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한상넷
로그인
회원가입
전체검색영역
검색어입력
한상소식
한상소식
공지사항
입찰/행사/채용
비즈니스 정보
비즈니스 정보
한상기업 정보
글로벌 파트너십
한상비즈니스자문단
한상기업 제휴
유통채널 안내
제품홍보
1:1 비즈니스 매칭
국내·외 경제정보
산업∙경제 이슈
부처별 경제정보
Biz News Korea(Eng)
국내청년의 동포기업 인턴십
국내청년의 동포기업 인턴십
인턴십 소개
인턴십이란
지원절차 안내
인턴십 FAQ
인턴십 지원
인턴십 수기
안전 공지사항
세계한인 비즈니스대회 (세계한상대회)
세계한인 비즈니스대회 (세계한상대회)
대회 소개
대회개요
대회 FAQ
등록 안내
기업전시회 등록 안내
리뷰한상
결과보고
사진자료
영상자료
세계한상대회 20년사
정보센터
정보센터
이벤트/설문
이벤트
당첨자 발표
뉴스레터
묻고 답하기
검색
메뉴
로그인
회원가입
한상소식
공지사항
입찰/행사/채용
비즈니스 정보
한상기업 정보
글로벌 파트너십
한상비즈니스자문단
한상기업 제휴
유통채널 안내
제품홍보
1:1 비즈니스 매칭
국내·외 경제정보
산업∙경제 이슈
부처별 경제정보
Biz News Korea(Eng)
국내청년의 동포기업 인턴십
인턴십 소개
인턴십이란
지원절차 안내
인턴십 FAQ
인턴십 지원
인턴십 수기
안전 공지사항
세계한인 비즈니스대회 (세계한상대회)
대회 소개
대회개요
대회 FAQ
등록 안내
기업전시회 등록 안내
리뷰한상
결과보고
사진자료
영상자료
세계한상대회 20년사
정보센터
이벤트/설문
이벤트
당첨자 발표
뉴스레터
묻고 답하기
한상소식
공지사항
입찰/행사/채용
한상소식
세계한상소식
한상이야기(성공사례/노하우)
한상소식
공지사항
입찰/행사/채용
한상이야기(성공사례/노하우)
대륙구분
전체
아시아/대양주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중동/아프리카
러시아/CIS
국내
국가구분
전체
보기조건 갯수 선택
10개 보기
20개 보기
30개 보기
32/38
페이지
(전체 378)
검색분류선택
제목
내용
검색어를 입력해주세요
게시글 검색
호주서 한국계 주의원 첫 탄생…이슬기씨 캔버라서 당선
3번 도전 만에 성공…"한인 젊은이, 정치에 관심 두는 계기 되길"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호주에서 처음으로 한국계 주의원이 탄생했다. 지난 15일 실시된 호주 수도준주(ACT) 선거에서 교포 1.5세인 이슬기(37·영어명 엘리자베스 리) 씨가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을 확정 지었다. 선호투표제라는 복잡한 선거 제도상 아직 개표가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ABC 방송 등 호주 언론들은 이씨가 이미 당선을 확정지은 상태라고 20일 전했다. ACT는 수도 캔버라를 포함하는 자치 준주로 인구는 약 50만명이다. 각각 5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5개의 광역선거구가 있고, 이 씨가 나선 쿠라종 선거구에는 총 27명이 출마했다. 이 씨는 4년 전인 2012년에는 ACT 주의원 선거, 이어 2013년에는 연방 하원 선거에 각각 출마한 바 있어 3번째 도전 만에 꿈을 이뤘다.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캔버라에서 주의원에 당선되는 기록도 갖게 됐다. 이 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지역 선거 제도상 정당의 공천을 받더라도 처음에 당선되는 게 매우 힘든 구조"라며 유권자들에게 열악한 교통문제와 높은 집값 등을 개선해 "캔버라가 고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호소했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또 "선거 과정에서 동포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큰 도움을 받았다"며 "한인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두게 하는 계기가 돼서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씨는 7살 때인 1986년 가족과 함께 호주 시드니로 이민 왔다. 1998년 캔버라에 있는 호주 명문 호주국립대(ANU)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하면서 이곳이 활동 본거지가 됐다. 호주청년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ACT 법률협회 부회장으로 있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현재 ANU 대학과 캔버라 대학에서 강사(lecturer)로 강의도 한다. 한인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해 지난 6월 자유당을 지지하는 한인들이 시드니에서 결성한 '호주 자유당 한인연합회'에 참석해 사회를 봤으며, 다음 달 2일 시드니에서 열리는 '제3회 한호정경포럼' 행사에서도 진행을 맡을 예정이다.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호주 주의원에 당선된 이슬기씨[제공: 이슬기씨 = 연합뉴스] cool2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20 10:47 송고
2016.10.20
재미동포 안미영씨 '4천시간 봉사'로 美 대통령상 수상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재미동포 안미영(여·64) 씨가 미국 대통령 봉사상 가운데 최고상인 '평생업적상'(President's 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받았다. 안 씨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13일 워싱턴D.C 연방 상원에서 상장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축하 서한, 배지 등을 받았다고 한미동맹협의회(총재 임청근)와 주한미군 재향군인회(회장 루이스 데카춰)가 19일 전했다. 안 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20년간 한인사회와 주류사회를 위해 꾸준히 봉사한 결과여서 보람을 느낀다"며 "평생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힘닿을 때까지 더 열심히 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미동맹협의회 등은 양국 우호 증진을 위해 미국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친 안 씨를 지난 7월 수상자로 연방 상원에 추천했다. 4천 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해야 수상 자격이 주어지는 이 상은 상원의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인천 출신인 안 씨는 198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이민했고, 1990년대 LA 쉐리프국 민간위원회 디렉터를 맡아 불법체류 한인들의 구명 활동과 함께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는 지난 2014년 한국 잠수함부대를 후원하고, 국가안보를 지키는 활동을 하기 위해 '대한민국 잠수함 연맹 워싱턴지회'를 창립했다. 미 해군 잠수함 연맹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비롯해 맥아더 장군 기념관에 감사 석판을 설치하고, 무궁화동산을 조성하는 등 한미 우호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 대통령 평생업적상 수상한 안미영 씨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9 11:32 송고
2016.10.19
[사람들] '차세대 리더'로 모국 찾은 호주 한인 쌍둥이 남매
4살 때 이민한 남궁 윤·준씨, 현지서 의사와 변호사로 성장 "우리는 100% 한국인·호주인, 양국서 쓸모있는 사람 되겠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우리는 100% 한국인이고 100% 호주인입니다. 이 정체성을 지키며 두 나라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1분 차이로 누나와 동생이 결정된 쌍둥이 남매 남궁 윤·준(25) 씨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어려서부터 부모(남궁옥·손미나)에게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호주에서 의사와 변호사로 성장한 남매는 재외동포재단(이사장 주철기)이 17∼21일 서울과 광주광역시, 전주시에서 주최하는 '2016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나란히 참가했다. 19일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기자와 만난 남매는 "4살 때 부모를 따라 모국을 떠나 그런지 호주에서는 쓸만한 사람이 됐는데, 아직 한국에는 그렇지 못하다"며 웃음을 지었다. "독도·동해·일본군 위안부 등 한국과 관련한 문제를 호주 한인사회나 현지 언론이 거론할 때 사실 많은 관심을 두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활동 사례를 들으면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어요. 돌아가면 틈틈이 공부할 것입니다." 남매는 사전에 서로 입을 맞추지도 않았는데 누나가 이야기하자 동생이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호주 내 교과서나 웹사이트에서 한국과 관련한 잘못된 정보를 찾아내 바로 잡는 일도 해보고 싶고, 나아가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호주사회에 한국을 홍보하는 활동도 펼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주최한 대규모 콘퍼런스에 처음 참가했다는 남매는 "이번 대회가 깨달음을 많이 주는 행사"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더 많은 차세대가 참가해 같은 경험을 하고, 거주국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잘 살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들은 1994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이민했다가 2000년 호주 시드니로 이주한 전형적인 1.5세다. 간발의 시차로 세상에 나왔지만 가는 길은 완전히 달랐다. "쌍둥이라고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초등학교만 함께 다니고, 중학교부터는 각자 다른 학교에 나갔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아갔다고 보면 됩니다. 아마도 함께 같은 학교에 다녔어도 다른 길을 갔을 것이에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관심거리와 취미가 달랐거든요." (남궁준) "준이는 똑똑하고, 저는 노력파였어요. 호주식 수능 결과를 보면, 준은 사회, 경제 쪽에 결과가 좋았고, 저는 과학, 생물 시험을 잘 봤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과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문과 쪽에도 관심을 두고 있죠. 어떻게 하면 환자들에게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까를 연구하려면 이과 쪽 사고방식으로는 안되는 부분이 있어요." (남궁윤) 윤 씨는 뉴사우스웨일스대 의대를 졸업하고, 로열 노스쇼어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시드니대 대학원에서 의료정책 관련 석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앞으로 심장과 전문의가 되고 싶다"는 그는 병원 관리도 병행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준 씨는 시드니대 법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가 돼 법무법인 '민터엘리슨'에서 근무한다. 쌍둥이는 현재 호주한인전문가협회에서 활동하면서 각종 행사 준비, 기획에서 진행(MC)까지 맡아서 하고 있다. 또 후배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호주인으로 살아가는 지혜와 방식 등을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이 단체 회원 중 대회에 먼저 왔다 간 참가자의 추천으로 방한했다. "이번 대회 참가자들 모두가 이민자라 마음이 푸근했어요. 서로의 이민사를 들으면서 한국인이라는 것을 더 느꼈죠. 제 이야기, 제 부모의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얘기했어요. 한국인이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호주 한인 1.5세 쌍둥이 남매 남궁 윤·준씨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9 09:38 송고
2016.10.19
[사람들] 한인 2세 캐나다 검사 이진아 씨
"이민가정 출신 배경이 검사 생활에 도움…열정적으로 살 것"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형사부 검사로서 음주 운전부터 가정폭력, 성폭행, 살인까지 사회의 온갖 어두운 면을 접하며 살죠. 세상을 이해하는 데 제가 한국계라는 점이 큰 도움이 됩니다. 아무래도 캐나다인보다 민감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거든요." 캐나다 온타리오주(州)의 6년 차 검사인 이진아(31) 씨는 1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유년 시절에는 내가 한인 2세라는 점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오히려 얻은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씨가 걸어온 길을 보면 재외 한인 2세 중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고 성공적으로 주류 사회로 진출한 사례로 꼽힌다. 그는 캐나다 명문대 중 하나인 맥마스터대 생화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전혀 새로운 분야인 로스쿨로 다시 뛰어들어 2011년 검사실로 입성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한인 2세라는 배경은 '숙제'가 되기도 했고 '선물'이 되기도 했다. 이 씨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민권자로, 이민 1세대인 조부모, 1.5세대인 부모와 함께 3대가 어울려 사는 전형적인 한국 가정에서 컸다. 사춘기 시절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야 하는"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어렸을 때는 마음 한 쪽에 답답함을 안고 살았죠.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아마 정체성 혼란 때문이었나 봐요. 집안에서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지내다가 학교에 가면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맞춰야 했거든요. 그렇지 못하면 왕따가 될까 봐 걱정도 했죠.(웃음) 그래서인지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어색하고, 집에 오면 가족이 불편한 상태가 되더라고요." 이러한 고민은 2003년 대학에 가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풀렸다고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고 새로운 상황과 부딪히게 되면서 성숙함을 배우게 됐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그가 학부에서는 생화학을 전공하며 의사가 되기를 꿈꾼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늘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해 이민 1세대는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맨손으로 가정을 지키셔야 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한인 어르신들은 무척 정이 많으세요. 과학을 공부하는 게 무척 재밌기도 했고, 아픈 어린이를 돕는 직업을 갖고 싶어서 생화학을 택했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진로를 로스쿨로 바꿨다. "법을 공부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2009∼2011년 토론토의 오스굿홀 로스쿨에 다니면서도 아동 성 착취 반대 단체 'ECPAT' 등에서 법률 인턴을 했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아닌 검사를 택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캐나다에서는 검사의 역할이 한국과는 조금 다를 거에요. '크라운 어토니'(Crown Attorneys)라고 불리는데, 공익을 위해 일하는 '정부 측 변호사'라고 볼 수 있어요. 경찰이 제출한 증거를 검토해 피의자를 기소할지를 결정하는데, 범죄자의 혐의를 입증하기도 하지만 피의자가 무고한 경우엔 결백을 입증하는 일도 중요해요. 진실을 찾는 직업이라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이 씨는 특히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해자, 피해자, 증인 등 여러 사람을 접해야 하는데, 검사로서 이민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한인 2세라는 점이 캐나다의 다양한 민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인디언이나 흑인 사회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이주민 사회의 문화적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앞으로도 공정하고 열정적인 검사로 일하고 싶습니다." 그는 토론토의 한인 노인 지원 시설인 '아리랑시니어센터'에서도 이사로 참여해 법률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이 씨는 재외동포재단 주최로 지난 17일 개막한 '2016 세계한인차세대대회' 참가자로 방한해 오는 21일까지 서울, 광주광역시, 전북 전주, 경기 파주 등을 돌며 고국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본다. newglas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8 11:24 송고
2016.10.18
[중국동포 성공시대] (18) '호텔 경영의 귀재' 안석봉 씨
카운터 보던 청년이 지배인·총지배인 거쳐 7년 만에 CEO 변신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가 성공 비결…'레브호텔' 체인점 낼 것" "자신감·열정으로 뛰어라…먼저 이해해 주길 기다리면 실패"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시청 뒤에 있는 '레브 부티크 호텔'. 지하 1층, 지상 6층 건물의 본관과 그 옆에 5층 규모의 별관이 붙어 있다. 총 102개의 객실을 둔 3성급 비즈니스호텔이지만 서비스는 5성급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실률이 95%를 차지할 정도다. 이 알짜배기 호텔의 총지배인은 중국동포(조선족) 안석봉(37) 씨다. 인근의 다른 호텔에서 일하다 2013년 4월 이곳으로 스카우트돼 운영을 맡은 지 1년 만에 부도 직전의 호텔을 흑자로 만들었다. 그는 다음 달에는 아예 이 호텔을 임대해 직접 경영한다. 안 씨는 지난 3월부터 인근에 있는 6층 규모의 'M스토리호텔'도 임대해 운영 중이다. 호텔을 경영하면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레브국제여행사'와 '로우제양꼬치' 전문점도 차렸다. 호텔과는 무관하게 살았던 안 씨가 어떻게 단기간에 이런 수완을 발휘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수원시 '외국인 유치 홍보대사'도 맡고 있는 안석봉 레브호텔 총지배인 14일 레브호텔 커피숍에서 기자와 만난 안 총지배인은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와 관리로 쓰러져 가는 호텔을 살려냈고, 지금은 경영에 뛰어들었다"며 운을 뗏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국과 중국에 '레브호텔' 체인점을 낼 계획이며, 우선 중국 시안(西安)을 공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 출신인 그는 연변대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상하이에 있는 일본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아 공부를 더 하기로 마음먹고 2년 만에 사직한 뒤 2006년 12월 한국에 입국했다. 고향이 강원도인 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전혀 낯설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조선족에 대한 편견이 강할 때였다. 충남 청양에 있는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이미지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2년간 공부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즈음 유학 비자를 F4 비자로 바꿨다. 대학원을 마치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창업이었다. 2008년 안산에서 버블티를 만들어 팔았다. 지금은 공차(貢茶)라고 해 불티나게 팔리지만, 당시는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가 없었고 결국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발을 디딘 곳이 호텔이다. 전문 지식이 없으니 밑바닥에서 출발했다. "한국 경험도 하고, 경력도 쌓을 생각에 2009년 수원시청 뒤편에 있는 한 호텔에 카운터 업무를 보는 시간제 사원으로 취직했어요. 그러다 얼마 뒤 '더모스트호텔'에 정식으로 입사했고요. 역시 카운터 일을 봤죠. 당시 호텔은 매달 적자였어요. 빈방이 남아돌았고, 객실을 채우기 위해 손님을 받다 보니 방값을 떼이기 일쑤였습니다." 호텔은 월 3천만 원의 매출에 은행 이자만 3천500만 원을 내야 하는 등 심한 경영난으로 2차 경매를 겨우 넘긴 상황이었다. 주인 할머니가 고군분투하며 간신히 버텨나가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과장으로 승진한 그는 할머니가 안쓰럽다는 생각에 호텔을 살려보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시장조사를 통해 자동차로 5분여 거리에 있는 삼성전자 고객들이 인근 호텔에 많이 투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직접 투숙객을 유치했다. 타깃은 삼성전자로 출·퇴근하며 한 달 이상 장기투숙하는 중국인 연구원이었다. "유창한 중국어 실력에다 출·퇴근 버스 운영, 인천공항 픽업, 주말에 남이섬이나 제부도 무료관광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자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일반화했지만, 당시 수원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공항 픽업을 했죠. 매출액이 6개월 만에 두 배로 뛰었고, 1년 정도 지났을 때는 월 1억 이상 매출을 올리는 흑자 호텔이 됐답니다. 신용도 좋아지면서 은행들이 러브콜을 보내왔고, 주거래 은행을 바꾸자 이자율이 떨어지고 경영도 정상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지배인으로 승진한 그는 매일 객실이 가득 차면서 다수의 고객을 인근의 다른 호텔로 안내해야만 했다. 더모스트호텔의 월급에다 인근 호텔에서 주는 인센티브까지 어느새 억대 연봉을 받는 샐러리맨이 돼 있었다. 안석봉 '레브호텔' 총지배인 3년 정도 열정을 다해 호텔을 정상화하고 나자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그 중 적자에 허덕이면서 부도 직전에 놓였던 '레브호텔'이 가장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더모스트호텔에서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떠날 때라고 여겼죠. 그래서 레브호텔 총지배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자마자 객실마다 인터넷을 설치했어요. 또 호텔 어디서든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꿨죠.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중국어 프로그램과 장기투숙객을 위한 귀중품 보관 금고도 설치했고요. 지하 1층에는 탁구대와 당구대도 비치해 여가를 즐기도록 했습니다. 여름에는 야외테라스도 개방했죠." 출·퇴근 차량 운행과 공항 픽업 서비스와 함께 세심한 배려, 참신한 아이디어로 고객을 공략한 결과 레브호텔 역시 6개월 만에 매출이 두 배로 껑충 뛰었고 1년 뒤에는 흑자로 전환됐다. 안 총지배인은 "카카오톡과 위챗에 있는 고객은 5천 명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 80∼90%는 다 기억할 수 있을 정도"라며 "고객들이 만족할 때까지 서비스를 해주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고 말했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이 호텔은 2014년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을 임대해 별관을 냈다. 중국에서 출장 온 고객이 갑자기 몸이 아프면 며칠씩 병원을 함께 왔다 갔다 하고, 귀국할 때까지 보살펴 주는 등 소위 '꽌시'(關係, 관계)를 잘 맺은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중국의 삼성 직원들 사이에 '안 총경리(지배인)'는 유명인사여서 간혹 중국 출장이라도 가면 서로 대접하겠다며 나올 정도라고 한다. 레브호텔의 정재석 대표는 그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안 총지배인이 경영을 직접 맡아보겠다고 하자 흔쾌히 수락했다는 것이다. 다음 달이면 호텔 카운터를 보던 30대 초반의 청년이 어엿한 호텔 사장이 된다. 수원시는 2016 수원 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안 총지배인을 '외국인 유치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자신의 실력을 믿어주는 수원시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는 지난 1월 행사 개막식 때 중국의 기자단을 유치해 수원화성을 중국에 알리는 데 공을 세웠다. 레브국제여행사는 수원시청의 대표 여행사로 지정돼 있다. 한국과 중국에 '레브'라는 브랜드의 호텔을 여러 개 세우는 것이 꿈인 그는 한국에 있는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열정으로 뛰어라. 그러면 이해해 줄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프로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조언을 건넸다. 그는 "단, 고국이라고 해도 엄연히 다른 나라이기에 먼저 이해해 주기를 기다리면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안석봉 레브호텔 총지배인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7 07:00 송고
2016.10.17
[인터뷰] '프로젝트경영 전도사' 조원동 "中, AIIB 구축에 덕 봐"
"PM, 국가 경쟁력 결정 요소…사회 전반에 확산 필요"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중국은 프로젝트경영(PM)을 조기 도입해 우주항공산업과 고속철도 분야에서 세계강국으로 떠올랐습니다. 의료부문에서도 이미 PM을 도입해 혁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조원동 세계프로젝트경영협회 한국협회(IPMA Korea) 회장은 17일 호주 시드니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변화를 강조하며 PM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IPMA korea는 전날 시드니에서 열린 IPMA 총회에서 정식 회원이 됐다. 한국은 이번에 65번째 회원국이 됐지만, 중국은 이\미 12년 전에 가입했다. 조 회장은 중국에는 300여개 대학에 PM 석사과정이 개설돼 있고, PM 인증을 하는 종합대학만도 12개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구축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결국에는 PM이 뒷받침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급속한 변화와 발전에 PM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에서 지난해 IPMA 정기회의에서 인천대교 프로젝트가 '세계 최우수 프로젝트상'을 받은 것이 협회 설립에 날개를 달았다. 결국, 지난 4월 IPMA korea가 출범했고, 이번에 이례적으로 신속한 가입 승인이 이뤄졌다. PM은 통상 한 프로젝트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전 과정을 기획·관리하며, 지속해서 가치를 창출하고 발전해 나가도록 하는 경영기법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조 회장은 PM이 "건설이나 제조업 등 산업부문에 그치지 않고 국가 주요 정책의 기획과 관리를 비롯해 정치와 사회, 외교, 교육 등 사회 모든 영역에 활용할 수 있는 만큼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PM이 "생각하는 법"이라며 사회나 기업의 관행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PM은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생각해서 세부 사항을 꼼꼼히 풀어가는 것으로, 기업이나 정부 등 발주자들도 PM 전문가를 활용하면 비용 축소와 함께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PM은 또 데이터와 경험의 축적, 혹은 투명성과 연결될 수 있다며 최근 일부 산업의 경쟁력 약화도 결국 PM에 대한 인식 부족을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는 게 조 회장의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최근 부각된 건설 엔지니어링 분야의 문제점도 한국 기업들이 가치사슬(value chain)의 하위에 위치, 하도급을 받아 시키는 일만 하는 구조가 한계에 이른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조 회장은 PM을 적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대교 프로젝트라며, 인천대교에는 정부 보조가 거의 없지만, PM이 적용되지 않은 다른 유사사업에는 여전히 매년 정부 보조액만 수백억에 이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자신도 이전에는 PM이라고 하면 엔지니어링 쪽을 주로 생각했다며 이번 IPMA 가입을 계기로 경쟁력을 높이고 한국의 잠재력도 외국에 널리 알릴 수 있기를 희망했다. 또 1년에 두 차례 워크숍을 하고 이 중 1차례는 국제 행사로 치르는 식으로 한국사회에 PM을 널리 전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년에 'IPMA 리서치콘퍼런스'도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글로벌 PM 분야는 유럽 쪽의 IPMA와 미국 주도의 프로젝트경영협회(PMI)가 양 축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PMI의 활동이 활발하다. 이전에 일부 단체가 IPMA의 문을 두드렸지만, 자격 미비를 이유로 가입이 불발된 것으로도 알려졌다. 조 회장은 "PM은 인문학에도 적용할 수 있다"며 "통일 준비도 프로젝트식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을 적용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원동 세계프로젝트경영협회 한국협회(IPMA Korea) 회장[제공: IPMA Korea = 연합뉴스] cool2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7 09:13 송고
2016.10.17
'난형난제' 뉴질랜드 20대 한인 자매 나란히 구의원 당선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뉴질랜드에 사는 20대 한인 자매가 나란히 구(區)의원에 당선돼 현지 정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4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시의회에 따르면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각)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에서 한인 2세인 린다 천(27·한국명 주다은)·캐서린 주(20·주영은) 자매가 각각 헤어우드·리카튼 선거구에서 출마해 두 사람 모두 상대 후보들을 누르고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동생 주 씨는 크라이스트처치 시의회에서 최연소 구의원으로 기록됐다. 이들은 오는 26일 3년 임기로 취임한다. 이들 자매는 한국인 부모 아래 태어난 뉴질랜드 시민권자로, 현지 주류 사회로 진출해 인맥을 쌓는 동시에 한인회에서도 꾸준히 활동하며 표심을 얻었다. 언니인 천 씨는 5살이던 1995년 부모와 함께 뉴질랜드에 이민했으며, 중국계 뉴질랜드인 남편과 결혼해 성을 바꿨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금융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시청과 국회의원 사무실 등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동생 주 씨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조기 졸업으로 이른 나이에 대학 졸업장을 따고 사회에 진출했다. 과장급 은행원으로 재직 중이며, 지역 봉사회의 권유로 출마를 결심했다. 천 씨는 "지역 주민의 안전과 미래에 진정한 관심을 두고 봉사하는 구의원이 되겠다"면서 "한인 사회를 위해서도 열정과 패기를 갖고 봉사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주 씨는 "지역 사회에 봉사한다는 각오로 이웃 주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면서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지역 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에서 3대 도시로 꼽히며 인구는 35만여 명이다. 한인은 한때 5천여 명에 달했으나 2011년 대지진 여파로 감소해 현재 3천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 구의원으로 윤용제 씨가 2004년 당선된 바 있다. 지난 8일 치러진 뉴질랜드 지방선거에서 크라이스트처치 시의회 구의원으로 당선된 한인 자매인 린다 천(27·한국명 주다은·왼쪽)·캐서린 주(20·주영은) 자매. newglas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4 11:13 송고
2016.10.17
[인터뷰] 구테흐스 유엔총장 당선인 인수팀장 맡은 강경화
유엔 진출 한국여성 최고직…귀국 준비하다가 중책에 기용 (유엔본부=연합뉴스) 김화영 특파원 = 유엔에서 한국 여성으로는 최고위직에 오른 강경화(61)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가 다시 중책을 맡았다. 제9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피선된 안토니우 구테흐스 당선인의 내년 1월 취임을 준비하는 유엔 사무 인수팀장으로 기용된 것이다. 구테흐스 사무총장 당선인은 14일(현지시간) 5명의 인수팀을 구성하고, 팀장에 강 사무차장보를 임명했다고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가 밝혔다. 강 사무차장보는 앞으로 3달여 동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0년간 이끌어온 유엔 사무처의 업무를 구테흐스 신임 사무총장에게 이양하는 업무를 맡는다. 강 사무차장보는 연세대를 졸업한 뒤 KBS 영어방송 PD 겸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미국 매사추세츠대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회의장 국제비서관, 세종대 영문과 조교수를 거쳐 1998년 외교통상부 국제전문가로 특채됐고 홍순영 외교장관 당시 장관 보좌관을 지냈다. 2005년 국제기구국장(당시 국제기구정책관)이 될 때는 외교부에서 두 번째 여성국장으로 화제가 됐다. 그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재직 말기인 2006년 말 OHCHR 부고등판무관으로 발탁돼 2007년 1월부터 6년여 동안 부고등판무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2013년 4월부터 전 세계의 재난에 대처하고 비상상황에 빠진 국가에 유엔의 자원을 배분하는 유엔 산하 기구인 OCHA의 부기관장으로 일했다. 귀국을 준비하다가 구테흐스 당선인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는 그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기대에 부합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제9대 유엔 사무총장 당선인의 유엔사무 인수팀장으로 14일(현지시간) 임명된 강경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연합뉴스 자료사진] -- 다시 중책을 맡았다. 소감은 ▲반기문 총장하에서 활동한 게 밑거름이 돼서 구테흐스 사무총장 당선인의 인수팀을 맡게 됐다. 정말 뜻하지 않았던 일을 통해 당선인이 신임을 해줬다. 두 분께 모두 감사하다. 기대에 부합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 이런 일을 맡을 것으로 예상했나. ▲전혀 아니다. 저는 10월 말로 유엔의 업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귀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14일) 구테흐스 당선인이 유엔총회에서 공식 선출됐는데, 그 전날 밤 전화를 받고 인선을 알게 됐다. -- 인수팀장으로서 무슨 일을 하나. ▲유엔의 사무가 워낙 방대하다. 반 사무총장이 기존에 해오던 일을 인계받아야 하고 신임 사무총장의 중점 업무를 구상해야 한다. 사무총장실 비서실 조정 등의 업무도 포함된다. -- 유엔에 진출한 한국 여성으로는 최고위직인데. ▲유엔에서 일하면서 '여성 최고위직'이라는 말을 오래 들었다. 귀국 준비를 하면서 다른 한국 여성들이, 이제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직책)을 갖고 많이 나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제가 또 화제가 돼서 미안한 마음이다. -- 구테흐스 당선인은 2005∼2015년 유엔 난민 문제 총괄기구인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를 지냈다. 같이 일해본 적이 있는가. ▲유엔 유럽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가 있던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과 구테흐스 당선인이 이끌던 유엔난민기구(UNHCR)는 업무상 긴밀한 관계였다. 저는 OHCHR의 차석(부고등판무관)이었기 때문에 일할 때 UNHCR의 차석을 상대했다. UNHCR의 대표인 구테흐스 당선인이 직접적인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서는 조정 업무를 하다보니 구테흐스 당선인과는 안면도 생겼고, 회의석상에서 보기도 했다. -- 구테흐스 당선인은 어떤 스타일인가. ▲몇 번 대화했을 때에는 소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UNHCR 최고대표로 10년 간 활동했기 때문에 유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2014년 미얀마 방문당시 강경화[EPA=연합뉴스 자료사진] quintet@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5 14:20 송고
2016.10.17
홍콩 미술계 '큰손' 앨런 찬 "한국적인 게 가장 국제적"
"한국 미술 저평가됐다 단언 어려워…케이팝 적극 활용해야"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내게 영감을 주는가'입니다. 투자적인 관점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영감을 주는지를 제일 중시하지요."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가 개최한 '코리아 갤러리 위켄드'를 둘러보기 위해 방한한 '슈퍼 컬렉터' 앨런 찬(Alan Chan·66)은 지난 13일 오후 코리아 갤러리 위켄드 개막식이 열린 서울 용산구 인터파크 씨어터 네모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어떤 작품을 주로 구매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홍콩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코카콜라의 중국어 표기 문양과 굴소스로 유명한 브랜드인 이금기의 상표 등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은제품부터 전통 다기, 불상,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을 모으는 '수집광'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는 '슈퍼 컬렉터'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그는 예경의 초청으로 방한한 해외 미술계 인사 30명 중 한 명으로, 체류기간에 한국 대표 화랑 20곳의 작품을 압축적으로 모아놓은 전시장인 '코리아 갤러리 위켄드'와 지난 12일 막을 올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를 둘러보고 한국 작가와 화랑 운영자들을 만나는 등 한국 미술을 살피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 예경이 초청한 인사 가운데는 앨런 찬처럼 각국 미술계의 '큰 손'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홍콩의 유명 디자이너이자 컬렉터인 앨런 찬.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한국에서 이런 미술행사를 둘러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한 그는 "한국 작가의 사진 등을 일부 소장하고 있지만 한국 미술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한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럼에도 한국에 온 것은 '내가 보지 못한 창조적인 앵글에서 바라본, 내게 영감을 줄만한 작품'을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디자인 쪽에 종사하고, 갤러리도 운영하기 때문에 내게 예술작품이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기 부여를 해주는 대상이 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번 방한 기간 한국의 근현대 미술의 트렌드를 짚어보고 특히 한국의 젊은 작가와 영상 작품을 접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한국 기관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왔다고 곧 구매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이런 시도가 한국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한국 화가와 작품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데 는 분명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이렇게 와서 한국의 아티스트나 갤러리이스트와 대화하면 한국 예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지 않겠느냐"며 "제 컬렉션을 한국에 선보일 수도 있고 반대로 한국 작품을 우리 갤러리에서 소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리아 갤러리 위켄드' 전시장을 둘러보는 앨런 찬.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최근 해외에서 한국 단색화가 주목받으며 거래가가 급상승한다고 하나 정작 챈은 단색화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컬렉터로서 그는 한국 미술시장이 저평가됐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미술에서 가치를 매기는 방식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만 저평가됐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에둘러 답했다. 다만 "어느 미술가나 작품의 가치를 입증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면서 "미로나 피카소도 예전에는 지금과 같은 가격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 미술이 어떻게 해외 컬렉터들 사이에서 재평가 받을 수 있을지에 관한 물음에 그는 "이번처럼 해외 인사를 초청하는 것도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번에 초대받은 컬렉터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주변 사람들과 소감을 교환하고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는 관점에서다. 그는 컬렉터마다 구매 기준이 다르겠지만 자신은 '영감'을 가장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사들인 신진 작가의 작품 가격이 세월이 흐르면서 높아지면 당연히 기쁘지만" 그렇다고 투자적인 관점이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소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영감을 주는가가 중요하다. 그 영감을 주는 대상은 고가의 작품일 수도 있고, 이태원에 놀러갔다가 식당에서 우연히 본 그림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앨런 찬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따라서 작가들도 컬렉터들을 의식해 일부러 해외에서도 통용될만한 작업을 시도할 필요는 없다는 조언을 건넸다. 그는 "한국인인데 미국인처럼 춤을 추거나 중국인처럼 행동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가장 한국적인 작업이 가장 국제적일 수 있다"는 모범답안을 내놨다. 그는 현재 아시아에 유행하는 케이팝(K-Pop)을 플랫폼으로 한 현대미술도 하나의 대안으로 제언했다. "한국의 음악방송은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음악방송인데 왜 이를 활용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그는 "케이팝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이다. 이런 한류 콘텐츠는 한국 사람의 생활방식을 대변하는 강력한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IAF와 코리안 갤러리 위켄드 등을 둘러본 그는 해외 유명 아트페어와 비교해 다소 아쉬운 점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국제적인 갤러리들이 더 많이 참여했으면 합니다. 우리끼리 '빅 브라더'라고 부르는 갤러리들은 없더라고요. 또 규모가 큰 조각이나 설치작품이 부족한 것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겠지요." lucid@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4 09:09 송고
2016.10.14
젤리 모양 구글자율차 원형은 한인 디자이너 작품
안유정 매니저 "보행자ㆍ승객 안전과 단순함 추구" "자동차 디자인은 처음…새로움 창조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큰 보람"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예전에 학교에서 강의를 들은 적은 있지만, 자동차를 디자인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모토로라 휴대전화 등 상품 디자이너로 산업디자인계에서 인정받아온 구글의 안유정 자율주행차 디자인 매니저(40). 그녀가 구글이 미래 주력 산업으로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의 프로토타입(원형)을 직접 디자인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IT 기업들이 그렇듯이 구글 역시 프로젝트 관련 사항에 대한 기밀 엄수를 매우 중시하기 때문이다. 미 포춘지는 12일 '구글 자율주행차를 설계한 여성을 만나다'라는 기사에서 안 씨로부터 구글 원형의 디자인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를 인터뷰한 기사를 게재했다. 안 씨는 "구글이 처음 자율주행차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미래형 자동차, 또는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어떤 것을 상상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안전과 단순함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는 "이 차는 사실 속도가 느리다. 그런데 슈퍼카처럼 만드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며 "우리는 차갑고 미래지향적인 슈퍼차 보다는 따뜻하고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차를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안유정 구글 자율차 디자인팀 매니저[구글 제공] 특히 안전성은 차 컨셉의 최우선 고려 사항이었다고 한다. 안 씨는 "솔직히 원형은 운전자를 위해 적합한 모형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글 자율주행차는 운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보행자와 승객, 또 도로 상의 다른 자동차 운전자의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했고, 그래서 차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차량에 탑재된 소프트웨어와 센서가 가장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디자인의 포인트였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소프트폼 범퍼와 유연성 있는 소재로 만들어진 앞 유리창, 센서 기능을 위해 약간 차량을 높인 매우 단순한 젤리 모양의 자율차 원형이다. 구글의 자율주행차 원형[구글 제공] 그녀는 "자율차 원형은 테스팅을 위한 것이지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최초로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복잡할 필요가 없었다"며 "사람들이 첨단기술 차량에 대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단순함'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원형을 흰색으로 만든 것에 대해서도 "안전하고 따뜻함을 느끼게 하려고 흰색을 선택했다"며 "심리적으로 빨간색이나 녹색 또는 오렌지 색은 불안감을 줄 수 있다고 한다"고 답했다. 안 씨는 이 자율차 원형으로 올해 9월 디자인 어워드 가운데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안 씨의 첫 직장은 LG 전자였다. 그곳에서 TV 등 가전제품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2006년 모토로라로 옮겨 휴대전화를 디자인했고 직장을 다니면서 일리노이 공대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2011년 모토로라가 구글에 인수된 후 구글팀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안 씨는 또 다른 자동차 프로젝트에 빠져들어 있다. 지난 5월 구글과 피아트 크라이슬러가 공동 생산키로 한 자율주행 퍼시피카 미니밴 설계가 그 일이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은밀한 연구실로 불리는 X에서 온종일 이 차 디자인에 매달려 있다는 안 씨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kn020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3 14:49 송고
2016.10.13
첫페이지
이전페이지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다음페이지
마지막페이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