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한상넷
로그인
회원가입
전체검색영역
검색어입력
한상소식
한상소식
공지사항
입찰/행사/채용
비즈니스 정보
비즈니스 정보
한상기업 정보
글로벌 파트너십
한상비즈니스자문단
한상기업 제휴
유통채널 안내
제품홍보
1:1 비즈니스 매칭
국내·외 경제정보
산업∙경제 이슈
부처별 경제정보
Biz News Korea(Eng)
국내청년의 동포기업 인턴십
국내청년의 동포기업 인턴십
인턴십 소개
인턴십이란
지원절차 안내
인턴십 FAQ
인턴십 지원
인턴십 수기
안전 공지사항
세계한인 비즈니스대회 (세계한상대회)
세계한인 비즈니스대회 (세계한상대회)
대회 소개
대회개요
대회 FAQ
등록 안내
기업전시회 등록 안내
리뷰한상
결과보고
사진자료
영상자료
세계한상대회 20년사
정보센터
정보센터
이벤트/설문
이벤트
당첨자 발표
뉴스레터
묻고 답하기
검색
메뉴
로그인
회원가입
한상소식
공지사항
입찰/행사/채용
비즈니스 정보
한상기업 정보
글로벌 파트너십
한상비즈니스자문단
한상기업 제휴
유통채널 안내
제품홍보
1:1 비즈니스 매칭
국내·외 경제정보
산업∙경제 이슈
부처별 경제정보
Biz News Korea(Eng)
국내청년의 동포기업 인턴십
인턴십 소개
인턴십이란
지원절차 안내
인턴십 FAQ
인턴십 지원
인턴십 수기
안전 공지사항
세계한인 비즈니스대회 (세계한상대회)
대회 소개
대회개요
대회 FAQ
등록 안내
기업전시회 등록 안내
리뷰한상
결과보고
사진자료
영상자료
세계한상대회 20년사
정보센터
이벤트/설문
이벤트
당첨자 발표
뉴스레터
묻고 답하기
한상소식
공지사항
입찰/행사/채용
한상소식
세계한상소식
한상이야기(성공사례/노하우)
한상소식
공지사항
입찰/행사/채용
한상이야기(성공사례/노하우)
대륙구분
전체
아시아/대양주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중동/아프리카
러시아/CIS
국내
국가구분
전체
보기조건 갯수 선택
10개 보기
20개 보기
30개 보기
18/38
페이지
(전체 378)
검색분류선택
제목
내용
검색어를 입력해주세요
게시글 검색
인니 특별경제구역 개발 자문하는 62세 김경태씨
코이카 ODA 해외 자문단으로 활동 "삶의 모멘텀 얻기 위해 도전, 도움주고 전문 식견도 생겨 보람" 코이카 인도네시아 자문단 김경태 [강성철 촬영] (자카르타=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100세 시대인데 나이 먹었다고 뒷방 신세로 물러나면 안 되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한 모멘텀을 모색하던 중 봉사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해 참여했습니다." 코이카 ODA 지역 자문단으로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에서 근무해 온 김경태(62) 씨는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새로운 세상을 배우며 경력도 활용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덕분에 인생 2막 1장을 멋지게 열었고 매일매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근무한다"고 봉사에 도전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코이카는 해외에서 청년 중심의 봉사단과 시니어봉사단 그리고 현지 정부의 정책자문을 하는 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 전자공학과 출신의 김 씨는 삼성전자, IBM, 신세계 INC를 거쳐 IT 분야 벤처회사의 대표이사를 역임 후 컨설팅회사의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하다가 57세에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해외 개도국 자문관 파견에 응모해 인도네시아와 인연을 맺었다. 부임 초기부터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 산하의 특별경제구역위원회 사무국에서 자문 역활을 해온 그는 3년 후 임기가 만료돼 귀국했다. 경제구역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라 마무리를 못 한 게 아쉬웠던 그는 2017년 코이카에서 자문단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지난해 초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온 그는 같은 부서로 재배치됐다. 김 씨는 12개 특별경제구역 개발과 프로모션 및 한-인니 간 협력 프로젝트와 관련한 중재를 하고 구역 내 정보시스템 구축을 돕고 있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두루 거치며 성공한 인생을 살던 그가 57세에 돌연 해외 봉사에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우연히 개도국 자문단에 참가했던 지인의 경험담을 듣고는 무릎을 쳤다. 대한민국 안에서만 뭘 해볼까 고민했는데 새로운 길이 보였다"며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 한 선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자문단 활동을 하면서 부서 직원 전체가 한국의 개발 성공 사례를 배우기 위해 인천과 부산의 경제자유구역청을 방문하는 프로젝트를 주선했고,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 간 구체적인 협력을 명시한 양해각서 체결의 실무작업을 도왔다. 김 씨는 자문단 활동의 제일 중요한 덕목으로 '소통'을 꼽았다. 상대의 입장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도움을 주려고 해야지 우리의 성공 방식을 일방적으로 전하려고 해서는 오히려 반발만 생긴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의 성공 방식이 정답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며 "역사·문화·사회 환경이 다른 점을 고려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필요하면 스스로 공부를 해서라도 실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소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준으로 현지어를 습득해 눈높이를 맞추려는 현지화 노력과 소통을 중시하면 상대방도 진정성을 믿어준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봉사 기간 현지 대학의 어학당에서 인도네시아어를 중급수준까지 배웠다. 현지 전통 옷을 즐겨 입는 등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 온 것도 인정을 받는 데 도움이 됐다. 임기 만료를 앞둔 그는 12개 특별경제구역을 한국어로 소개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어 한국에 알리고 있다. 외국 기업 투자 시 법인세 혜택 등 투자유치 관련 정보와 인도네시아의 매력 등도 영상에 담았다. 그는 "기회가 되면 다시 자문단에 도전해 인도네시아 경제구역에 한국 기업이 입주할 때까지 돕고 싶다"며 계속 봉사를 하려는 이유에 대해 "나 자신도 성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한-인니 간 경제 교류를 돕는 컨설팅 관련 창업에 도전할 거라는 김 씨는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나 산업화를 겪은 60살 전후의 세대는 퇴직 후 삶 때문에 고민이 많다"며 "해외 자문단은 축적된 역량과 경험도 살리고 새로운 도전의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청년 봉사단과 자문단이 협업 형태로 해외에서 활동하면 ODA에 좀 더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문단의 풍부한 경험과 열정이 많은 청년 봉사단이 한 팀이 되면 개도국을 돕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청년들이 막연한 봉사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극도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06
뇌심장혈관 질환 골든타임 사수 차재관 교수
전국 심뇌혈관질환센터협의회장 "뇌혈관 3시간, 심장 1시간 이내 치료해야" "현재 14개 권역센터 28개로 늘려야…구급대원 병원 선택권 법제화도 필요" 차재관 동아대 의대교수 [촬영 조정호]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환자와 심장에 이상이 생겨 쓰러진 환자는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 치료에 필요한 골든타임을 놓치면 환자는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로 고통받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골든타임 안에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서울을 제외한 전국 14개 권역에 심뇌혈관질환 센터를 거점 병원으로 지정했다. 하루 24시간 응급진료체계를 구축하는 이 심뇌혈관질환 센터에는 심혈관센터, 뇌혈관센터, 심뇌재활센터, 예방관리센터 등 4개 전문 센터로 운영된다. 차재관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지난해부터 전국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협의회 회장을 맡아 우리나라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정착에 기여하고 있다. 차 교수는 심뇌혈관질환 골든타임과 관련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뇌혈관질환은 3∼4시간, 심장질환은 1시간 이내에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30분 만에 오는 환자와 4시간 30분 지나서 오는 환자의 예후는 완전히 다르다"며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면 가족 등이 119구조대를 부르고 구조대원이 가자고 하는 병원으로 신속하게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대 뇌혈관센터 [촬영 조정호] 다음은 차 교수와 일문일답. -- 전국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가 왜 필요한가. ▲ 심장이나 뇌혈관질환은 사망률이 40∼50% 정도로 높다. 이 때문에 골든타임이 중요한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보통 뇌혈관질환은 3∼4시간, 심장질환은 1시간 동안 이내에 치료해야 한다. 현재 전국에는 14개 권역별로 심뇌혈관질환센터가 운영 중이다. 이곳에는 치료 시설이 집중돼 있다. 심뇌혈관질환 환자가 일반 병원에 가면 사망 확률이 높다. 과거 수도권에는 좋은 병원이 있어 환자 생존 가능성이 높았지만, 지방은 시설이 부족해 심뇌혈관질환 사망률이 높았다. 정부가 10년 전 전국에 권역별로 중점 병원을 지정해 센터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처음에는 7개 센터로 시작했고 최근 울산대병원 지정되면서 지금은 14개 센터로 늘어났다. --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 성과는. ▲ 지방에도 서울과 비슷하거나 일부 분야에서는 더욱 뛰어난 시설과 인력을 갖추게 됐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과 지방 격차가 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방이 더 나은 분야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심뇌혈관질환센터가 지역 의료계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동아대병원은 처음부터 한 곳에 뇌졸중·심혈관치료실, 중환자실, 외래진료실, 재활치료실, 입원병실까지 집중화시켰다. -- 심뇌혈관질환에서 골든타임이 중요한데 어떻게 개선되고 있나. 심뇌혈관 질환 전조증상 (CG) [연합뉴스TV 제공] ▲ 골든타임은 병원 내부와 병원 외부로 구분된다. 예전에는 환자가 병원에 오면 원무과에 가서 접수하고 영상 촬영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려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2005년 이후 병원 내 골든타임은 많이 단축됐다. 문제는 외부에서 병원까지 도착하는 시간을 단축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병원 앞에서 발병한 심뇌혈관질환 환자와 도심에서 떨어진 관광지에서 7시간 만에 이송되어온 환자는 모두 생명을 건졌지만 늦게 도착한 환자는 식물인간이 됐다. 적어도 4시간 30분까지는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 병원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는 이유는. ▲ 환자가 119구급차를 타면 보호자가 어느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또 가까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못 하고 다른 병원으로 재이송되는 사례도 많다. 서울대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심혈관 질환 환자 재이송률이 46%나 된다. 재이송되면 관련 절차 때문에 치료 시간을 놓쳐 사망 확률이 높아진다. 부산만 하더라도 무늬만 심혈관 치료 병원인 곳이 많아 환자들이 병원 선택을 고민하는 사이 시간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 뇌심혈관질환 골든타임과 센터 운영 개선방안은. 심뇌혈관질환 국가적 관리 시행 (PG) [제작 정연주, 최자윤] 일러스트 ▲ 구급대원이 뇌심혈관질환 환자를 집중치료시설을 갖춘 인증된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에서 평소 구급대원을 상대로 교육을 하고 있다.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면 가족 등이 119구조대를 불러야 한다. 환자 보호자는 구급대원을 믿고 병원 선택을 맡겨야 한다. 정부가 권역 뇌심혈관질환센터 당직 관련 예산을 줄이고 있어 문제다. 병원 입장에서 외래진료가 돈이 남지 야간 당직은 돈이 안 되다. 경제 논리를 내세워 당직 시스템 지원이 끊어지면 공익성도 무너지게 된다. 환자가 도착하면 10분 이내에 영상 촬영을 해서 혈전 용해제를 투입하는 전문인력이 항상 대기해 있어야 한다.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2년 이내 28개로 확대해야 한다. 대도시인 부산을 보면 서부산권인 동아대병원에 이어 동부산권인 해운대에 추가로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 일반인이 평소 어떻게 하면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나. ▲ 고혈압 환자는 반드시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 부작용을 우려해 혈압약을 안 먹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옛날 이야기이고 지금은 좋은 약이 많다. 살 빼고 금연하고 술은 적당해야 한다. 특히 걷기보다 달리기 등 격한 운동을 해야 한다. 하체 근육 운동도 좋다. 운동은 심뇌혈관질환과 치매 예방에 좋다. cc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05
강영식 사무총장 "남북 민간교류 자율성 더 넓혀줘야"
"대북지원 아직도 '바닥'…중앙정부가 남북관계 주도한 탓" "중앙·지자체·민간단체, 역할 분담하고 강점 살려나가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강영식 사무총장 (서울=연합뉴스) 전성옥 논설주간 = "올해가 문재인 정부 3년 차인데 민간분야의 대북지원은 아직도 바닥입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때만도 못합니다. 남북관계를 중앙정부가 주도해나가다 보니 빚어진 현상입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강영식 사무총장은 "대북지원이 시작된 이래 민간단체가 북녘땅을 밟지 못한 해가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이라면서 "정치적 상황에 상관없이 남북교류가 지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남북한 당국이 자율성을 더 확대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던 시기에 천주교·기독교·불교 등 6대 종단과 주요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창립한 국민운동 조직이다. 강 사무총장은 "남북 당국이 먼저 합의를 한 뒤 민간교류를 진행하겠다는 선관후민(先官後民)이 현 정부의 방침"이라며 "대북제재의 틀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점은 이해하지만 지나치게 남북관계를 중앙정부가 끌고 나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 요즘 남북교류에서 민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 남북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됐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여러 분야에서 남북교류가 활발해졌을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상황은 다르다. 대북지원은 아직도 바닥이다. 최악은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도다. 이 2년 동안 민간단체가 대북지원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북녘땅을 전혀 밟지 못했다. 민간의 대북지원 액수 면에서 보더라도 작년과 올해는 이명박 정부 초기 때만도 못하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물자지원 현황을 보자.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지원액은 해마다 70억~80억 원이었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에는 무려 105억5천여만 원에 달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에는 고작 3억9천여만 원이다. 작년에도 10억 원을 웃돌았을 뿐이다. 선관후민이라는 정부의 대북 방침 탓이다. 남북 당국이 먼저 합의를 한 뒤 민간교류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대북제재의 틀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의도는 이해하지만, 중앙정부가 남북관계를 지나치게 주도해나간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도 심한 편이다. -- 민간단체·지자체의 남북교류를 활성화하려면. ▲ 자율성을 존중해줘야 한다. 교류협력사업의 핵심은 지속가능성이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북한 주민의 신뢰를 쌓으려면 오랜 세월 공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하루아침이다. 남북교류의 세 주체인 중앙·지방정부와 민간단체는 각기 나름대로 특성과 강점이 있다. 이에 따라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간단체의 강점은 대북 교섭력과 독자성이다. 이를 살려 나가려면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농업지원사업의 경우 시범농장 조성을 위한 1년 계획서를 정부 당국에 제출하면 사업 전체에 대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사업 계획 전체를 승인받았어도 단계별 사업을 할 때마다 또다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세부계획별로 승인을 받는데 또 20~30일씩 걸린다. 지자체는 아예 남북교류 관련법에서 빠져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만 해도 남북교류협력법에 광역지자체가 교류·협력의 주체로 포함되어 있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광역지자체가 제외됐다.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 남북교류 통제는 북한도 마찬가지 아닌가. ▲ 북한도 바뀌어야 한다. 북한의 대남사업은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라는 창구로 단일화되어 있다. 조선노동당의 외곽단체다. 민화협에 3개의 핵심 부서가 있다. 지자체와 민간단체의 교류를 담당하는 부서는 협력국, 언론이나 학술단체 등은 사회문화국이다. 통일과 관련된 남북공동 행사는 '사무소'라 불리는 민화협 산하의 별도 조직에서 담당한다. 교류를 활성화하려면 민화협도 남북의 단체와 기구끼리 직접 접촉할 수 있도록 창구를 넓혀줘야 한다. -- 유엔의 대북제재는 어떤가. ▲ 대북제재가 매우 촘촘하다. 인도주의적 지원은 쉽게 제재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외 사항으로 인정받으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미국 등 선진국의 민간단체는 제재 면제를 받기 위해 아예 많은 돈을 들여 변호사를 고용한다. 그만큼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시범농장이나 묘목장 조성을 위한 비닐하우스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주사기, 해충 퇴치를 위한 분무기 등도 쉽게 보내지 못한다. 비닐하우스 속 파이프, 주사기의 바늘, 분무기의 일부 부품이 제재품목인 철이기 때문이다. 제재 면제를 받으려면 길게는 10개월이 걸릴 때도 있다. 남한의 민간단체는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 품목을 보낼 때도 정부와 유엔 두 곳의 승인을 일일이 받아야 한다. 제재 면제를 위한 모든 책임과 서류 작성은 민간단체가 도맡아 한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정부는 중간에서 승인 여부를 결정하고 서류를 유엔에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 정부가 승인한 사항이면 유엔에서도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 도움을 줘야 한다.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결성된 계기는. ▲ 90년 중·후반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극심한 식량난에 빠졌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기간이다. 적게는 80만 명, 많게는 3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풍문만 무성했다. 당시 남북관계는 극도로 경색됐고 군사적 긴장은 높아만 갔다. '빠르면 3주, 늦으면 3달, 늦어도 3년에는 북한이 망한다'는 의미의 3-3-3이란 말이 나돌 정도인데도 남한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북한은 급기야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때맞춰 남한의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이념이 다르다고 같은 동포가 굶어 죽는데 방관하면 되겠는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범시민운동에 나섰다. 경실련의 주도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강원룡 목사·서영훈 선생,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월주 스님 등 네분을 대표로 모시고 96년 6월에 북한 돕기 운동에 나섰다. 이 범시민운동이 이름 그대로 단체의 명칭으로 정착됐다. 천주교·기독교·불교 등 6대 종단과 경실련, 흥사단, 성균관, YMCA·YWCA 등 주요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국민운동조직체로 발전한 것이다. -- 유엔으로부터 '특별협의지위 NGO' 자격을 받았다.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대북지원과 민족화해를 표방한 최초의 민간운동이자 조직체다. 인도적 대북지원과 교류사업을 통해 남북 간의 반목과 대립을 깨고 한반도의 평화정착, 민족의 화해와 공존을 이루어가자는 것이다. 우리 단체가 내세우는 비전도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정의롭고 건강한 한반도평화공동체'다. 이런 비전과 활동이 인정을 받아 2000년에 유엔 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로부터 '특별협의지위 NGO(비정부기구)' 자격을 부여받았다. 덕분에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발언권을 얻고 국제 NGO와 협력·연대를 꾀할 수 있게 됐다. -- 그동안의 활동은. ▲ 단체 결성 초기 긴급구호에서 한 걸음 나아가 북한의 인도적 상황을 구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농업과 보건의료 분야의 개발·지원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농업 분야는 생산구조 변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협동농장을 대상으로 농법 개선과 농기계 지원사업을 추진해왔다. 보건의료 분야 역시 북한의 열악한 기초의약품 수급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의약품 생산시설 확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99년에는 7개 보건의료단체(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한국제약협회, 대한결핵협회)와 함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보건의료협력본부'를 구성해서 북한의 보건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왔다. 대북지원사업은 이명박 정부 시절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린 2009년 4월부터 끊기기 시작했다. 이듬해 내려진 5·24조치 이후부터는 악화일로였다. 그런 상황이 박근혜 정부 때까지 이어지다 보니 남북교류협력의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됐다. 남북경색 국면으로 우리 단체의 대북지원은 중단된 기간이 많아 성과가 성공적이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민간차원에서 민족화해와 통일운동의 물꼬를 텄다는 점은 성공적이라는 게 내·외부의 평가다.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강영식(56) 사무총장은 경실련 사무국장 재직 중이던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뛰어들어 23년간 대북지원과 남북교류 업무에 앞장서왔다. 그 경험을 살려 지자체와 전문단체의 대북사업을 위한 가교역할도 하고 있다. 150여 차례나 방북했으며, 북한의 농업·보건의료 문제에 정통하다. sungo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04
작은거인 크바스토프 "클래식도, 재즈도 삶을 노래하죠"
내달 LG아트센터서 첫 내한공연…중증 장애 딛고 도전 이어가 바리톤 출신 재즈 가수 토마스 크바스토프 [LG아트센터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사실 재즈 연주와 클래식 성악을 비교하긴 어려워요. 다만 클래식이든 재즈든 모든 음악은 삶과 환상, 분노, 화, 행복, 기쁨 등을 노래합니다." 세계적 바리톤으로 활약하다 재즈 가수로 전향한 독일 출신 토마스 크바스토프(60)는 27일 서면 인터뷰에서 "클래식과 재즈 모두 내겐 자연스러운 장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오는 3월 19일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처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작년 소니뮤직 산하 레이블 '오케이 레코드'를 통해 발매한 재즈 앨범 '나이스 앤 이지'(Nice 'N' Easy)에 수록된 레퍼토리를 위주로 선보일 예정이다. 아서 해밀턴의 '크라이 미 어 리버(Cry Me a River)',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 조지 거슈윈의 '서머타임(Summertime)' 등 재즈 명곡을 선보인다. 토마스 크바스토프 (왼쪽에서 두번째) [LG아트센터 제공] 그는 중증 장애를 딛고 세계적 성악가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바리톤으로 수십장 음반을 냈는데, 미국 그래미상만 3차례 수상했다. 독일 에코 클래식상은 6회나 받았다. 그러나 무대 위 그의 모습은 평범한 성악가들과는 다소 다르다. 7개 손가락과 어깨에 붙은 손, 130㎝ 키, 그래서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모친이 임신 중 입덧을 완화하기 위해 복용한 약물 부작용으로 선천기형으로 태어났다. 그는 그러나 자신의 장애를 한계로 인식하지 않는다. "사실 전 제 장애에 대해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보이니까요. 전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이유로 하노버 음대 진학에 실패한 그는 법학을 전공하면서도 개인 레슨으로 꾸준히 노래를 공부했다. 1988년 뮌헨 ARD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성악가 길을 걷게 됐다. 따뜻하면서도 우아한 미성과 넓은 음역이 특징으로 꼽힌다. 특히 독일 가곡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전성기를 누리던 2012년 클래식 무대에서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에는 연극배우와 내레이터 등으로 간혹 무대 위에 올랐다. "형의 죽음이 제 은퇴에 영향을 미쳤죠. 형은 폐암 진단을 받았었는데, 그때부터 웬일인지 제 목소리가 이전 같지 않았어요. 심리적인 원인이었죠. 형과 저는 특별할 정도로 가까웠으니까요. 그간 클래식 음악을 부르진 않았지만, 무대에는 가끔 섰죠.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성악 콩쿠르도 열고 있습니다. 늘 음악과 함께 해왔죠." 그는 최근 재즈 앨범 '나이스 앤 이지'로 제2의 음악 인생을 재개했다. 그의 재즈는 은퇴한 성악가가 때로 즐기는 취미나 여가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그는 현역으로 왕성히 활동하던 2007년에도 도이체 그라모폰(DG)을 통해 재즈 앨범을 발매했을 정도로 재즈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재즈의 자유로움과 무한한 즉흥성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함께하는 연주자들과 클래식보다 훨씬 더 친밀한 반응을 주고받을 수 있죠. 클래식에선 음(notes)과 음가(length)를 정확히 노래하고 연주하는 게 중요하지만, 재즈에선 모든 게 더 자유롭습니다." 그와 재즈의 만남은 10대 시절 시작됐다. "처음 재즈를 알게 된 건 형을 통해서입니다. 형이 록밴드 '제트로 툴'이나 '딥 퍼플' 음악 등을 들려줬지만, 제 취향엔 안 맞았어요. 그런데 재즈를 들려줬을 땐 아주 좋았죠. 그 자유로움과 즉흥, 정교하게 얽힌 리듬이 마음에 들었어요." 토마스 크바스토프 [LG아트센터 제공] 이번 첫 내한 무대에서도 관객들은 그의 독일 가곡이 아닌 재즈를 감상하게 된다. 그는 오랫동안 작업한 피아노 트리오와 함께 관객에게 직접 곡을 소개하며 친밀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특별히 귀 기울여 들어주길 바라는 곡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매진'과 '서머타임'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장애를 딛고 세계적 성악가로, 성악가에서 재즈 가수로 늘 도전과 모험을 이어온 그의 '긍정 원동력'은 무엇일까. "전 장애를 지닌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현재 전 음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며, 어여쁜 (의붓)딸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재즈 공연과 마스터 클래스를 많이 열 예정입니다. 시 낭독을 좋아하기 때문에 문학 작품을 낭독회도 개최해보려 해요." sj997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2.27
'기적 재활' 가수 김혁건 전신마비 딛고 박사 '우뚝'…또 도전
경희대 응용예술 박사 따자마자 3월 법무대학원 진학 "장애인택시 5시간 기다리다 지하철 승차…승강장 틈새 넓어 종점까지 못내려" "법 공부해 장애인권리 개선"…록밴드 '더 크로스' 활동 중 불의사고 경희대 응용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록밴드 더크로스 보컬 김혁건 씨 [본인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제가 가진 이 작은 재능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계속 크고 작은 문턱, 계단과 마주치겠죠. 하지만 하나하나 이겨내고 끝없이 도전해나갈 겁니다." 2000년대 초 가요계를 풍미한 록밴드 '더 크로스' 보컬 김혁건 씨는 21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전날 열린 경희대 졸업식에서 응용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신마비 때문에 어깨 아래로는 몸을 가눌 수 없는 김씨가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심한 지 약 4년 만에 거둔 값진 성과였다. 2012년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중 불법 유턴 차와 부딪혀 경추 손상에 의한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김씨는 2년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고 직전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중예술전공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그는 졸업까지 한 학기만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김씨는 "재활치료를 막 끝낼 때만 해도 '학교를 다시 다닌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다니기도 어려울뿐더러,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고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렇지만 졸업 학기만 다니면 끝나는 상황에서 공부를 놓아 버리기엔 아쉬움이 너무 컸다. 가족들의 격려와 도움을 받아 '일단은 해 보자' 하는 심정으로 재입학했다. 다시 돌아온 학교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당장 전자책으로 나온 전공 서적이 거의 없어 책을 일일이 스캔해 컴퓨터로 봐야 했다. 시험을 보거나 수업을 들을 때도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없어 학습도우미가 필기를 대신했다. 도중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을까. 김씨는 "여기서 포기하면 다른 것들도 계속 포기하면서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일반 학생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두 배, 세 배 이상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석사 과정을 마친 김씨는 학위뿐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2017년 같은 대학 응용예술학과 박사과정에 지원했다. 더 깊게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제가 몸이 불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논문을 쓰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 보니, 입학과 동시에 졸업논문 주제를 음악치료로 잡았죠." 박사과정 도중 김씨가 펴낸 논문 '하모니카를 활용한 호흡재활 훈련이 척수 손상 환자의 호흡기능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학술지인 '인간행동과 음악연구'에 실렸다. 논문을 쓰면서 임상연구를 위해 따로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화여대에 있는 음악치료 관련 학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전문가들에게 자문했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딴 그는 또다른 출발을 준비 중이다. 3월 경희대 법무대학원에 다시 진학한다. 장애를 얻기 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상 속 장애인이 느끼는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입법을 공부하고 싶어서다. 김씨는 "도로 턱 때문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도 멀리 돌아서 가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장애인 콜택시가 5시간을 기다려도 안 와서 지하철을 탄 적이 있는데,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이 너무 넓어 내릴 수가 없어 종점까지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원에서 법을 공부해 장애인이 사회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을 개선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혁건 솔로 앨범 '넌 할 수 있어' 커버 [본인 제공] 사고 때문에 그만뒀던 음악 활동도 몇 년 전부터 활발히 하고 있다. 2014년 10월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재활 후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김씨는 2015년 솔로 앨범 '넌 할 수 있어'를 발매했다. 김씨는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에서도 다른 장애인 가수들과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최근에는 록밴드 'GIRL'과 협업(컬래버레이션) 앨범, 더크로스 싱글 앨범 작업이 한창이다. 언론을 통해 기적적인 재활 이야기가 알려진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김씨에게 이따금 불의의 사고로 몸이 마비된 사람이나 그런 이들의 가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계속 쪽지를 보내온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이겨냈느냐' 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장애 때문에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김씨는 "그런 힘든 시간을 나도 겪었지만, 견뎌내야 한다"며 "그렇게 견뎌내다 보면, 언젠가는 내 안에서 웃음도 되찾을 수 있고, 행복한 시간도 온다.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juju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2.26
하태역 대사 "키르기스 지역개발·디지털화 협력사업 집중"
(알마티=연합뉴스) 윤종관 통신원 = 하태역 주(駐)키르기스스탄 대사는 22일 "키르기스 국가 개발 목표인 지역개발과 디지털화에 기여하는 상생 협력 사업을 집중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 대사는 이날 연합뉴스 통신원과 만나 이같이 말하고 "마을 발전을 위해 주민이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만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새마을 운동 사업'을 키르기스 30개 마을에서 본격 추진하기 위해 키르기스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 대사는 이어 "국가 디지털화에 기여하는 '행정정보공유체계 구축사업'을 내년부터 추진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태역 주 키르기스스탄 대사 그는 "올해 우리 정부의 신북방 정책, 상생과 협력의 대(對)중앙아시아 외교가 키르기스 현장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하 대사는 "최근 키르기스 정부는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감세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키르기스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회원국이자 유럽연합(EU)의 특혜관세 대상국으로서 한국 상품 및 기업이 러시아와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역 및 생산 거점 기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관광상품 공동 개발 및 관광 복합단지 건설, 한국 중소기업 생산공장 진출 등 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중점 지원할 계획"이라며, 오는 4월 한국 여행사들이 참석하는 '한-키르기스 관광 분야 협력 포럼'과 10월 중소기업 진출 지원을 위한 '한-키르기스 경제 협력 포럼'이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2018 한국 친구의 밤' 행사 (주키르기스스탄 대사관=연합뉴스) 하 대사는 특히 "키르기스 교민 및 고려인 동포 사회 활성화를 위해 작은 규모라도 구체적인 경제협력 사업이 성사돼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키르기스 양국 국민 간 이해 증진을 위해 매년 5월에 개최해오던 '5월 문화의 달' 행사를 '춘계 및 추계 한국문화제'로 확대하고, 모든 문화행사를 키르기스 내 교민단체 및 고려인협회 등과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keiflaz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2.25
필리핀 이주여성 DJ 제니 김 "만족 못하는 한국인 안타까워"
"수교 70주년 맞아 한국·필리핀 교류 역사 널리 알려지면 좋겠어요" 방송·통역에다 각종 모임에도 앞장…"정부 차원에서 코피노 지원해야" 필리핀 이주여성 제니 김 씨가 21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 다문화가족 음악방송 스튜디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한국항만연수원 통역사 겸 상담사, 다문화가족 음악방송 DJ, 필리핀이주여성협회 부회장, 한국문화다양성기구 이사, 서울필리핀가톨릭공동체 사무국장, 한·필 헤리티지문화교육협회 홍보대사, 세계필리핀재외동포협회 한국 대표, 대통령 직속 필리핀노동자라디오방송 한국 통신원…. 제니 김(41) 씨에게 따라붙는 직함은 이것만이 아니다. 모 이주여성지원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한때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영어와 타갈로그(필리핀 토착어)로 된 인터넷 홈페이지를 3개씩 운영하며 한국살이에 익숙지 않은 초보 필리핀 이민자나 한국 이주를 준비하는 고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상담을 하고 있다. 재한 필리핀인 사이에서는 마당발이자 전천후 도우미로 통한다.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염리동 다문화가족 음악방송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하자 여러 장의 명함을 갖게 된 동기부터 털어놓았다. "제가 2003년 한국으로 건너와 직장에 다닐 때 한국어가 서툴러 고생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온 지 8년 된 고국 사람이 경쟁심 때문인지 몰라도 제게 잘못 통역을 해주는 거예요. 이때 상처를 받아 나중에 한국어가 능숙해지면 꼭 좋은 데 쓰겠다고 결심했죠. 그 약속을 지키려고 틈나는 대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제니 김 씨가 필리핀 토착어인 타갈로그어로 다문화가족 음악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고향인 필리핀 세부의 남부필리핀대(USP)를 다니던 제니 김 씨는 같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과 2000년 결혼했다. 2002년 아들을 낳은 뒤 이듬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부부가 함께 매달린 사업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고, 아이를 키우기에 한국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친정 부모도 우리 결혼을 반대하셨지만 시부모의 반대가 더 심했어요. 결혼식에도 안 오셨죠. 인천국제공항에서 처음 시어머니를 뵀는데 손자가 아이 아빠를 닮았다고 좋아하시더군요. 남편과는 별거하다가 이혼했어요. 그래도 시어머니는 제가 계속 모셨죠. 남편보다 시어머니와 훨씬 오래 살았어요." 다음 달 인천 동산고에 입학하는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엄마에게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가 필리핀인이라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알려지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학부모 행사에는 할머니(시어머니)가 참석하다가 제니 김 씨는 아들이 4학년 때 처음 학교에 갔다. "저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 외모를 꾸미고 간 편이었죠. 전업주부인 다른 친구 엄마들은 허름한 차림이었고요. 이를 본 아들 친구가 '너희 엄마 부자인 모양이구나'라고 하더래요. 그때부터 아들이 저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됐죠. 그래도 아빠도 없이 사춘기를 겪다 보니 고민이 많은가 봐요. 걱정하며 달래다가도 어떨 때는 '필리핀에는 사춘기 그런 거 없어'라고 말하며 마음을 다잡아주기도 합니다." 제니 김 씨는 많은 직함 가운데 다문화 방송 DJ란 직함에 가장 큰 애착을 느낀다. 아들도 지갑에 엄마의 DJ 명함을 넣어 다닐 정도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웅진재단이 운영하는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은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는데, 제니 김 씨가 최고참 DJ다. 2013년 초에 DJ를 해보고 싶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니 이력서를 보내라는 응답이 왔고,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채용됐다. 만 6년을 진행하다 보니 팬도 많이 생기고 애틋한 사연도 자주 받는다. 국내의 필리핀인은 물론이고 모국에 사는 친지나 다른 외국의 지인들도 잘 들었다는 안부를 수시로 전해온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필리핀 이주여성을 만났더니 '힘겨울 때마다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을 들으며 위안을 받는다'고 털어놓더군요. 제가 '그 진행자가 바로 나야'라고 말하자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습니다. 통역을 위해 경기도 광주의 사업장을 방문했는데, 사업주가 거만한 태도로 저를 대하다가 방송국 DJ 명함을 건네주니 갑자기 태도가 공손해지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언론의 힘이 세다는 걸 실감했죠.(웃음)" 제니 김 씨는 "필리핀인들은 생활이 어려워도 만족하며 사는데 한국인들은 가진 게 많은데도 좀처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충고했다. 오는 3월 3일은 필리핀과 한국의 수교 70주년 기념일이다. 주한필리핀대사관과 주필리핀한국대사관은 각각 기념식과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니 김 씨는 다음 주 라울 에르난데스 주한필리핀대사를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다문화가족 음악방송 스튜디오로 초대해 생방송으로 인터뷰할 예정이다. "저도 한국과 필리핀의 교류 역사를 잘 몰랐어요. 10년 전 수교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가 6·25 전쟁 때 필리핀이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에 전투병을 보내준 사실을 알게 됐죠. 그 뒤로도 양국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지금은 한국이 잘살게 돼 필리핀이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수교 7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사가 널리 알려지고 두 나라 국민이 더 가까워지기 바랍니다." 한국인 아빠에게서 버림받은 필리핀 혼혈, 즉 코피노는 감추고 싶은 한국의 치부이자 이대로 두면 양국 우호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제니 김 씨는 현재 21살짜리 코피노와 함께 살고 있다. 다행히 아빠를 찾았고 그가 자신의 딸임을 인정해 한국 국적을 얻었으나 엄마 아빠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코피노는 4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누구도 정확한 숫자를 몰라요. 코피노를 돕는 민간단체들이 있지만 장삿속으로 운영하거나 범죄 수법을 동원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코피노 아빠를 찾아가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하고, 양육비를 받아주면 얼마씩 떼기도 한다는군요. 양국 정부나 공공기관이 나서 아빠를 찾아주고 양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를 낳았으면 당연히 부모가 함께 책임을 져야죠.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한국에서는 이들을 데려와 키우는 게 도움 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 와서 문화가 달라 가장 당황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묻자 "목소리가 커서 놀랐다"고 대답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만 정작 속마음은 따뜻하다는 걸 한참 후에 알았다고 한다. 한국인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을 들려 달라고 하자 "필리핀 사람들은 생활이 어려워도 만족하며 사는데 한국인들은 가진 게 많은데도 좀처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2.22
창업 10년 만에 어엿한 제조업 운영 문수미 대표
인터넷 쇼핑몰로 시작…차별화 품목으로 국내외 시장서 승부 문수미 조이라이프 대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부산=연합뉴스) 김상현 기자 = "시대 흐름에 맞고 차별화된 품목이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인터넷 쇼핑몰 창업 10년 만에 어엿한 산업용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게 된 조이라이프 문수미(30) 대표는 "여성이 제조업을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일단 시작하고 부딪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비결을 털어놓았다. 문 대표는 대학생 때 인터넷 쇼핑몰을 접하면서 '뿌리기만 하면 싹 떨어지는 스티커 제거제' 같은 차별화된 아이템만 있다면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후 시장에서 잘 볼 수 없는 산업용품을 인터넷으로 하나둘씩 판매하다가 대학 1학년을 마친 뒤 조이라이프를 창업했다. 창업 초기 대학생 신분으로 은행 거래를 할 수 없어 거래처에 신용으로 물건을 받기도 했고 쇼핑몰 제작이나 택배발송 등도 직접 하는 등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후 2016년 공장을 매입하면서 본격적인 제조업에 뛰어든다. 온난화로 아열대성 기후가 확산하면서 겨울에도 습기가 남아 실내 곳곳에 곰팡이가 확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습기제거제 시리즈를 개발했다. 업체 처음으로 '로하스(LOHAS)' 친환경 인증을 받아 유해물질이 없고 구슬 형태의 염화칼슘을 사용해 공기 중에 닿는 표면적을 넓혀 습기 제거 속도를 빠르게 하는 등 차별화로 승부를 걸었다. 조이라이프 습기제거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그 결과 지난해 중소기업 판로지원 대상 기업에 선정돼 홈쇼핑에서 2천600세트를 완판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도움으로 베트남 호찌민 롯데마트 2개 점에도 입점해 해외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조이라이프 습기제거제는 현재 국내는 물론 중국 알리바바, 일본 라쿠텐 등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6개 국가에 판매되고 있다. 문 대표는 20일 "올해는 제품 라인업을 보강하고 상품 구성도 다변화해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조이라이프는 현재 습기제거제를 비롯해 제설제, 정제수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제조부터 고객 발송까지 원스톱으로 출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josep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2.20
이희석 울산예총 회장 "복합아트센터 건립 추진"
제19대 회장 당선…예술인 야외 한마당 개최·회원 화합 등 공약 (울산=연합뉴스) 서진발 기자 = "시민 곁으로 찾아가는 문화예술, 예술인 창작활동 지원 등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국예총 울산광역시연합회 제19대 회장에 당선된 이희석(조각가) 씨는 복합아트센터 건립, 예술인 야외 한마당 개최 등 공약 실천 방안을 내놓았다, 그는 또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술 정책이 예술인의 창작 지원은 물론 생업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18일 강조했다. 이희석 신임 울산예총 회장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이희석 신임 울산예총 회장이 18일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2.18 yongtae@yna.co.kr 다음은 이 회장과 일문일답. -- 당선 소감은. ▲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지역 문화예술인과 10개 지회의 대표로서 회원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 주요 공약은. ▲ 울산예총 위상 강화, 예술인의 활발한 창작활동 지원과 환경 조성, 단위 지회의 교류와 화합, 투명한 예총사무처 운영 등이다. -- 창작활동 환경 조성을 위한 구체적 방안은. ▲ 복합아트센터 건립을 위해 울산광역시에 협조를 요청하겠다. 공연장과 전시장, 판매장 등을 갖춘 아트센터를 건립하면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할 수 있고, 시너지 효과도 낼 수 있을 것이다. -- 찾아가는 문화예술 행사 계획은. ▲ 봄이나 초여름 태화강대공원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예술인 야외 한마당'을 개최하려 한다. 과거 소외 가구를 찾아가던 문화예술 행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중단됐다. '국가정원' 지정을 추진하는 태화강대공원서 4∼5일간 축제를 열어 문화예술 장르별로 작품을 전시하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희석 신임 울산예총 회장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이희석 신임 울산예총 회장이 18일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2.18 yongtae@yna.co.kr -- 고질적인 회원 및 지회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나. ▲ 회장으로서 각 지회장을 자주 만나 대화하겠다. 저와 각 지회 간부와 예총 간부 등이 함께 해외 견학을 하면서 토론하고 화합하는 자리를 곧 만들겠다. 이를 위해 제가 경비로 2천만원을 기부할 생각이다. -- 자치단체의 문화예술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 문화예술회관의 전시 공연에서 보듯 주로 '명품' 위주였다. 시민의 수준 높은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지역 작가들도 혜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작가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면서 창작의욕을 고취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가 배려하길 바란다. 이 신임 회장은 울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조소과)을 졸업하고 한국미술협회 울산광역시 지회장, 울산광역시 미술대전 대회장, 16대 울산예총 회장, 제5대 울산광역시 시의원 등을 역임했다. sjb@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2.19
심옥주 "여성독립운동은 한국 어머니들의 역사"
"서훈 기준 완화하고, 품격도 재심사해야" "무명여성독립운동기념탑·여성독립운동연구센터 건립 필요"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서울=연합뉴스) 김은주 논설위원 = "여성독립운동가 연구는 한국 어머니들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함이 제대로 대우를 받을 때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행적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독립운동의 거의 전 부문에 걸쳐 많은 여성이 활약했으나 기록 부족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여성 독립운동의 특수성을 고려해 서훈 기준을 완화하고 품격도 재심사해야 할 부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심 소장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무명여성독립운동기념탑을 세우고, 장기적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 주도의 여성독립운동연구센터를 건립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세계 여성운동가의 선상에서 제대로 재평가해야 하는 시점이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이 아닌가 한다"라며 "국내에만 머물지 말고 해외로 연구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여성들은 독립운동을 어떻게 시작했나. ▲ 의병부터이다. 처음에는 뒷바라지 수준에 머물렀다. 그 틀을 깬 사람이 윤희순이었다. 그는 30여명의 여성 의병 단체를 이끈 의병장이었다. 정보 수집을 하고, 화약을 만들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의병군가,' '병정가' 등 여러 편의 의병 가사를 남겼다. 25년간 의병운동을 했고, 이후 만주로 건너가 15년간 노학당을 꾸려 항일인재를 양성했다. 1907년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처음에는 양반가 여성들이 움직였지만, 민중과 합쳐지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보이지 않게 여성들이 조직화됐다. 여학생들이 이를 지켜봤다. 여학생들은 어머니 세대의 정신을 고스란히 입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여성들의 움직임은 3.1운동을 기점으로 조직화됐다. 서대문형무소에 함께 수감된 여성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을 하면서 나오자마자 단체를 꾸렸다. 일제가 휴교령을 내리자 여학생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민중들이 움직이는 장날 독립선언서를 투척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주로 어떤 방면에서 활약했나. ▲ 독립운동은 크게 의병 활동, 국내 항일, 3.1운동, 문화 운동, 학생운동, 의열투쟁, 중국 활동, 만주 활동, 노령 활동, 광복군 활동, 임시정부 활동, 미주 활동 등으로 분류한다. 각 부문 모두에 여성들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357명의 여성독립운동가가 건국훈장을 받았으나 언론에 이슈화된 분은 극히 일부이다. 새롭게 알려야 한다. 여성독립운동가 인명록을 100명 단위로 만들고 있는데, 다음번에 100명, 또 다음에 100명씩 계속 쓸 수 있도록 발굴되면 좋겠다. -- 그동안 많은 여성이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훈을 받지 못했다. ▲ 여성들의 경우는 독립운동 사실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했다. 그나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많이 소실됐고, 만주, 간도 일대에서는 후손들이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자료를 없앨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정황들도 확인된다. 미주에 가보니 어떻게 신청하는지 몰라서 그냥 들고 있었던 사례도 있었다. '수형 6개월 이상' 등 서훈 기준이 있는데 남녀 구분 없이 그대로 적용했다. 여성들은 기준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활동의 특수성을 참작해 서훈 기준도 다시 마련하고, 품격도 재심사가 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 최근 들어 서훈 기준이 완화됐다. 수형 기록이 없더라도 뭔가 지속해서 독립운동 활동을 했다는 흔적이 있는 경우, 본인의 일기나 기초 자료 등 그나마 확인되는 경우는 재검토하고 있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 원래 백범 김구 선생을 주제로 논문을 쓰다가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을 알게 됐다. 이 부분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매료됐다. '아,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여성독립운동가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바로 현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009년에 윤희순 평전을 냈고, 2011년에 윤희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를 설립했다. ▲ 2009년 3월 1일 문을 열었다. 올해가 꼭 10년이 됐다. 설립 당시만 해도 학계에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역사 연구가 남성 위주, 지도자 위주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어머니의 역사이니까 당연히 누군가가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산대학교 조교수로 있으면서 급여에서 30~40%를 떼서 사무실을 차리고 책 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자료수집이 아예 안 돼 있다 보니, 어설프게나마 현장에도 가야 했다. 주로 방학을 이용해 연구했다. 작년에 부산대를 사직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 유관순의 서훈 관련해서 논란이 있다. ▲ 김구, 이승만, 안창호, 안중근 등 30여명이 받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에 여성이 한 분 있다. 중국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이다. 이들 부부가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록은 많이 확보돼있다. 쑹메이링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며 독립운동가인 권기옥이 다닌 윈난항공학교를 전적으로 후원해 권기옥과도 연결돼 있었다. 쑹메이링이 대한민국장을 받은 것과 비교해볼 때 유관순의 서훈이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에 그친 것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한 등급이라도 격상돼야 하지 않을까. 유관순은 온 국민이 인정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품격부터 바로잡으면서 다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품격도 재정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여성독립운동가 선양과 관련해서 정부에 바라는 것은. ▲ 첫째, 무명여성독립운동 기념탑 건립이다. 특정 인물을 떠나서, 서훈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다 함께 싸웠던 모든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무명여성독립운동기념탑을 100주년에 건립해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했다. 서대문형무소 밖 독립공원을 최적지로 보고 서대문구청과 논의 중이다. 이미 국내외에서 모금이 들어오고 있다. 3월 8일,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여성독립운동가 100인 그림전과 함께 모금 운동을 벌이려고 한다. 국민들의 성금이 모여서 우리 한국 어머니들의 역사를 기릴 수 있는 탑이 하나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또 하나는 전국을 총괄해 여성독립운동을 연구할 수 있는 정부 주도의 여성독립운동연구센터 설립이다. 올해 100주년이라 해서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 차원에서 연구가 계속될 수 있도록 연구센터 건립이 필요하다. -- 지난 10년간 여성독립운동가 연구를 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분은. ▲ 도산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 애국지사이다. 미주에서 대한여자애국단이 조직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혜련 지사가 있었다. 1919년 남편은 상하이로 떠나고 혼자서 세 아이를 키웠다. 독립자금에 보태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오후 6시까지 농장에서 일하고, 재봉틀을 사용해 손수건을 만들어서 한장에 1달러씩 팔았다. 애국단이 조직됐을 때 자신은 수장 자리를 거절했다. 수장을 맡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돈을 벌어 현실적으로 보탬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앞으로 연구 과제는. ▲ 3.1운동 100주년이라 국내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실은 서대문형무소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중국 충칭과 상하이, 만주, 간도에서 움직였던 여성들의 활동 루트, 미주, 하와이에서부터 멕시코로, 쿠바로 넘어간 루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여성독립운동가들을 세계 여성독립운동가, 세계 여성운동가의 선상에서 제대로 재평가해야 하는 시점이 100주년이 아닌가 한다. -- 사회주의 계열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는. ▲ 지난해 8월 '남북한 여성독립운동가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가졌다. 서훈 받은 여성들을 분석해보니 50% 이상 60% 가까이가 북한지역 출신이었다. 이 지역 여성들, 여성단체들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한다. 북한에는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 외에는 여성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거의 묻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이 만든 책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움직임이 제법 파악이 됐다. 계속 추적을 해야 할 것 같다. 인물별로 파고들어 연구하려면 뒷받침이 돼야 하는 것이 만주와 간도 연구이다. 이것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만주와 간도 연구가 받혀준다면 사회주의 계열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러시아 지역의 경우 서훈 받은 분이 김 알렉산드라 한 분인데, 그 외에도 있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연구도 아직 안 되어있다. 할 일이 많다. -- 여성독립운동가 연구의 의미는. ▲ 여성독립운동가 연구는 한국 어머니들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것을 제대로 못 했다. 나는 그러한 연구가 당연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당연함이 제대로 대우를 받을 때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행적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총회 기념사진(1940. 6. 17. 중국 충칭) 2017년 광복절에 6명이 혁명여성동맹 활동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부산대학교에서 2011년 윤희순의 의병 활동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 2013년 동의대학교에서 도산 안창호의 정치철학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대학교 조교수로 일하며 2009년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를 만들었다. 지난해 부산대를 사직했다. 현재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국가보훈처 사료수집 전문위원, 한국보훈학회 지식정보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여성독립운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16년 제15회 유관순상을 받았다. kej@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2.18
첫페이지
이전페이지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다음페이지
마지막페이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