행기 표와 함께 초청장을 보내주더군요. 공사에 들어가는 수많은 부품 중 하나를 납품한 회사인데 말이죠. 이후 그 건설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글로벌기업의 영국 공사에는 무조건 참여시켜 주었습니다." 권 회장은 현지인 고용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인도, 필리핀 등 거래 국가가 늘어날 때마다 현지인을 채용하는 전략을 구사한 덕분에 초기 시장 진입이 순조로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헤니권코퍼레이션은 세계적인 불황으로 사업이 정체를 맞자 신사업에 뛰어들어 3년의 개발을 거쳐 지난해부터 산업용 수소수 공급기를 시장에 선보였다. 산업용 수소수는 식품 생산 기계에 끼는 오염물질 제거, 병원 등 의료시설의 친환경 소독, 세제가 필요없는 자동차 세차 등 다양한 응용을 통해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사업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집에서 사용하던 한국산 정수기 덕분이었다. 필터 교환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한국에 출장왔을 때 직접 사려고 대리점에 가보니 전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으로 만든다는 사실에 무릎을 쳤다. "대기업인데도 전부 하도급 생산이더군요. 땅 짚고 헤엄치는 거로 보였죠. 정수기 기술이 앞서 있는 일본까지 찾아가서 연구하면서 수소수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겼습니다." 세계적 석유회사인 셸의 말레이시아 주요소마다 설치된 세차장에 수소수를 만들어 쓰면 세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어필했고, 셸 측에서는 친환경 방식이라며 적극 도입했다. 최근에는 대형 할인마트에도 공급하는 등 판로를 넓히고 있다. 창업을 준비 중인 차세대에 대한 조언으로 권 회장은 "한 번의 곡괭이 질로 금맥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첫술에 배부르기를 기대하지 말고 작은 성과라도 꾸준히 지속할 때 더 큰 기회가 온다"고 꾸준함을 강조했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05 09:31 송고
2016.10.05
[매출 1억弗 노하우] ④ 천용수 호주 코스트그룹 회장
폐자원 수출·광산 개발·무역 등으로 연매출 2억4천만달러 "경영자 최고 덕목은 오뚝이 근성…시류에 편승하면 망해" (정선=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성공한 한상(韓商)들은 실패를 통해 더욱 크게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망할 것을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호주에서 자원 재활용·폐자원 수출, 광산·부동산 개발, 무역, 타이어·화장품 판매 등으로 연간 2억4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코스트그룹의 천용수(63) 회장은 5일 "순탄하게 사업해 성공한 기업가는 아무도 없다"며 "위기 때마다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근성이야말로 경영자의 최고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1983년 호주로 건너가 배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는 선식(船食) 사업을 시작으로 호주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서호주 주(州)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쓰레기 분리수거와 재활용·폐자원 수출사업에 뛰어들며 회사를 키운 천 회장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사업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을 즐긴다. ROTC 장교로 군 제대 후 한독약품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영업 일선을 누빈 그는 더 큰 세상에서 꿈을 펼쳐보겠다고 사표를 내고 이민 길에 올랐다. 신입시절부터 4년 뒤 그만둘 때까지 300명의 영업사원 중에 실적이 3위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을 정도로 성과를 보여 이민이 아니라 경쟁사에 스카우트 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천 회장은 "영업을 통해 얻은 자신감 덕분에 이민 초기 영어 실력이 부족해도 현지인과의 비즈니스에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며 "결정한 일은 머뭇거리지 않았고, 실패하면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재발 방지에 힘을 쏟았다"고 밝혔다. 그가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두 가지 원칙은 '투명경영'과 '성과급제'다. "회계에서 인사 등 모든 걸 투명하게 운영하니까 직원의 충성도도 올라가고 고객의 신뢰도 깊어지더군요. 여기에다 노동 시장이 보수적인 호주에서 성과급을 도입했더니 경쟁업체보다 두 배 이상 생산성이 좋아졌습니다. 주인의식을 갖게 하려고 임원에게는 주식도 일부 떼어주고 있습니다." 천 회장은 "시류에 편승해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면 망하기 십상"이라며 실패담도 털어놨다. IT 창업붐에 일던 1999년 그는 서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를 차렸다. 200명의 직원을 두고 정부 사업에 참여하는 등 한동안 승승장구하다 정부 정책 변화로 3년 만에 막대한 투자금을 날리게 되면서 그룹이 휘청거리기도 했다. "벤처를 차리기만 하면 대박이 나던 시절이었죠. 코스닥 상장을 준비할 정도로 잘 나가다가 한순간에 망했습니다. 시장의 변화를 빨리 감지하지 못한 데다 수요 예측을 제때 못했습니다. 잘 모르는 분야인데도 철저한 준비 없이 시류에 편승한 오너의 책임이 제일 크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천 회장은 신규 분야에 진출할 때는 철저히 연구하고 꼼꼼히 따져보는 습관이 생겼다. 직원을 거느리는 경영자는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자회사마다 사장을 두고 믿고 맡기는 책임경영으로 그룹을 이끈다. 신규사업 진출 등 중요한 항목만 회의를 거쳐 결제하며 평상시에는 온라인으로 결제 내용을 들여다볼 뿐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경영자가 무책임하게 나 몰라라 해서도 안 되지만 시시콜콜 따져서는 직원들이 창의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충분히 맡길만하다고 판단되면 그때부터 제가 할 일은 믿고 격려하는 겁니다." 천 회장은 최근 국내 청년 취업난 극복의 대안으로 해외 취업·창업이 부각되는 점에 대해서도 뼈 있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해외 취업도 국내 못지않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막연한 동경으로 해외에 나가서는 적응 못 합니다. 주변의 성공한 한상을 보면 다들 한국에서 잘 나가던 사람인 게 특징입니다. 국내에서 취업도 잘 안 되고 사업도 안 풀린다고 해외로 나가겠다는 안일한 생각은 또 다른 실패를 부를 뿐입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서 일하는 한국 청년들이 농장이나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05 09:31 송고
2016.10.05
[매출 1억弗 노하우] ③ 장영식 일본 에이산그룹 회장
면세점 17곳 운영 업계 1위, 사업 다각화로 연매출 2억5천만달러 "채용에 국적·학력·성별·연령 안따져, 중요한 것은 능력" (정선=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22년간 사업을 하면서 면세점을 시작으로 신규사업에 진출 때마다 위험부담이 크다고 주변에서 만류했죠. 그렇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남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것에 도전하면 그만큼 얻는 것도 많습니다." 도쿄와 오사카, 히로시마, 후쿠오카 등 일본 17개 지역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는 에이산그룹의 장영식(48) 회장은 5일 기업을 키우는 핵심 노하우로 "도전정신과 인재 육성"을 꼽았다. 도쿄의 대표적 전자상가 거리인 아키하바라에 면세점을 내면서 보수적인 일본 시장을 개척한 그는 창업 14년 만에 일본면세점업계 1위 업체로 부상했다. 지금은 일본 최북단의 홋카이도에서부터 최남단 오키나와까지 면세점이 진출했고, 2년 뒤에는 일본 증시에 상장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면세점을 운영하면서 관광버스 운행, 전동자전거 제조 및 유통, 무역, 정부조달 등에도 진출해 연간 2억5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장 회장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배치하고 전폭적으로 믿어주는 경영을 강조한다. 그는 직원 채용 시 국적·학력·성별·연령 등 4가지를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한국·중국·베트남·프랑스 등 직원들의 국적이 10곳이나 됩니다. 고졸부터 대학원 졸까지 학력도 다양하고, 17개 매장 중에 일곱 군데의 점장이 여성입니다. 해고에 대한 부담이 없어 출산휴가를 2년씩 쓰는 직원도 있습니다. 최연소 직원은 22세, 최고령은 72세죠. 중요한 것은 능력과 의욕입니다." 장 회장은 최근 72세의 최고령 직원과 면접 후 계약 기간을 3년 연장했다. 그는 "오랜 경험에서 오는 지혜가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며 "'80세까지 고용할 생각이니 건강을 잘 유지하라'고 당부했다"고 소개했다. 430여 명에 이르는 에이산그룹의 직원은 누구나 과장으로 올라서면 기존의 업무 말고 신규사업을 펼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장 회장이 도입한 것으로 주어진 일만 하지 말고 스스로 비즈니스를 개척해 실력을 쌓게 하려는 취지다. "과장에 올라서면 평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비즈니스를 해볼 수 있습니다. 단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서 임원진의 동의를 받아야 하죠. 단순히 아이디어가 아니라 인력구성, 손익분기점 등 상세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통과되면 바로 팀장을 시키고 인적 구성도 직접 할 수 있게 지원합니다. 이 시점에서 경영자는 소신껏 해볼 수 있도록 후원을 해주어야 합니다. 즉, 실패해도 책임은 내가 지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믿음을 주는 것이죠." 에이산 그룹이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한 일본 중고차의 수출 사업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3가지를 꼭 염두에 두라며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진입장벽이 높은 업종에 도전하며, 사업을 시작하면 다각화보다는 한 가지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장 회장은 8년 전 파나소닉, 야마하, 브릿지스톤 등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전기자전거 시장에 대담하게 뛰어들었다. 한국과 중국에 공장을 세운 그는 일본 시장을 꾸준히 공략했으며 올해 첫 흑자를 예상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업계 4위로 뛰어오른다는 계획이다. "전기자전거를 제조해서 팔겠다니까 대기업과 어떻게 경쟁하느냐며 모두 반대했죠. 그렇지만 내게는 기회로 보였습니다. 다들 겁을 내고 안 뛰어드니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경쟁 상대가 없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이죠. 이 시장을 5%만 차지해도 회사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치킨집과 커피점이 제일 빨리 또 제일 많이 망하는 이유는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경쟁 상대가 적을수록 기업은 장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 회장은 상장을 준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는 내 판단만으로 회사를 꾸려왔지만 상장 기업이 되면 전문 경영인을 둘 수도 있고 기업 운영도 더 투명해진다"며 "직원의 80%가 외국인인데 이들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05 09:31 송고
2016.10.05
[매출 1억弗 노하우] ② 허진학 말련 제이팩그룹 회장
종합무역·IT·정밀전자 등 6개사 운영하며 연매출 3억달러 "자신을 믿고 중심 잡아라…망설이는 순간 실패의 그림자" (정선=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남이 안 하는 어려운 길을 택해 여기까지 왔어요. 다른 기업인이 포기해 쓰러져 가는 기업을 인수했고, 이를 일으켜 세워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말레이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사업하는 허진학(59) 제이팩(JPEC)그룹 회장에게 '여기까지'는 연간 매출액 3억 달러(약 3천312억 원)를 올리고 있다는 의미다. 5일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기자와 만난 허 회장은 "남이 하지 않는 어려운 사업을 하면서 그만한 수치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실기업을 인수해 설계·공정·기술 등의 혁신을 단행하면 99.999%의 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가격 경쟁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종합무역상사인 '제일인터내셔널트레이딩말레이시아'(JITM), IT솔루션 플랫폼을 제공하는 '허(KYO)엔터프라이즈', 삼성전자·삼성SDI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납품하는 '제일정밀전자'를 말레이시아에서 운영한다. 국내에도 가상현실(VR)과 FX 미러 모니터 등을 일본·남미·유럽·동남아시아에 수출하는 무역회사 '세교기업'과 재건축 및 재개발회사인 '서현도시산업개발', 지주회사인 '은평' 등 3개사가 있다. 최근에는 'FX 미러'라는 가상 피팅 솔루션을 개발한 'FX 기어' 본사로부터 아시아 10개국 총판권을 땄다. 거울 앞에 서면 PC가 체형을 스캔하고, 5초 정도 후 선택한 옷을 입은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 솔루션이다. 굳이 옷을 입어보지 않아도 입은 모습을 3D 영상으로 볼 수 있다. 허 회장은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이 솔루션을 판매 중이다. 그는 "지금까지 부도 위기의 회사를 인수하고,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사업아이템을 잘 골랐던 것은 순전히 동물적인 감각과 빠른 판단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그 이후는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맞춤형으로 대응해 나갔다"고 소개했다. 전기·전자·무역·운수·건설·IT 등 전혀 다른 분야에 진출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의 하나로 그는 끊임없는 연구를 꼽는다. 사업분야를 이해하지 못하면 실패하기 때문에 전문가에 버금갈 정도로 지식을 습득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허 회장은 광주광역시에서 공부를 했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원탄좌에 입사했다가 3년 만에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2년 광주 하남공단에서 '트윈전자'를 차렸다. 당시 자동차 오디오에 들어가는 부품을 제작해 대우에 납품했다. 5년 정도 지나서는 서울 서대문에 운송회사인 '삼일중기'도 차렸다. 트윈전자는 1995년 삼성SDI 협력업체로 선정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1997년에는 경북 경산에 있는 '제일정밀'이란 회사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삼성SDI의 브라운관 제조 사업을 맡아서 했다. 트윈전자는 2005년, 제일정밀은 2009년까지 운영했다. "남들은 위기라고 해 부도가 속출하던 때인 IMF 때 저는 돈을 많이 벌었어요. 브라운관 프레임, 통신 부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삼성SDI에 납품했거든요. 재투자를 위해 1997년 말레이시아에 진출했죠. 그때 '제일정밀전자'를 시작으로 JITM, 허엔터프라이즈를 연이어 창업했습니다. 번 돈에다 은행 대출을 받아 투자한 것이죠." 허 회장은 '사원을 가족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사가 나란히 갈 때 회사가 성장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화합·전진·사랑'을 경영의 모토로 삼는다. 이를 성취하려면 사주와 사원 간 주고받는 것이 확실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사원이 주인과 같은 마인드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가 제시한 또 다른 성공 노하우다. 그는 1년에 3분의 1은 한국에, 또 3분의 1은 말레이시아에, 나머지는 전 세계를 뛰고 있다. 지구 100바퀴를 넘게 돌며 사업아이템을 찾고,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먼저 서비스해준다. 연간 들어가는 항공료가 1억 원이 넘는다. "건강관리요?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살아요.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고, 잘 때 자고. 그리고 틈나면 운동합니다. 무엇보다 많이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성공 한상(韓商)을 꿈꾸는 차세대에는 "겁내지 말고 도전하라. 복잡하게 생각하면 사업을 못 한다"고 조언한다. 지금까지 부실기업을 인수해 성공적으로 키워낸 노하우에서 비롯한다. 그는 "리스크가 크면 클수록 성공 확률은 높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중심을 잡아야 앞으로 갈 수 있으며, 망설이는 순간 실패의 그림자는 드리우기 시작한다"고 경고했다. 제품을 개발할 때 같은 모델을 두 가지로 하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하나는 희생 상품, 하나는 프리미엄 상품을 만들어 고객을 공략하라는 뜻이다. 월드옥타 말레이시아 지회장을 지낸 그는 현재 서남아대륙담당 부회장(상임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장학사업과 보육원을 돕는 사회복지사업을 펼치고 있고, 동남아시아의 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을 선정해 한국으로 유학 보내는 일도 하고 있다. 2000년 대통령상, 2006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허진학 말레이시아 제이팩그룹 회장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05 09:31 송고
2016.10.05
[매출 1억弗 노하우] ① 오유제 미국 팩텔그룹 회장
US파이버스·US홀딩스·리주 아모르 운영으로 연매출 9억달러 "꿈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고, 임팩트 있는 마케팅 하라" <※ 편집자 주 = 제21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가 4∼7일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 리조트에서 열립니다. 이 행사에는 세계 71개국 141개 도시에서 활동하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회원 800여 명이 참가해 한민족 경제 네트워크 확대 방안을 논의하고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판로 개척을 지원하게 됩니다. 연합뉴스는 대회 참가자 가운데 연간 1억 달러(약 1천104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한상(韓商) 5명을 만나 성공 노하우를 들어봤습니다.> (정선=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어떠한 도전을 받아도 비전과 목표를 포기하거나 변치 않는 의지력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들 때마다 미래에 펼쳐질 꿈을 생각한다면 어떤 위기에서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팩텔(Pac Tell) 그룹을 운영하며 연간 9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오유제(미국명 에드워드 오·62) 회장이 제시한 첫 번째 성공 비결은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다. 오 회장은 5일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기자와 만나 "1987년 미국에 이민해 29년간 공부하고 사업을 하면서 엄청난 위기와 유혹이 있었지만, 꿈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꿈은 '억만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돈을 좇지는 않는다. "사업을 하면서 좋은 세상,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다 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며 "여기서 '사업'은 당연히 몇십 년 후에도 건재할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태평양을 건너기 전 그의 꿈은 마도로스였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는 국립 목포해양대 항해과를 졸업했다. 이후 1970년대 말부터 그리스 선박회사를 비롯해 여러 국제 선사의 무역선을 탔다. 선장이 되어 전 세계 바다를 누빈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꿈을 이루고 나서 그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꿈틀거렸다. "직장 생활이 세계를 누비는 일이다 보니 넓은 세상이 보였고, 그 무대에서 사업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감히 또 다른 꿈을 위해 미국행을 택했죠. 먼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국제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았어요." 사업할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국내에서 플라스틱 섬유 공장을 운영하던 형으로부터 원자재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 그는 멀리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날아가 해당 자재를 확보해 서울로 보냈다. 그러고도 많은 물량이 남자 직접 중국에 수출했다. 1983년 첫 회사인 'US파이버스'의 출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무역업을 하던 중 원자재로 제품을 만들어 팔면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플라스틱병 등 재활용품을 활용해 폴리에스터 파이버(인조섬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또 그동안 번 돈으로 2002년과 2004년 50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공장 2개를 잇달아 인수했다. 이를 계기로 인조섬유를 활용한 자동차 내장재를 만들어 BMW, 닛산 등에 납품했다. 판단은 적중했다. 매년 1천800만대가 넘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미국 시장에도 진입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정에서 활용하는 필터를 생산했고, 카펫을 만드는 회사와도 거래했다. US파이버스는 직원 1천여 명, 연 매출 9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 재생파이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백악관도 관심을 표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애플, IBM 등 26개 대기업 회장을 초청하면서 오 회장도 함께 불렀다. 당시 백악관 경제개발팀과의 미팅에 그는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됐다. 이 회의에서는 안정적인 직장 창출과 제조업 발전 방안을 주제로 토론했다고 한다. 사우스캐롤나이나 주지사는 이처럼 안정적인 사업을 운영하는 그를 '경제개발 명예대사'로 임명하고 투자이민센터를 설립할 수 있는 허가를 내줬다. 그가 2011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세운 'US홀딩스'는 중국 자본을 미국에 유치하기 위해 설립한 금융자산운용회사다. 앞으로 투자이민이 활성화되면 팩텔그룹이 10억 달러대 매출을 올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그는 자신한다. 올해 초에는 '리주 아모르'라는 화장품 회사도 세웠다. 스위스 명품 화장품 '라프레리', 미국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라메르' 보다 상위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내년 봄 신상품을 선보인다는 계획에 따라 현재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화장품 개발은 마도로스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강한 햇볕을 받아 피부가 상했던 기억이 있죠. 데미지를 막고, 더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는 화장품을 만들어 출시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는 또 다른 성공 비결로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시장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마케팅을 해라"고 주문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품질이 앞서고, 용기 디자인도 고객을 끌어당길 수 있어야 하며 그런 다음 마케팅을 짜야 한다"며 "특히 상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스토리 텔링도 아주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오 회장은 이제 팩텔그룹을 포천 500대 기업에 진입시키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500대에 포함하려면 매출 30조 원을 달성해야 한다. 현재 미국 재생파이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US파이버스'의 성장과 'US홀딩스', 화장품 회사가 발전해 탄력을 받으면 목표 달성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오 회장은 장담한다. 월드옥타 미국 동남부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당선이 유력시되는 잭 킹스턴(공화) 연방 하원의원의 손을 잡고 선거자금 모금행사도 주최했다. 오 회장은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소개하면서 "메모할 때 꼭 맨 위에 꿈을 적으라"고 주문했다. 오유제 미국 팩텔그룹 회장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05 09:31 송고
20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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