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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재 아중동한인총연합회 회장 4번째 연임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아프리카중동한인회총연합회(이하 아중동총연)는 26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정기총회를 열어 임도재(67) 현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했다. 2012년 회장이 된 이래로 4번째 연임된 그는 2021년까지 3년간 아중동총연을 이끌게 된다. 그는 27일 연합뉴스에 "대륙별 한인총연연합회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단체가 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며 "연합회 운영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국가별 한인회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해 단체의 통일성을 높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2017년부터 아중동총연과 아중동한상총연합회가 공동으로 추진해온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 우물을 퍼주는 '평화의 샘물' 사업도 지속해 펼치고, 올해부터는 말라리아가 만연한 아프리카 동서부 등에 모기장을 후원해주는 사업에 나선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사업하는 한상들이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아중동총연은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을 근 2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10년 전보다 4배 정도 늘어난 규모다. 임 회장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블루오션으로 아프리카가 알려지면서 비즈니스 목적으로 이주하는 한인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며 "아중동한상총연합회와 협력해 한국 청년들의 한상기업 취업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23년 전 SK건설 지사장으로 가나에 건너간 그는 5년 만에 독립해 건설회사인 '글로텍엔지니어리미티드', 수산업체 '해심', 장비 임대·운송업체 '글로텍 로지스틱스'를 운영하며 연간 7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아프리카의 대표적 한상이다. 한편 이날 아프리카중동한상총연합회 총회도 열려 김정배 현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했다. 임도재 아프리카중동한인회총연합회장 [연합뉴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8
"고전 정보 검색은 바다에서 바늘 찾기…DB 필수"
중국서 고전 DB 만든 류쥔원 베이징대 명예교수 류쥔원 베이징대 명예교수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류쥔원(劉俊文) 중국 베이징대 명예교수가 22일 은평구 한국고전번역원 앞에서 중국 고전 DB '중국기본고적고'를 설명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학자로서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검색할 때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때로는 넓은 바다에서 바늘 하나 찾는 것처럼 어려웠죠. 하지만 고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면 1초 만에 원하는 결과 수만 건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민간 고전 데이터베이스(DB)인 '중국기본고적고'(中國基本古籍庫) 편찬을 총괄한 류쥔원(劉俊文) 베이징대 명예교수는 지난 22일 은평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종이에 기록된 전통문화를 디지털로 바꾸는 일은 현대인이 해야 할 임무"라며 고전 DB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류 교수는 번역원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한국고전총간'과 관련해 마련한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한국고전총간은 약 3만 종에 달하는 한국 고전적(古典籍)을 집대성한 뒤 교감(校勘·여러 판본을 비교해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것)과 표점(標點·원문에 문장부호를 찍는 것) 작업을 거쳐 책으로 발간하고 디지털화하는 사업이다. 류 교수는 번역원이 이전에 우리나라 고전 중 문집만을 총정리한 '한국문집총간'에 대해 "의외로 양이 많고 성과를 축적했다"고 평가하면서 "번역원이 우리가 겪은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1년 첫발을 내디딘 중국기본고적고는 지금까지 고전 5만여 종, 80만 권을 디지털화했다. 글자 수로는 100억 자가 넘는다. 현존하는 중국 고전은 10만∼15만 종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글자 입력 작업은 약 300명이 한다. 이들은 헤이룽장성·산둥성·허베이성·안후이성에서 근무하는데, 대부분 고전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고 학력 수준도 높지 않다. 류 교수는 "인쇄본을 빛으로 비추면 자동으로 디지털화하는 광학적 문자 판독장치(OCR)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수작업으로 글자를 입력한다"며 "고전은 책마다 한 줄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다르고, 지금과 형태가 다른 생소한 글자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고전은 주석이나 그림이 있는 경우도 있어서 OCR 정확도가 17∼20%에 불과하다"면서 "수작업으로 글자를 하나하나 입력한 뒤에는 점검 작업을 하는데, 사용자가 잘못된 정보에 대해 수정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류 교수는 민간기관에서 고전 DB를 운영하다 보니 재정적으로 난관에 봉착할 때가 적지 않다면서 "학문은 많은 사람이 누려야 한다는 이념으로 DB를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부 산하 학술연구기관인 번역원이 경제적 상황보다는 인력 수급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류 교수는 "한국고전총간은 교감과 표점 작업을 하기 때문에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을 확보해도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번역원이 대학원을 설립해 고전 디지털화에 필요한 인원을 충분히 육성해야 사업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중국기본고적고나 한국고전총간은 모두 학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8
한국불교 연구한 푸른 눈 신부 "진정한 행복 찾으세요"
의대 나와 사제의 길…서강대서 불교 강의 서명원 신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서명원 신부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예수회공동체관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3.26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캐나다 퀘벡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 뜻에 따라 프랑스 보르도 의대에 다녔다. 의대 졸업 직전인 1979년 예수회에 입회해 수도자 길에 들어섰다. 성철 스님 연구로 프랑스 파리 7-드니디드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2005년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부임해 불교 강의를 해왔다. 본명은 베르나르 세네칼, 법명은 천달(天達)인 서명원(66) 신부가 걸어온 길이다. 그는 지난달 교수 소임을 마치고 퇴임해 경기도 여주에서 수행과 학술 연구, 유기농 농사를 함께 하는 도전돌밭공동체를 이끈다. 개량 한복을 입고 나타난 서 신부는 유창한 한국어로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찾아 신부가 됐고 이제 농사를 짓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2016년 서명원이라는 이름을 호적에 올렸다. 1996년부터 수행할 때 편한 한복을 입었다. 서 신부는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의사를 시키려 했고, 나는 다른 미래를 선택할 수 없었다"며 "그러나 6년간 의대에 다니면서 행복하지 않았고 죽음에 대해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술실과 해부실에서 수많은 죽음을 접한 서 신부는 생로병사의 이치를 고민했고, 수도자가 되면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부모가 정한 의사의 삶에서 벗어났다. 드라마 'SKY 캐슬'이 떠오르는 이야기를 수십년 전 직접 경험한 셈인 그는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문제"라며 "부모들이 자녀에게 기성세대의 패러다임 안에서의 성공을 강요하고 아이들은 진정한 행복의 길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에 대한 자신감을 갖도록 교육이 허락해야 한다"며 "평화와 행복을 주는 게 무엇인지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가 2016년 설립한 도전돌밭공동체는 종교의 벽을 넘어 새로운 문명을 모색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동시에 서 신부가 농부의 꿈을 이루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도 대학교수가, 사제가 왜 농사냐고 하지만 나는 그 일을 할 때 행복하고 많은 것을 배운다"며 "미세먼지와 환경문제만 봐도 지금 우리 문명은 멸망하는 중이며, 지금까지 살아온 식으로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종교와 관계없이 공동체에 모인 약 50명의 회원은 기도와 명상, 공부, 농사를 함께한다. 쌀을 제외하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들깨 등 약 20가지를 재배해 약 80% 야채는 자급자족한다. 되도록 이산화탄소 배출을 피하고 기계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서 신부는 "간단히 말하면 올바른 가치관대로 살려는 사람들이 모여 사람답게 살면서 수행의 길 끝까지 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학생 시절인 1985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돼 다종교 문화권의 존재를 접했고, 1988년 불교를 전공으로 택해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최근에도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인 성철 스님을 조명한 글을 묶은 책 '산은 산 물은 물'을 펴내는 등 오랜 세월 한국불교를 연구했다. 그는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頓悟漸修·단박에 깨닫고 점차 닦음)에 맞서 돈오돈수(頓悟頓修·단박에 깨닫고 단박에 닦음)를 주장한 성철 스님의 이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서 신부는 "돈오돈수는 수사법과 같은 것이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학자로서 연구한 결과일 뿐 성철 스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성철 스님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불교가 몸에 밴 예수쟁이'라는 그는 신도가 감소하고 각종 추문으로 신뢰가 추락하며 종교가 위기를 맞는 시대에 종교계가 이웃 종교와 대화하고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신부는 "기존 제도권 종교계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진정으로 위기를 극복할 뜻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종교든 정치든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doubl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7
한문고전 번역 박사 취득한 전 광주시 서기관
이병혁씨 "드넓은 고전번역의 세계, 이제 시작…고전의 현대화 작업 힘쓸 터" 한문고전번역 박사학위 딴 이병혁씨. [광주시 제공] (광주=연합뉴스) 김재선 기자 = 40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친 퇴직 공무원이 한문 고전번역 과정 박사학위로 인생 2막을 열었다. 주인공은 2016년 서기관을 끝으로 광주시에서 퇴직한 이병혁(65) 씨. 이씨는 지난달 2018학년도 전남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역주 남파집(南坡集)'이다. 남파집은 이씨의 인천 이씨 5대조 남파 이희석(1804∼1889) 선생의 문집으로 8책 3권으로 구성됐다. 이씨는 이 중 일부를 번역해 논문으로 제출했다. 남파 선생은 장흥 출신으로 호남 성리학의 거두 노사 기정진으로부터 학문을 익혀 노사학단의 주요 인물로 활동한 조선 후기 학자다. 장성과 장흥을 중심으로 후학을 양성하며 금강산 기행문인 '원유록' 등 많은 시문을 남긴 향토 유학자다. 이희석은 장성에 사는 노사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해 거주지를 장흥에서 장성으로 옮길 정도로 돈독한 인간관계를 이뤄 노사학파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했다. 남파집은 이희석이 세상을 뜬 뒤 9년이 지난 1898년에 그의 손자인 이선원에 의해 목활자본으로 간행된 유고집이다. 이 박사는 이번 논문에서 그동안 묻혀 있던 남파의 행적과 그가 남긴 다양한 글들을 정리하고 번역했다. 이 박사는 특히 2015년 취득한 석사학위 논문에서도 7대조인 지지재 이상계 선생의 유고문집인 '지지재유고'를 번역했고,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는 석사와 박사 논문을 통해 드물게 '시문 번역'에 조예가 깊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부친 대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이 유학자의 길을 걸었던 탓에 집안 자제들을 위한 글방에서 7살 때부터 글자를 익혔고 학교 교육을 받기 전 명심보감까지 독파했다. 그동안 마음속에 있던 빚을 덜어낸 느낌이라는 이씨는 "선조들이 남긴 훌륭한 글들이 번역되지 않아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부족하나마 석박사 논문을 통해 그분들의 글을 번역해 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공직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생각을 놓지 않았던 게 오늘에 이른 것 같다"며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지역 선조들의 업적을 번역해 세상에 내놓는 일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퇴직 3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해 인생 2막을 화려하게 시작한 이 박사는 큰 포부도 밝혔다. 그는 "조그만 연구공간을 마련해 학문 동료들과 함께 지역에 흩어져 있는 고전번역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아직 공부를 더 해야 하지만 동시에 고전의 현대화 작업, 독자적인 한문 고전번역의 틀을 만드는 데에도 힘을 쏟아 낙후한 호남학 진흥에도 일조하고 후학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kjsu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7
박창일 신부 "남북 민간교류의 끈 끊어지면 안돼"
"남북·북미관계가 위기일 때 오히려 민간이 나서야" "北천주교 신자들 눈빛에서 신앙인의 진정성 느껴져" ㈔평화3000 운영위원장 박창일 신부 (서울=연합뉴스) 전성옥 논설주간 =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민간교류의 생태계가 거의 모두 파괴됐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어도 남북교류가 기대한 것보다 활성화하지 않은 것은 그 탓이 큽니다. 민간교류의 끈은 어떤 상황에서도 끊어져서는 안 됩니다." ㈔평화3000 운영위원장인 박창일 신부는 "남북관계가 갈등과 위기로 치닫는 과정에서 북한의 대남협력사업에 종사했던 경험 많은 일꾼들이 다른 일터로 자리를 옮겨갔다"며 "남측의 민간단체들이 여러 가지 협력사업을 제안해도 인력 부족 탓에 북측에서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평화3000은 '나눔·평화·화해'라는 기치 아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과 지구촌 이웃들을 도우려고 2003년 11월 결성된 민간단체다. 평화3000은 창립 후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박 신부는 천주교 사제 가운데 가장 많이 북한을 방문했으며 평양의 장충성당에서 100차례 가까이 미사를 집전했다. -- 남북관계가 너무 비핵화 문제에 묻혀 있다는 지적이 많다. ▲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를 맞았지만 기대한 것만큼 남북 간 민간교류가 활성화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주도한 탓이지만 딱히 그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부 관계자들도 남북관계의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북한의 핵 폐기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있으니까 민간에 대해 '좀 천천히 가 달라'고 얘기한다. 남북관계를 해칠 수 있는 돌발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남북 민간교류는 정치적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지속해서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남북이나 북미 관계가 위기일 때 오히려 민간이 나서야 한다. 특히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교류의 끈은 결코 끊겨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더 존중해줘야 한다.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지속가능한 교류협력사업을 펼칠 수 있다. -- 교류 당사자인 북한은 어떤가 ▲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민간교류의 생태계가 거의 모두 파괴됐다. 이 과정에서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에 몸담았던 경험 많던 일꾼들이 다른 일터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민화협은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통일선전부 산하 기구다. 젊은 층도 민화협에서 일하는 것을 이전처럼 선호하지 않아 새로운 일꾼들이 유입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남측의 민간단체가 여러 가지 협력사업을 제안해도 북측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북측의 인력 부족 탓이 크다. 근본적으로는 북한도 변해야 한다. 새로운 남북관계에 맞춰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남에서는 수많은 민간단체가 남북협력사업에 나서지만, 북에서는 민화협이란 단일 창구만 있다. 그러다 보니 효율성도 떨어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가 내실 있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민화협도 남북의 전문단체와 기구끼리 직접 접촉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혀줘야 한다. -- 대북지원이나 협력사업의 또 다른 어려운 점이라면. ▲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제재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 등에 대해 가하는 제재)이 큰 장애다. 밀가루, 식용유 등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 품목이나 비닐, 비료 등 영농자재는 대북제재 품목이 아니다. 평화3000의 경우 이런 물품을 중국에서 사들여 북한으로 보낸다. 그런데 국내 은행이 중국은행으로 송금을 안 해주려고 한다. 자칫 세컨더리 보이콧에 저촉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 품목은 육로를 통해 북한에 직접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물품을 보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 중국 우회로를 버릴 때가 됐다. 남북한 당국이 협력해서 물품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야 한다. -- 북한의 천주교는. ▲ '평양의 장충성당은 선전용이 아니냐', '북한의 천주교 신자들은 진정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그동안 많이 받았다. 장충성당은 1988년 10월에 세워졌다. 북한 내 유일한 성당이다. 교황청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장익 신부가 이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 내가 처음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올린 때는 2000년 1월이다. 이때 북한의 천주교 등록 신자는 3천 명이고, 장충성당에 나오는 신자는 100여 명가량이라고 들었다. 지금은 신자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2000년 7월에 수녀 한 분을 모시고 장충성당을 방문했다. 그때의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이 든 장충성당 신자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수녀의 팔을 잡고 발을 동동 구르더라. 6·25가 발발하기 전 어릴 때 보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수녀를 본 감동이 컸었던 것 같다. 그 눈빛을 본다면 어떤 주교, 신부, 수녀가 이들이 신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당의 지시에 따라 일요일만 성당에 와서 신자 행세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은 6·25전에 성당에 다녔던 신자들이다. 세례받은 이도 많다. --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활동은. ▲ 신부가 되려면 교회법이 정한 공부를 해야 하고 공동생활도 해야 한다. 그래야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있다. 북에는 신학교도, 신부도 없다. 장충성당은 평신도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다. 미사는 크게 '말씀의 전례(典禮)'와 '성찬의 전례'로 나뉜다. 성찬의 전례는 신부만이 집전할 수 있다. 장충성당 신자들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평신도들이 모여 '말씀의 전례'만 올린다. 북한 신자뿐 아니라 평양에 머무는 유엔기구나. 비정부기구(NGO), 외교관과 가족 등 외국인 천주교 신자들도 참석한다. 장충성당은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 신자들의 모임인 '공소(公所)'라고 할 수 있다. -- 교황의 방북 전망은. ▲ 교황님은 북한을 방문하시기를 원한다. 뜻은 확고하시지만, 북미 간 비핵화 회담이 꼬이면서 교황님의 방북이 불투명해진 측면이 있다.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관계가 풀리면 교황께서 분명히 방북하실 것이다. 시기와 여건이 문제다. -- 평화3000이란 단체명이 독특하다. ▲ 나눔·평화·화해를 추구하는 우리 단체의 정체성을 담았다. '하루에 100원씩 한 달에 3,000원을 평화기금으로 나누자'는 나눔, '기원후 3000년, 새로운 미래 3000년의 평화를 지향한다'는 평화, '한반도 3,000리에 화해의 씨앗을 심자'는 화해가 이름 속에 있다. 북녘 동포뿐 아니라 지구촌의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다. 뜻을 같이하는 사제들이 중심이 되어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를 일구고자 2003년 11월에 만들었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목사·스님도 있다. 평화3000은 남북관계가 악화해 긴장과 갈등이 고조될 때도 대북지원 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해외동포단체나 국제기구, 국제 NGO 등을 통해 밀가루, 옥수수 등 식량과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긴급구호품을 지원했다.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이밖에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에서 교량, 주택, 학교 건립 등 개발 구호사업을 펼치고 있다. ※ ㈔평화3000 운영위원장인 박창일 신부(59. 예수성심전교회 소속)는 광주가톨릭대학 3학년 때 5·18을 겪었다. 고민과 방황을 많이 하는 동안 '5·18 비극'의 뿌리는 분단에 있다고 판단, 남북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됐다. 1991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94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통일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북녘 동포 돕기 운동에 나섰다. sungo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6
"피란수도 부산 전쟁 유산, 특이한 사례" 김기수 석당박물관장
"유네스코 세계유산 정식 등재 위해 최선 다할 터" "유산 의미 입증 자료·실태조사 중요…국민이 가치 인정해야" 김기수 석당박물관장 [동아대 제공]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부산은 1950년 6·25전쟁 때 1천23일 동안 서울을 대신해 임시수도였다. 현재 부산 서구에 있는 동아대 석당박물관은 당시 전국에서 피란민들이 몰려온 부산 임시수도에서 정부청사로 사용됐다. 지난 2월 석당박물관장에 취임한 김기수 관장은 "석당박물관은 '피란수도 부산'에서 핵심 시설이다"며 "피란수도 부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2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유네스코 유산으로 정식으로 등재가 된다면 국제기구에서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되고 세계적인 인지도와 유산가치를 인정받게 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임시중앙청(현 동아대 석당박물관), 경무대(현 임시수도기념관), 국립중앙관상대(현 부산기상관측소), 미국대사관 미국공보원(현 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 기지(현 부산시민공원), 유엔지상군사령부(현 부경대 워커하우스), 유엔묘지(현 유엔공원) 등 8곳이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됐다. 임시중앙청사 (현 동아대 석당박물관) [부산관광공사 제공] 동아대 건축공학과 출신인 김 관장은 일본 교토공예섬유대학에서 건축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동아대 석당박물관장을 맡았다. 다음은 김 관장과 일문일답. -- 박물관장 취임 소감은. ▲ 동아대 석당박물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 박물관이다. 개인적으로 영광이고 책임감을 느낀다. 석당박물관은 '피란수도 부산'에서 핵심 시설이다. 피란수도 부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시민에게 친근한 박물관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석당박물관은 어떤 곳인가. ▲ 동아대 석당박물관은 1959년 11월 1일 부울경지역 최초로 개관한 박물관으로 올해로 개관 60주년을 맞이한다. 1950년대 유실되고 밀반출되는 우리 문화재를 지켜야겠다는 각오로 설립자인 정재환 박사가 우리 문화재를 입수해 학교에 기증했다. 학교 구성원의 노력이 모여 국보와 보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는 부산 최고 박물관으로 성장했다. 올해는 석당박물관이 개관 60주년이면서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이전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 피란수도 시절 유산 8곳이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됐다. 어떤 의미가 있나. 경무대(현 임시수도기념관) [부산관광공사 제공] ▲ 피란수도 부산 유산이 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되고 지원도 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만약 유네스코 유산으로 정식으로 등재가 된다면 국제기구에서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되고 세계적인 인지도와 유산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시민이 자긍심을 갖고 도시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현대 사회는 도시 이미지 혹은 브랜드가 경쟁력이 되기 때문에 도시 정체성 회복이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점점 잃어가는 부산의 자존심을 다시 세울 기회가 될 것이다. -- 유네스코 정식 등재를 위해 남은 과정은. ▲ 세계유산 잠재목록으로 등재되었지만, 아직 몇 가지 과제가 남아있다. 최근 근대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있지만, 피란수도 부산 유산과 같은 전쟁 유산은 매우 특이한 사례다. 이는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 될 수 있기에 향후 유산 성격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 대부분은 도심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존대책과 유지관리 계획을 세우는 것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부산근대역사관 전경 [부산관광공사 제공] ▲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피란 당시에 건립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사용되어 온 시설을 대부분 전용해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면 원래 기능으로 돌아가 피란시절 역사적 사실과 별도 용도로 사용됨에 따라 그 특성을 잃어버리기 쉬운 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서 정의하는 완전성, 혹은 진정성과는 다른 관점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잃어버리기 쉬운 전쟁의 아픔과 기억을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지켜왔는가? 이는 단순히 건물 형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유산에 남아있는 1천23일 동안 기억과 의미를 어떻게 후대에 전달하고 있느냐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향후 이 유산이 가진 특성과 성격규명으로 학술적인 공감대를 넓혀가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피란수도 부산 유산이 갖는 의미를 입증하기 위한 구체적인 자료와 실태조사가 중요하다. 보존과 관리를 위한 정비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워서 개발과 유적보존이라는 보완적 방법에 대한 연구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 피란수도 관련 문화재를 비롯해 부산지역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방안은. 피란시절 유엔지상군사령부(현 부경대 워커하우스) [부산관광공사 제공] ▲ 피란수도 부산 유산을 보존하고 유지관리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미 서양 선진도시에서는 유산을 특별한 대상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부여하고 활용하는 방향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역사문화 환경보전을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동시에 이를 활용해 즐길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한다. 부산도 피란수도 유산이 갖는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이들 유산이 가져다줄 수 있는 사회, 문화, 경제, 환경적 차원의 효과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더는 유산이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아니라 긍정적인 결과로 유도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 문화유산, 역사유산은 입장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하지만, 상대에게는 치욕적인 유산도 많이 있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국민이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유산으로서 의미는 없다. 무엇보다 해당 지역 주민이 이 가치를 이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때 세계유산으로 등재도 가능하다. 부산시민과 함께 피란수도 부산 유산들이 갖는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 임시수도 정부청사였던 석당박물관도 함께 이러한 활동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cc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6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국의 나무가 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설립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시민권자는 서재필이다. 1884년 갑신정변에 실패해 일본을 거쳐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으로 개명하고 1890년 6월 10일 시민권을 얻었다. 그러면 한국으로 귀화한 미국인 1호는 누구일까. 미군 장교 출신의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는 민병갈이란 이름으로 1979년 서양인 최초로 한국 국적자가 됐다. 올해는 그의 귀화 40주년이기도 하다. 그는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란 별명을 갖고 있다. 2000년 국제수목학회는 그가 가꾼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선정했다. "내가 죽으면 무덤을 쓰지 말고 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으라"는 유언을 남겼을 만큼 나무를 사랑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고아 4명을 입양해 키웠고, 한식과 한복을 즐겼다. 손자를 안고 며느리가 준비하는 식사를 기다리는 민병갈.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버크넬대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해군정보학교에서 일본어 과정을 이수하고 1945년 6월 일본 오키나와에 배치돼 일본군 포로와 종군위안부를 직접 신문했다. 광복과 함께 38선 이남을 관할한 미국 군정청에 부임했다가 한국의 인심과 풍광에 이끌려 한국 근무를 자원했다. 미국의 경제협조처(ECA)와 국제협력처(AID)에 근무한 인연으로 1953년 한국은행 상근고문으로 초빙돼 눌러앉았다. 민병갈은 미 군정청에서 만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을 친아버지처럼 따랐다. 군에서 전역할 때 유일한의 권유로 가진 돈을 몽땅 유한양행 주식에 투자해 목돈을 모았고, 이를 종잣돈 삼아 주식 투자로 번 돈을 수목원에 쏟아부었다. 한국은행 시절 민병도 총재와 형제처럼 지냈는데, 그의 성과 돌림자를 따 한국 이름을 지었다. 민병도도 퇴임 후 민병갈의 도움을 얻어 강원도 춘천의 남이섬 가꾸기에 매달렸다. 2018년 유색 벼를 심어 피아노 건반 모양을 연출한 천리포수목원의 논 모습. [천리포수목원 제공] 민병갈이 수목원 조성에 나선 계기는 생뚱맞아 보인다. 여름 휴가 때면 태안의 만리포 해수욕장을 즐겨 찾았는데, 1962년 인근 천리포에 들렀다가 딸의 혼수 비용이 필요하니 바닷가 야산을 사 달라는 마을 노인의 부탁을 받고 2만㎡(약 6천 평)의 땅을 사들인 게 시작이었다.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못해 도우려고 한 일이었다. 소문을 들은 주민들이 내 땅도 사 달라고 졸라대자 차례로 매입한 뒤 1970년 수목원 공사에 나섰다. 그는 금요일 오후만 되면 천리포에 내려와 월요일 새벽 서울로 다시 출근할 때까지 나무를 심고 숲을 돌봤다. 57만9천281㎡(약 17만5천 평)의 수목원 구석구석을 돌며 삽과 호미질을 했고, 식물도감을 뒤져 나무와 풀의 학명을 모두 외웠다. 해마다 미국 나무 경매장에도 한두 차례씩 들러 신품종 묘목과 종자를 사들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3월 11일 청와대에서 민병갈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병갈은 자식처럼 키운 나무에 상처를 줄 수 없다며 인위적으로 나무를 보기 좋게 다듬는 것을 싫어했다. 수목원 직원들은 "나무를 지켜만 주고 주인 노릇을 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고 한다. 농약과 기계를 쓰지 않는 것도 특징이고, 철저한 기록과 관리로 정평이 났다. 1982년 완도호랑가시나무를 발견해 국제학회에 등록하는가 하면 새로운 목련 품종을 잇따라 개발하는 등 학문적 성과도 적지 않다. 이 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1974년 산림청장 감사패, 1989년 영국왕립원예협회 공로메달, 1992년 국제목련학회 공로패, 1996년 환경부장관상, 1999년 한미우호상, 2000년 국제수목학회 공로패와 미국호랑가시나무학회 공로패 등을 받은 데 이어 2002년 금탑산업훈장의 영예를 안았다. 경기도 포천 광릉의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도 박정희·현신규·임종국·김이만에 이어 2005년 5번째로 헌액됐다. 포천 광릉의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된 민병갈의 흉상 부조.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2002년 4월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유족과 천리포수목원 임직원들은 차마 유언을 따를 수 없어 완도호랑가시나무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가 10주기인 2012년 유골을 수습해 뼛가루를 고인이 아끼던 태산목(목련과 나무의 한 종류) '리틀젬'(Little Gem) 아래 수목장으로 안치했다. 묘터에는 작은 표지석을 설치했다. 그의 뒤를 이어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현 한솔섬유 대표)과 이은복 한서대 생물학과 교수(현 생명과학과 명예교수)가 차례로 이사장을 맡았다. 환경부는 2006년 천리포수목원을 멸종 위기종인 가시연꽃·노랑무늬붓꽃·망개나무·매화마름·미선나무의 보전기관으로 지정했다.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의 흉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초의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은 2009년 이전에는 사전 허락을 받은 식물연구자나 후원회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금단의 비밀정원'이었다. 그러나 2007년 12월 기름 유출 사고로 피해를 본 태안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 일반인에게도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겠다며 2009년 개방을 결정했다. 민병갈의 별세 후 가중된 재정 위기에 숨통을 트려는 의도도 있던 것으로 풀이된다. 오는 4월 1일은 일반 개방 10주년 기념일이다. 밀러가든·에코힐링센터·큰골·남새섬·목련원·침엽수원·종합원 7개 구역으로 나뉘는 천리포수목원에는 목련 700여 종, 호랑가시나무 600여 종, 동백나무 500여 종, 무궁화 300여 종, 단풍나무 250여 종 등 1만6천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종수로는 국내 최다이고 광릉 국립수목원의 갑절을 넘는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은 6만5천623㎡(약 2만 평) 규모의 밀러가든과 에코힐링센터 등 일부 지역이다. 민병갈의 일대기와 유품을 전시해놓은 민병갈기념관과 밀러가든 갤러리도 들어서 있다. 지난 20일 천리포수목원을 찾은 상춘객들이 영춘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요즘 천리포수목원에는 봄을 맞이한다는 이름의 영춘화(迎春花)가 활짝 피어 상춘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민병갈의 기일인 4월 8일 전후로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했던 목련이 소담스러운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깃든 목련꽃을 감상하며 아름다움과 향기에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민병갈의 한국 사랑과 나무 사랑을 한 번쯤 떠올리기 바란다. (한민족센터 고문)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국의 나무가 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 8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6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제작극장 역량 강화하겠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새 사장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신임사장은 22일 "제작 극장으로서의 역량을 제고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유 신임사장은 이날 임명 직후 연합뉴스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 "평생 해온 것이 기획과 제작"이라며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 수가 감소하는 등 클래식 관련 장르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예술의전당이 대관 등에만 집중한다는 이유로 '임대업자'란 이야기도 듣는 것으로 안다"며 "어쨌든 극장은 자체 레퍼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의전당 상주단체인 국립 예술단체들과의 협력 강화도 모색할 계획이다. 그는 "세금이 투입되는 국립 예술단체와 예술의전당이 서로 협력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예산과 관련해서도 정부만 바라볼 게 아니라 직접 발로 뛰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문화예술 및 문화산업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극단 연우무대 사무국장, 청강문화산업대학 뮤지컬스쿨 교수, 군장대학 뮤지컬보컬방송연기계열,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장 등을 역임했다. 다만 공연 쪽보다는 영화 관련 전문성이 높다는 평도 나온다. 그는 영화 '결혼 이야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목포는 항구다' 등 20여편을 제작한 한국영화 '프로듀서 1세대'로 유명하다.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사무국 국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사업국 국장 등을 거친 이른바 '문화 운동권' 인물로도 분류된다. 그는 이와 관련해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서는 좌우가 따로 없다고 늘 말했다"며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결과가 모든 걸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sj997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2
"낙후된 어번 보면 피눈물 나… 자식 위하는 엄마 마음으로"
호주 NSW주 총선 유일 한국계 지역구 후보 출마자 크리스티나 강 (시드니=연합뉴스) 정동철 통신원 = "어느 섬에서 왔냐고 묻는 사람도 있더군요." 23일 치러질 호주 뉴사우스웨일즈(NSW)주 총선에서 한국계로는 유일하게 집권 자유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크리스티나 강(한국명 강경희) 후보는 백인들을 대상으로 한 선거 운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아시아계 후보라고 호주 난민수용소가 있는 마누스섬이나 나우루섬 출신이냐고 비꼬는 백인 할아버지가 있었다"면서 "소수민족 출신 정치인이 품고 가야만 하는 아픔이 있다"고 말했다. 어번 사전 투표소에서 크리스티나 강 후보 (시드니=연합뉴스) 정동철 통신원 강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어번(Auburn) 지역은 지난 90년간 야당인 노동당의 아성으로 알려진 곳이다. 왜 이런 험지를 택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떤 분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하지만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이민자 유입으로 유권자 구성이 변했고 실제로 직전 선거에서 노동당 우세가 급속히 감소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사전 투표하러 온 유권자에게 정책을 설명하는 크리스티나 강 (시드니=연합뉴스) 정동철 통신원 크리스티나 강 후보는 31년 전 시드니 대학 방사선 학과로 유학을 와서 4년가량 병원에서 일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 신문 잡지 판매점과 주류판매점 등을 운영하는 한편 자산 투자자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투자 활동뿐 아니라 전 재호한인상공인연합회 강흥원 회장 사이에서 4자녀를 낳아 기른 '억척 엄마'이기도 하다. 학교와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정치에 대해 꿈을 갖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양대 정당 중 하필이면 자유당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강 후보는 "노동당이 표방하는 '반차별과 평등'보다 자유당이 추구하는 '발전하는 공정한 호주'라는 가치가 더 마음에 다가왔다"면서 "백인이 절대다수인 자유당이 아시아 이민자 1세대 여성에게 공천을 준 건만 봐도 그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티나 강 후보의 선거 포스터 (시드니=연합뉴스) 정동철 통신원 강 후보는 "필립 러독 NSW주 자유당 의장과 여러 고위 여성 당직자들이 저보고 이민자 1세대 여성들의 롤모델이라면서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바람에 고민하다가 출마를 결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인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어번 지역의 낙후된 모습을 보면 피눈물이 난다"면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면 자식을 위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지역발전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dcj@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2
웰컴저축은행 대표 "파격 할인 접목한 페이서비스 5월 출시"
김대웅 대표 취임 2주년 인터뷰…"서비스도 사풍도 디지털 방식으로"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웰컴저축은행이 오는 5월 강력한 제휴업체 할인을 적용한 간편결제(페이) 서비스를 출시한다. 김대웅 웰컴저축은행 대표는 21일 연합뉴스와 단독 인터뷰에서 "웰컴저축은행 페이를 사용하면 더 높은 할인율을 제공하거나 '1+1' 상품을 증정하는 식의 파격적인 혜택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페이 사업은 저축은행 보통예금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주거래고객 확대로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반이 된다"며 "5월 초에 1단계 페이 서비스를 출시하고, 다음 단계에서는 더 완성된 모습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웰컴저축은행 김대웅 대표 [웰컴저축은행 제공=연합뉴스] 웰컴저축은행은 페이 서비스를 서울시 제로페이와 연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음 달로 취임 2주년을 맞는 김 대표는 2017년 취임 직후 웰컴저축은행의 디지털화에 힘써왔다. 이어 1년 만인 작년 4월 모바일 뱅킹 서비스인 '웰컴디지털뱅크'(웰뱅)를 출시했다. 현재 웰뱅은 이체수수료 전면 무료, 전 계좌 통합조회, 신용정보조회, 자동입출금기(ATM) 출금 수수료 면제 등 인터넷전문은행과 비등한 혜택을 제공한다. 웰뱅은 출시 11개월 만인 이달 14일 내려받기 50만건을 돌파했다. 누적 거래금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저축은행 업계에서 고무적인 실적이지만 김 대표는 "100만 다운로드, 거래액 2조∼3조원이 돼야 만족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수신고객이 여신고객이기도 한 시중은행과 달리 저축은행은 수신·여신고객이 대체로 분리돼 있다"며 "수신고객에게는 적금 상품 화면을 먼저, 여신고객에게는 대출 관련 화면을 먼저 제공하는 개인화 서비스를 만들고 사용자 이용환경·경험(UI·UX)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 취임 이후 웰컴저축은행의 지점거래 비중 대 모바일 거래 비중은 8대 2에서 2대 8로 뒤집혔다. 웰컴저축은행 '웰뱅' [웰컴저축은행 제공] 웰컴저축은행은 사내에 정보기술(IT) 운용인력과 별도로 디지털 기획과 기술접목을 고민하는 20명 규모 '디지털본부'를 두고 있다. 매주 금요일 아침에는 모든 직원에게 유튜브 현황, 전자전시회 CES 탐방 후기, 디지털금융 강화 방안 등을 공유하는 강좌를 연다. 김 대표는 "이제는 저축은행 고객도 디지털에 있기에 관련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 당연하고, 회사 내부 절차도 효율이 높은 디지털 기술을 빨리 채택해야 한다"며 "앞으로 서비스도, 사풍도 디지털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웰컴저축은행은 작년에는 해외송금 사업 진출도 시도했다. 그러나 작년 규제 개선안에서 기존 은행과 해외송금 업체 외에 카드사와 증권사만 해외송금 서비스가 허용돼 결국 시장 진입에 실패했다. 김 대표는 "웰뱅 플랫폼에 해외송금 업체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해외송금 서비스를 간접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외에도 웰컴저축은행이 발굴한 스타트업 기업의 생활 관련 서비스를 웰뱅에 탑재해 고객들이 앱에서 '오랫동안 놀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산과 관련해서는 "현재 신용대출 비중이 높은 편인데, 기업대출과 부동산 담보대출 비중을 높여 안정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hye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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