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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 성공시대] (32)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끝)
인터뷰하는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조선족 출신 사업가인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47)가 23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신강양꼬치 선릉역점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23 newglass@yna.co.kr 흑룡강성 교사 출신, 한국온 지 사흘 만에 공장서 오른손 잃는 불운 노숙자 거쳐 식당업 시작…마포·강남 진출하며 '코리안 드림' 이뤄 "한국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회의 땅…동포청년들 과감하게 도전하길"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27살 중국동포(조선족) 청년의 '코리안 드림'은 한순간에 산산이 깨지는 듯했다. 경기도 안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차디찬 기계에 눌려 오른손을 잃었다. 교사직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건너온 지 불과 사흘 만에 일어난 끔찍한 사고였다. 하지만 청년에게 시련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었다. 절망과 원망이 뒤섞인 암흑기를 견뎌내고 결국 왼손 하나로 다시 일어섰다. 20년이 흐른 지금은 서울 곳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거듭났다. 드라마 같은 사연의 주인공은 이림빈(47) 씨다. 그가 대표로 있는 '신강 양꼬치'는 2007년 대림동에서 출발해 마포에 2호점을 낸 데 이어 지난해엔 역삼동에 진출하면서 강남 입성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 2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고난의 연속이었다"면서 "이제 와 되짚어보니 오히려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 삶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흑룡강성 출신인 그는 길림사범대를 나와 교사로 일했다. 빠듯한 살림살이 탓에 해외 이민을 고민하던 중 "그래도 한국에 가면 언어가 통하고, 기회가 많이 생긴다"는 소문에 1997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으로 밟은 한국 땅은 너무나 가혹했다. 경기도 안산의 공장에서 일한 지 사흘 만에 프레스 기계에 오른손을 잃으면서 그의 삶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죠. 병원에 누워있는데 만사가 귀찮고, 원망스럽고…. 옆 침대 환자가 저하고 비슷한 부상을 당했는데, 하루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하더라고요. 남의 일 같지 않았죠. 그나마 가족을 떠올리며 가까스로 버텼습니다. 결국 몇 달 만에 한 손을 잃은 채로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죠." 이 대표가 다시 한국으로 온 건 3년 뒤인 2000년이다. 주변의 도움으로 병원에 다니며 다친 손목을 2차로 치료했다. 그제야 막연하게나마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른손이 의수(義手)인 중국 동포에겐 작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엔 중국 동포들이 공사장 막노동이나 목수 일을 많이 했거든요. 그마저도 제겐 불가능한 일이었죠. 하다못해 전단을 돌리는 일도 어렵더라고요. 당장 잠잘 곳이 없어서 노숙자 생활도 했습니다. 그래도 일자리 찾는 걸 멈추지 않았어요. 나쁘게 말하면 무식했고, 좋게 말하면 용감했죠." 간신히 붙잡은 기회가 인생 역전의 발판이 된 것은 오로지 땀방울 덕택이었다. 2000년 금천구 독산동에서 10평짜리 식당에 테이블 4개를 놓고 '아침 10시에 출근해 밤새 장사를 하고 다음 날 아침 8시에 퇴근하는' 치열한 나날들을 보냈다. 인터뷰하는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조선족 출신 사업가인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47)가 23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신강양꼬치 선릉역점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23 newglass@yna.co.kr "식당은 비좁았지만 목표는 크게 갖자는 생각에 가게 간판을 '동북아 식당'으로 달았죠. 낮에는 중국 요리를 팔고, 밤에는 술과 안주를 내놨어요. 손님이 단 한 명 뿐이라도 절대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빚도 갚고, 밥벌이도 되고…. 무엇보다 경험이 쌓이더라고요. 그때 배운 노하우가 지금까지도 제겐 가장 소중한 자산이죠." 사업을 점차 확장해가다가 2007년 지금의 '신강 양꼬치'를 차렸다. 주 고객층인 중국동포를 따라 대림동에 터를 잡은 것이 주효했고, 2년 후엔 근처에 중국식 샤부샤부 가게도 열었다. 중국동포를 대표하는 청년 사업가로서 한국 사회와의 접점을 넓히는 데도 앞장섰다. 2008년 '중국동포한마음협회'를 출범시키고 초대 회장을 맡아 영등포구 자율 방범대, 이웃돕기 바자회, 요양원 봉사단 등을 이끌었다. 그런 와중에도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승부 근성이 꿈틀댔다. 고심 끝에 조선족 밀집지를 벗어나 서울을 대표하는 '맛집 1번지'인 마포에 '신강 양꼬치' 2호점을 냈다. 2012년의 일이다. "중국 동포는 70만 명이고, 한국인은 4천만 명이잖아요? 그럼 한국인 입맛을 겨냥해 큰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막상 처음 1년은 고생 좀 했어요. 대림동과 마포는 손님들 입맛이 확연히 달랐거든요. 주기적으로 조리법이나 밑반찬 구성을 바꿨더니 넥타이족 단골손님도 생겼고, 가게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변에서 충분히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지금도 그의 승부는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에 강남구 테헤란로 한복판에 '신강 양꼬치' 선릉역점을 차리고 비즈니스맨의 입맛 공략에 나선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풀리는 것만은 아니다. 동료들과 함께 야심차게 뛰어든 프렌차이즈 사업은 여러가지 상황을 감안해 일단 잠정 보류하고 있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는지 묻자 "큰 고생을 겪었지만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쿨'하게 답했다. "한국은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기회가 많은 시장이라고 생각해요. 상권도, 소비자 취향도, 유동 인구 흐름도 시시각각 달라지죠. 요즘은 해외에서 'K-뷰티'가 뜨고 있잖아요? 중국 동포는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 화장품 무역업 등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죠. 대학생인 첫째 딸에게 입버릇처럼 말해요. 어떤 일이든 과감히 도전하라고. 중국 동포 청년들에게도 마찬가지 당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두 손을 내밀어 인사를 건넸다. 그의 두 손은 똑같이 따스했다. newglas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1/23 07:00 송고
2017.01.24
코넬대 첫 한인 의대학장 최명근 박사 "참다운 의료교육 하겠다"
코넬대 의대학장에 선임된 한인 1.5세 최명근 박사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지난해 6월부터 미국 코넬대 의과대학 임시 학장으로 활동해온 최명근(미국명 어거스틴 최·57) 박사가 코넬대 이사회의 표결을 거쳐 현지시간으로 17일 학장에 공식 선임됐다고 미주한국일보가 보도했다. 한인이 코넬대, 하버드, 예일 등 8개의 명문사립대학을 일컫는 아이비리그의 의과 대학장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그는 로리 그림처 전 학장이 2016년 말까지 스톤 다나파버 암연구소 최고책임자(CEO)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의대학장에 임시로 뽑혔었다. 최 신임 학장은 "의대 학생, 교수진과 함께 인류 건강을 위한 의료기술 개발, 참다운 의료 교육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코넬대의 협력병원인 뉴욕-장로병원의 의료서비스를 로어맨해튼과 퀸즈, 브루클린으로 확장하겠다"면서 "앞으로 코넬대 전체의 유관 학부와 공동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연구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유능한 교수진 영입에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한 1.5세인 최 신임 학장은 메릴랜드주 루이빌 의대를 졸업하고, 이후 존스 홉킨스·예일대·피츠버그대 의대·하버드 의대 교수를 지냈다. 하버드 의대 교수로 재직하며 이 대학 부속 브리검 여성병원의 호흡기내과를 총괄했으며, 삼성서울병원이 최초로 시도한 '하버드식 중환자 치료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기도 했다. 2000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저농도의 일산화탄소(CO)를 신체에 주입하면 세포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 호암상(의학 부문)을 수상한 그는 2013년 코넬 의대 내과 학과장 겸 뉴욕 장로병원·코넬대학병원 의료총괄 자리에 올랐다. 최 학장의 부친 최영수 박사는 아시아 최초로 심장절개 수술에 성공한 흉부외과 전문의이다. 할아버지와 현재 루이빌 의대에 재학하는 큰아들 진웅 씨까지 3대가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부인 매리 최(한국명 최은희) 씨도 하버드 의대(신장학) 교수다.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1/18 17:02 송고
2017.01.18
[인터뷰] 로즈 장 "트럼프측 서운한 감정, 제 무대 보고 풀렸으면"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미국 국가 부르게 돼 영광…열정 다해 부르겠다" "트럼프 만났지만 잘 기억하지 못할 것…저와 한인 존재 알릴 기회"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축하 행사에서 미국 국가를 부르게 돼 영광입니다. 이번 무대가 한국과 한미관계 증진, 한인사회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일을 전후해 열리는 축하무대에서 미국 국가를 부르는 재미동포 2세 로즈 장(한국명 장미영·38)은 16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은 소감을 밝혔다. 그는 현지시간으로 취임식 하루 전인 19일 워싱턴D.C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열리는 '트럼프 캠페인' 주관 축하 행사와 21일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전미공화당이 개최하는 축하 무대에 올라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른다. 20일 취임식 당일 무대에 올라 미국 국가를 부르는 백인 어린이를 제외하면 사흘간 열리는 축하무대에서 미국 국가를 부르는 유일한 인물이다. 장 씨는 한국 민요 '도라지'와 뮤지컬 캣츠의 '메모리', 영화 오즈의 마법사 삽입곡 '오버 더 레인보우' 등도 함께 선사할 예정이다. 필라델피아 유세 현장에서 기념촬영한 로즈장 장 씨는 지난 2008년 유튜브가 실시한 "뮤지컬 '캣츠'의 주제곡 '메모리'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는 누구인가"라는 설문 조사에서 '팝의 전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셀린 디옹, 세라 브라이트먼 등 쟁쟁한 후보 2천500여 명을 제치고 1위에 등극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이자 '월드 디바'로 불리며 세계 무대에서 활동했다. "아시안 아메리칸을 비롯해 1천600명이 넘는 트럼프 지지자,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 앞에서 노래합니다. 대통령 선거 때 한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아 트럼프 지지자들은 서운한 감정이 있지만 제 무대를 보고 마음이 풀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열정을 다해 노래할 생각입니다." 지난해 대선 때 그와 부친인 장충국 씨는 트럼프 캠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필라델피아를 비롯해 유세 현장에 직접 나가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트럼프 후보와 만나기도 했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나를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래도 축하 무대에 오르면 저와 한인의 존재를 알릴 수 있을 것 같아 재능기부로 축가를 부르겠다고 자청했다"고 전했다. 장 씨는 취임준비위원회 홈페이지(www.greatagain.gov)를 방문해 축가를 부르겠다고 직접 지원했고, 위원회 측은 그의 가족이 트럼프를 지지한 사실, 세계 최대 승마대회에서 영국 국가를 부르는 등 각국에서 많은 활동을 한 경력을 인정해 그를 이번 축하 행사의 미국 국가를 부를 가수로 뽑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유명한 가수들이 축가를 거부한 것과 관련, 그는 "우리 가족 모두가 트럼프 당선을 위해 뛰었다. 그러기에 당선하면 꼭 축하무대에 오르고 싶었다"며 "많은 미국 가수를 제치고 한국계인 내가 뽑힌 것은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로즈 장은 스미스 칼리지에서 미술사와 연극을 전공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에 섰다. 그의 디지털 싱글 '희망의 노래' 가운데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은 클래식 차트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해 최장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오페라 아리아에서 팝페라와 팝을 아우르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제16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팝페라상, 서울 석세스 어워드 문화부문 예술상(2009년)을 받았다. '2010 광주비엔날레 홍보대사', '2011 제주 7대 경관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지난 2010년 아리랑TV가 선정한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9명 중 한명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 전야제 축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단독 축하공연,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단독 콘서트, SBS 스타킹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 특별출연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축하무대서 미국국가 부르는 로즈 장.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1/16 16:42 송고
2017.01.16
KEI '자랑스러운 한인'에 데이비드 오 박사 등 과학자 3명
(워싱턴=연합뉴스) 김세진 특파원 = '미주 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을 기념해 선정하는 '자랑스러운 한국계 미국인'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활동하는 데이비드 오 박사 등 과학자 3명이 지명됐다고 미국 정책연구기관 한미경제연구소(KEI)가 13일(현지시간) 밝혔다. 함께 지명된 두 사람은 윤활유업체 크라이산 인더스트리 창업자인 고국화 박사와 서은숙 메릴랜드대 물리학과 교수다. 2003년부터 NASA에서 근무한 오 박사는 화성표면탐사차량 '큐리오시티'의 조종부문 책임자로도 활동했고, 현재는 소행성탐사선 프시케(Psyche)의 시스템 설계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1965년에 미국으로 이주한 화학공학자 고 박사는 전공을 살려 1977년 크라이산 인더스트리를 설립했고, 1996년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뒤에도 화학공학 전문지의 편집자로 일하는 등 관련 분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주선(宇宙線) 전문가인 서 교수는 한인 과학자로는 처음으로 1997년 '신진 우수 연구자 미국 대통령상'을 받았고, 오는 7월부터는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의 첫 여성 회장으로 일할 예정이다. KEI는 이날 워싱턴DC의 언론박물관 '뉴지엄'에서 미주 한인의 날 기념행사를 열고 지명자들에게 기념패를 수여했다. 미주 한인의 날인 1월 13일은 1903년 한인 이민자 102명이 처음 하와이에 도착한 날을 기념해 정해졌다. KEI의 올해 행사는 12회째다. '자랑스러운 한인' 선정된 과학자들 미주 한인의 날인 13일(현지시간)을 맞아 미국 정책연구기관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선정한 '자랑스러운 한국계 미국인'들. 왼쪽부터 데이비드 오 박사, 고국화 박사, 서은숙 교수. [KEI 제공] smil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1/14 03:47 송고
2017.01.16
[중국동포 성공시대] (31) 예동근 부경대 교수
고교때 베이징 갔다 '우물안 개구리' 절감…'촌장' 꿈 접고 더 넓은 세상으로 동포재단 장학생→고려대 박사…동포 관련 학술행사서 토론·발표자로 '종횡무진' 이젠 '글로벌 재외동포대학' 설립 목표…"한·중 시야 뛰어넘는 글로벌마인드 필요" (부산=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첩첩산중의 농사꾼 아들이 드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길은 공부가 유일했죠. 고향에서 수재란 소리를 들었는데 베이징과 서울에 와보니 똑똑한 사람 천지더군요. 이를 악물고 공부에만 매달렸죠." 재외동포 관련 각종 학술행사에서 단골 발표자나 토론자로 등장하는 예동근(41) 부산 국립부경대 교수의 고향은 중국 지린성 융지현의 대흑산이라는 두메산골이다. 200호 남짓한 규모의 이 동네에서 그는 이제 가장 성공한 인사로 꼽힌다. 7년 전 34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립대 전임교원이 돼 부교수까지 오른 그는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학교 입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18년간 중국 옌지·베이징과 서울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며 "어려서부터 부모 품을 떠나 타향살이를 했지만 목표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고교 시절 지린성에서 품성·인성·지성이 뛰어난 학생 100명에게 수여하는 '성3호'(省三好)로 선정돼 난생처음 베이징을 견학하고는 꿈을 바꿨다. 그때까지는 비행기를 타보거나 바다를 구경하는 게 소원이었고 나이 들면 '촌장'이 되겠다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고향과 천지 차이인 베이징을 둘러보며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느끼고는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해 우뚝 서보겠다고 목표를 수정했다. 연변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예 씨는 2000년 중국 내 민족 연구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는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원에 입학했다. 조선족으로 소수민족 연구에 관심이 많아 민족이론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징에서 계속 공부할 예정이었던 그가 한국행을 택하게 된 것은 재외동포재단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대학원에 다니던 2002년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초청돼 1주일간 한국을 방문하면서 사고의 틀이 또 한 번 깨지는 경험을 했다. "미국, 중남미, 유럽, CIS(독립국가연합) 등 세계 각국의 주류사회에서 활약하는 차세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회였죠.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외연이 넓고 다양하다는 것에 새삼 놀랬고, 글로벌마인드를 갖추려면 중국에서만 공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단 초청 장학생에 응모해 뽑힌 예 씨는 2004년 고려대학원 사회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한국 유학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중국과 달리 서구 중심의 지식체계인 데다 사고방식도 달랐기 때문이다. 기초 공부를 다시 하기 위해 매 학기 학부 수업도 서너 개씩 들었고, 원서를 보느라 날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다. 학교 도서관 기숙사를 오가는 생활의 반복 덕분에 그는 빠르게 수업을 따라잡았고 보통 6년 이상이 걸린다는 박사학위를 4년 반 만에 취득했다. 대학에만 있다 보니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조선족처럼 직접적인 차별은 받지 않았지만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불법체류자로 오인돼 경찰로부터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는 일을 종종 당했다. 그 덕분에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등의 조선족타운을 틈나는 대로 드나들며 조선족의 처우 개선을 위한 연구를 별도로 진행했다. 예동근 부경대학교 교수는 연합뉴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연구실을 방문한 14일 오후에도 재외동포 관련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 작성을 하고 있었다. 예 씨는 베이징 대학원 시절인 2001년에 "조선족 학생끼리 서로 돕자"며 '조선족대학생센터'를 만들었다. 상부상조하면서 학업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며 30명으로 출발한 이 센터는 이제 회원이 1천 명이 넘어 학술대회를 열 정도로 성장했다. 그는 2003년 9월 박사과정 준비를 위해 한국에 오자마자 중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KCN)'를 만들었고 초대회장으로 활동했다. 석·박사과정 학생이 중심인 KCN은 설립 초기부터 정부기관 공청회, 대학·연구소의 학술대회 등에 단체 이름으로 참석해 조선족을 대변하며 부정적인 인식개선에 앞장섰다. "당시 국내에는 재한 조선족을 연구하는 학술 단체가 적어서 각종 행사에 KCN이 곧잘 초청됐죠. 다들 자기 학업으로 바쁜데도 시간을 내서 참가했고, 공동 연구도 진행해 KCN 이름으로 조선족 처우 개선을 위한 보고서나 성명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박사학위 취득 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예 씨는 2010년 부경대 교수로 부임했다. 국제지역학부에서 강의하면서 대학의 국제교류 업무에도 발 벗고 나서 부임 초기 40개였던 중국 자매결연 대학을 80개로 늘렸다. 2011년에는 늘어나는 국내 체류 조선족 차세대를 격려하고 변화한 조선족의 위상을 널리 알리려고 전문분야에서 활약하는 12명의 재한 조선족의 이야기를 모아 '조선족 3세들의 서울 이야기'를 펴냈다. 중국어·영어·일본어에도 능통한 그는 2004년에 중국어로 '중국소수민족자치주 연구'를 저술했고, 2007년에는 일본어로 '글로벌조선족네트워크'를 일본 현지에서 출간했다. 국내에서는 2013년에 중국의 사회·문화 등을 소개하는 '차이나핸드북'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조선족 3세들의 서울 이야기'의 속편을 내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조선족들을 섭외해 원고를 집필하고 있다. 성공한 조선족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영역을 구축한 이들의 성과를 1권에 1명씩 집중적으로 담아 2018년부터 시리즈로 낼 계획이다. 그는 "조선족의 코리안 드림이 2000년대 중반까지는 노동자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 중국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교수, 법조인, 대기업사원 등 엘리트가 돼 주류사회에서 활약하거나 기업을 일궈 한국에 정착하는 '신(新) 코리안 드림'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예동근 교수가 박사과정 시절인 2003년에 만든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는 지금까지도 국내 유학 중인 조선족 대학(원)생들의 중심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같은 조선족인 아내 김향란 씨는 부산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다. 중학교 동창으로 베이징 유학 시절 만나 결혼 후 한국에 동반 유학을 온 김 씨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예 씨 부부는 조선족 유학생 출신으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수로 임용된 첫 케이스다. 대학에서 전공 외에도 교양강좌로 '재외동포의 이해'를 꾸준히 개설하고 있고, 매넌 10회 이상 동포 관련 학술행사에 참여하는 그의 목표는 '글로벌 재외동포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홍콩의 화교 갑부가 중국 광둥성의 고향에 화교 명문대인 산두대학를 설립한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도 한상(韓商)과 동포 교육자들이 모여 차세대에 글로벌마인드를 심어줄 수 있는 '글로벌 재외동포 대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형태는 온·오프 상관없습니. 재외동포 연구를 학문의 한 분야로 정립하고 인재 양성 등을 추진해 동포사회의 축적된 지식이 모국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1/16 07:00 송고
2017.01.16
19세 전준혁, 한국 발레리노 최초로 영국 로열발레단 입단
영국 로열발레단에 입단하는 발레리노 전준혁.[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발레리노 전준혁(19)이 세계 3대 발레단 중 한 곳인 영국 로열발레단에 오는 8월께 입단한다. 전준혁의 부친 전용국 씨는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10일(현지시간) 오후 발레단에서 공식 입단 제의를 받았다"며 "오는 7월 로열발레학교를 졸업하고 발레단 시즌이 시작되는 8월께 정식 입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준혁은 2003년 입단해 현재 퍼스트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재일교포 4세 발레리나 최유희(33·한국 국적) 이후 두 번째 한국인 로열발레단 단원이 된다. 한국인 발레리노로서는 그가 최초다. 영국 로열발레단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미국의 아메리칸발레씨어터와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세게 최정상급 발레단이다. 그는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에 입학해 김선희, 조주현, 김용걸 교수를 사사했으며, 2014년 3월 영국 로열발레학교에 동양인 최초로 모든 프로그램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된 바 있다. 로열발레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작년 로열발레학교 학생 신분으로는 드물게 작년 로열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군무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해 배출되는 로열발레학교 출신 무용수 30여명 중 1~2명만 로열발레단에 입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작년 4월 미국 뉴욕에서 폐막한 권위있는 무용상인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에서 서희(현 아메리칸발레씨어터 수석무용수), 김기민(현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전체 대상(그랑프리)을 거머쥐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sj997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1/11 11:21 송고
2017.01.11
[중국동포 성공시대] (30) 이만용 POSRI 수석연구원
연세대서 경영학 석·박사 취득, 10년째 '한중관계 전문가'로 활약 "한국-중국 '전략적 파트너'…사드 때문에 큰 흐름 바뀌지 않는다" 16개월 딸 생각에 귀화 고민…"조선족 후배들 인재로 키우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사드 배치라는 정책 하나로 한국과 중국 관계의 큰 흐름이 바뀌겠습니까." 이만용(40) 포스코경영연구원(POSRI) 수석연구원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불편해진 한중관계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봤다. 중국동포(조선족)인 그는 지난 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유년의 양국관계에 관한 질문에 '폭넓게', '긍정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큰 흐름을 읽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1994년 민간연구소로 출범한 POSRI는 철강산업 연구 분야에서 세계 유수의 싱크탱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철강은 물론 미래사회를 선도할 소재, 에너지 등 녹색산업 분야에서 창조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국내외 경제와 경영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적기에 제공한다. 100여 명의 연구원 가운데 조선족은 이 박사를 포함해 2명이다. 이 수석연구원은 철강산업을 비롯해 자동차, 금융, 인수 합병 등 한중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보고서를 만들고, 신문과 방송 등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는 국내 몇 안 되는 '한중관계 전문가'다. 한국과 중국 양쪽을 두루 잘 안다는 점에서 그의 사드 관련 시각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양국 관계를 낙관하는 이유로 우선 중국이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여긴다는 점을 내세웠다. 중국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과 관계를 신속하게 발전해 왔고, 여러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추진해 왔다는 설명이다. 또 국가 간 외교관계도 개인 간의 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으며 굴곡을 거치면서 한 단계 발전한다는 것이다. 사드로 불거진 양국관계는 너무 가까워진 나머지 접촉면이 넓어지면서 마찰력도 커진 결과일 뿐 결국은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인식이다. 이 연구원은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두 나라는 문화·경제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런 틀에서 교류·협력해 오다가 사드를 계기로 잠시 불협화음을 보이는 것인데, 곧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며 "서로 신뢰를 더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국관계에서 언론의 역할이 상당히 크다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가령, '한한령'(限韓令)이라는 말은 중국 언론이 만들었고 이를 한국의 한 경제지가 '금한령'(禁韓令)으로 번역했는데. 두 단어의 뜻은 '제한'과 '금지'로 완전히 달라 이를 접하는 국민의 감정도 증폭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단어 하나라도 신중하게 번역해 국민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언론에 당부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서 포즈를 취한 이만용 박사 이 연구원은 한중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말로 매듭지으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털어놨다. 그의 조부는 경남 밀양이 고향이고, 어머니는 강원도 출신이다. 헤이룽장(黑龍江) 성 발리(勃利)에서 나고 자란 조선족 3세로, 발리조선족고교를 졸업하고 지린(吉林) 성 옌지(延吉)시에 있는 연변과기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1998년 교환학생으로 연세대로 왔다가 눌러앉아 경영대 대학원에서 석사(2000∼2002년), 박사(2002∼2006년) 학위를 취득했고, 곧바로 산업은행 연구소에 취직했다. 1년간 중국 금융 관련 연구를 하다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이직했으며, 2010년 POSRI에 수석연구원으로 들어갔다. '내부자 거래에 대한 실증 연구-유가증권 시장 상장기업을 대상으로'라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은행의 '금융안정포럼' 토론자로 활동했다. 매 분기 금융안정 보고서를 내고 이에 대한 평가를 하는 업무였다. 2009년에는 중국 동북 삼성 지역을 방문해 '북한 화폐개혁'과 관련, 북한의 가격체계·주민 생활 여건, 시장 등을 조사해 분석했다. 10년째 연구소에서만 근무하는 그는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 3대 방송사에 한중관계의 단골 인터뷰이로 출연하는 베테랑이다. 1년에 4∼5차례 포스코가 진출해 있는 중국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모기업이 당면한 전략 등을 수립하는 것은 물론 현업과 관계된 과제를 수행한 뒤 결과를 발표한다. "대기업 평균 수준의 연봉을 받고, 4년 전 조선족 여성과 결혼해 16개월 된 딸을 키우며 평범한 한국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제가 성공한 축에 끼일 수 있는 건가요? '성공시대'에 초대된 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모실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결혼 전에는 한국에 나와 있는 연변과기대 친구들과 모임도 하고, 후배들과 '재한 조선족의 미래'를 논의하기도 했는데, 결혼하면서 가정에 충실하다 보니 '공처가'가 됐네요." 아직 중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영주권자 신분으로 사는 그는 요즘 고민이 많다. 한국 체류 및 출입국 제도가 상당히 개선돼 영주권만으로도 큰 불편함이 없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양육과 교육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가 커서 학교에 갔을 때 '다문화'라는 이유로 소외당하게 되면 가슴이 아플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지 않겠다고 국적취득을 하는 것도 호들갑인 것 같고요. 할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인 한국에서 계속 살 건데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재한조선족과 다문화에도 관심을 가져보려 합니다." 그는 한국이 IMF로 위기를 맞았을 때 유학을 와 어렵게 공부한 탓에 조선족 후배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지만 앞장서서 단체를 만들고 조직적으로 그들의 권익 신장과 삶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자칫하면 한국 국민과 이질감 내지는 이원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후배들에게 "한국에는 다문화 내지 외국인에 대한 법과 제도가 있기에 그 테두리 안에서 자유로운 활동 공간을 확보하고 가치를 실현해 나가달라"는 당부를 건넨 것은 지금도 그 생각에 크게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후배를 양성하는 일에는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연구소에서만 일했지만, 사실은 강단에 서는 것이 꿈입니다. 연세대 학위 과정 밟을 때 경험을 했는데 희열을 느꼈을 정도니까요. 그때는 책에서 배운 내용만 전달했지만, 이제는 사회 경험까지 더해 알려줄 수 있으니 생각만 해도 떨립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인재를 키우는 일에 매진하고 싶고요. 제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싶어요. 조선족 후배들이면 더 좋고요."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1/09 07:00 송고
2017.01.09
멕시코 연방법원 공인 한서 통ㆍ번역사 첫 탄생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멕시코 한인 사상 최초로 중앙 사법기관이 공인한 한서 통ㆍ번역사가 배출됐다. 멕시코 한인 로펌인 문더스 아페르투스(MUNDUS APERTUS, 열린 세상)는 멕시코 연방대법원이 지난해 12월 16일(현지시간) 연방 관보를 통해 한국어-스페인어 공인 통역 및 번역사로 자사 대표인 엄기웅 변호사를 임명하고, 2017년 1월 1일부터 공식적인 활동 자격을 부여했다고 4일 밝혔다. 이로써 교민과 멕시코에 설립된 한국기업 지ㆍ상사가 생활과 기업활동을 하면서 각종 서류 번역에 한층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한국기업이 멕시코 정부의 공공입찰 프로젝트에 참여,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멕시코는 중남미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공입찰 시장으로 정부 주도의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건설ㆍ엔지니어링 기업들은 수백 쪽에 달하는 입찰서류 번역과 언어 소통 등의 문제로 스페인이나 중남미 기업들에 견줘 불리한 싸움을 할 때가 많았다. 모든 입찰서류는 스페인어로 번역돼야 하는데, 건설용어로 가득한 한국 문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공인 번역사가 멕시코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문서를 우선 영어로 번역한 다음, 멕시코에서 영-서 번역사에게 서문 번역을 맡기다 보니 시간과 비용면에서 큰 손실을 보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원본 서류에서 강조하는 장점과 경쟁력이 희석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엄 변호사는 "항상 멕시코에 감사하는 마음"이라면서 "이제 공인 통ㆍ번역사가 됐으니 전문용어에 대한 용어사전(Glossary)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서 오차를 최대한 줄이는 번역과 맥락을 전달할 수 있는 통역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멕시코 전력공사 민영화에 대한 경제학 석사 (서울대) 논문 작성 경험을 비롯해 코트라 멕시코 무역관 해외진출 지원 담당 과장, 현대 건설 멕시코 에이전트, 고려아연 멕시코 지사장 등 멕시코 현지 법 제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십분 활용해 최고 수준의 통ㆍ번역으로 한국기업의 멕시코 시장 진출을 돕겠다"고 덧붙였다. 멕시코 한인 사상 최초로 연방대법원이 공인한 한서 통ㆍ번역사로 임명된 엄기웅 변호사 [문더스 아페르투스 제공=연합뉴스] penpia2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1/05 02:06 송고
2017.01.05
빅뱅, 美 포브스 '30세 미만 유명인 톱30' 선정
포브스 '30세 미만 유명인 톱30'에 선정된 빅뱅 [YG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그룹 빅뱅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미만 유명인 톱30'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지난 4일(현지시간) 포브스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30세 미만 셀러브리티 30인'(30 Under 30 Celebrities) 명단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진입했다. 전날 포브스가 발표한 '30세 미만 유명 뮤지션 톱30'에 선정된 데 이은 성과다. 빅뱅은 이 명단에서 NBA 스타 카이리 어빙, 유명 미식축구 선수 오델 베컴 주니어, 할리우드 스타 힐러리 더프, 아르앤드비(R&B) 아이콘 제레미 등 국제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포브스가 발표한 '셀러브리티 100'과 '30세 이하 유명인 수입 톱 30'에 들었다. mim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1/05 11:03 송고
2017.01.05
아시안아메리칸법률재단 정의구현상에 한인 마리 오 휴버 씨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아시안아메리칸법률교육재단(AALDEF)이 주는 '2017 정의구현상'(2017 Justice in Action Awards) 수상자로 한인 변호사인 마리 오 휴버(여) 씨가 선정됐다. 이 재단은 31일 인터넷 홈페이지(www.aaldef.org)를 통해 "휴버 씨는 뛰어난 업적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여러 커뮤니티와 비영리 단체에서 사회 정의를 실천했기에 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시상식은 내년 3월 2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피어 60'에서 열리는 재단 연례 만찬에서 치러진다. 예일대 경제학과와 노스웨스턴 법대를 졸업한 오 씨는 전자부품 전문업체인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에 입사해 법률 수석부사장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5월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eBay)로 옮겨 법률 정책과 자문을 담당하는 수석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주한인위원회(CKA) 멤버, 아시안 퍼시픽 펀드 자문위원 등 비영리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1974년 미국 내 아시아인의 인권을 위해 설립된 아시안아메리칸법률교육재단은 소송, 법률 교육, 정책 운동 등 공익법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정의구현상을 시상하는데 지난해에는 인기 블로그 '앵그리아시안맨'(Angry Asian Man)을 설립한 한인 필 유 씨, 2012년에는 진 고 피터스(한국이름 고경은) 예일대 법대 교수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마리 오 휴버 변호사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2/31 07:07 송고
201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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