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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9주는 비극이었지만, 멀리서 본 9주는 희극이었다.
기업명
메가스태프
국가
담당업무
사무 및 운전
작성자
장필구
기수
상시
작성일
2020.12.08

[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뤄준 한상]

한 번쯤 생각은 했었다. 유럽에서 유럽 사람들 속에서 댄디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하며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멋지지 않은가. 나만의 낭만이었다. 하지만 실현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한상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폴란드에 위치한 메가스태프에게 합격 통지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마냥 신나고 설레었다. 4박 5일간 사전교육을 받은 후에는 폴란드로 얼른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의 마음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떠나는 날이 한 달이 남았을 때부터였다. 설레는 마음보다 조금의 우려가 생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지역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대한 왠지 모를 염려와 한국 생활에 대해 아쉬움이 원인이었다. 마냥 설레기만 할 줄만 알았던 준비 기간은 불안과 염려 그리고 긴장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인턴이 끝났을 때 나의 달라진 모습만은 생생히 그려졌다.


[Megastaff가 폴란드에서 하는 일]  

Megastaff는 폴란드의 브로츠와프라는 도시에서 인력 용역, 거주증 및 노동 허가 발급을 서비스해 주는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이다. 폴란드는 EU 가입국으로서 폴란드인들이 상대적으로 시급이 높은 독일이나 영국으로 이주하여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고, 그 결과로 자국 내에서는 단순 노동직 및 전문기술직의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Megastaff는 우크라이나, 조지아, 네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그 나라 에이전시와 협의하여 근로자들을 채용하여 노동력이 필요한 거래처에 파견하여 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무실 사진

< 사무실 분위기 / 회의하는 모습 / 사무실 사진 >


[양보다는 질, 바로 내가 선택한 길]

내가 Megastaff에서 맡은 주요 업무는 크게 보면 근로자 관리 및 근로자 관리에 따른 비용 정산 관리이다.

근로자 관리는 근로자가 폴란드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이 도착하는 공항으로 미니버스를 몰아 직접 픽업하는 것부터 그들의 모든 행정적인 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완성을 시키도록 하고, 근로자들이 일할 동안 묵을 숙소로 데려다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근로자 관리에 따른 비용정산은 근로자들의 근로투입을 위해 필요한 직간접적인 비용의 모든 정산서의 관리이다.


LG 공장지대 안 건설 현장

< LG 공장지대 안 건설 현장 >


지금의 나는 5줄로 나의 업무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턴으로서 처음 출근하고 2주간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나의 업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나의 업무뿐만 아니라 회사 전반적인 업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바보였다. 나는 28년간 학교, 군대, 알바 등 사회생활을 하며 쌓아온 나의 눈칫밥이 쓸 만하다고 생각했다. 인턴으로서 폴란드라는 실전에 뛰어들기 전 많은 계획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어떠한 자세로 업무에 임할지, 동료들을 대할지, 대표를 대할지 그런 계획들 말이다. 권투의 황제 마이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구나 쓸 만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한 대 맞기 전까지.” 그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환경 특히 언어의 장벽 앞에서 나의 계획은 쓸 만하지 못한 계획으로 변질하였다. 회사 내에 외국인들은 한국인들과 소통할 때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그들끼리 있을 때는 폴란드어, 러시아를 섞어가며 의사소통을 하니 나의 눈칫밥은 쓸모가 없어졌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생존 방법은 질보다는 양이었다. Megastaff의 공식적인 출퇴근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였지만, 최소 오후 8시가 되어서 퇴근을 하곤 했었다. 오전 9시부터 오전회의가 시작되고 10시에 회의를 마무리 짓는다. 각자 자신의 업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리 후 오후 3시 반부터 4시까지 오후회의로 하루의 업무 일정이 마무리된다. 2주까지는 오전 회의가 끝이 나면 직원들을 따라다니며 업무를 파악했다. 물론 나는 파악하고 싶었지만, 나의 뇌는 파악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 주가 끝나고 회사 전반적인 업무가 아주 대충 이해가 될 즘, 독단적인 나의 업무를 받았다. 나의 질보다 양이라는 생존 방법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이다. 전반적으로 파악이 되지 않았으니 길게 늘어지고 보자는 식이었다.


[늘어나는 나의 업무와 늘어나는 나의 입지]

나의 첫 단독적인 업무는 베를린공항으로 가 필리핀 근로자 5명을 픽업해오는 것이었다. 왕복 8시간이 걸리는 베를린행 운행은 나를 설레게도 긴장되게도 만들었다. 유럽의 나라들을 넘나들며 일을 하는 내 모습이 어쩐지 뿌듯하고 멋있게 느껴졌다. 거기에 운전은 자신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초행길이라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무사히 운행을 마칠 수 있었다. 회사 내에서 나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던 나의 첫 업무이자 임무였다.

그 이후에도 바르샤바 공항(이번에도 역시 왕복 8시간 코스, 새벽 2시에 출발하여 오후 4시에 회사 도착^^;)에서 인도네시아 20명을 픽업하는 업무를 수행했고, 외에도 근로자 숙소 이동 등 운전업무도 나의 업무 중 하나가 되었다.


필리핀5명 픽업 / 인도네시아 근로자들

< 필리핀5명 픽업 / 인도네시아 근로자들 > 


이후의 단독적인 업무가 하나씩 늘어갔다. 근로자에 관한 행정법 서류를 관리하고 엑셀파일로 정리하는 업무, 투입을 위한 비용들을 엑셀파일로 정리하고 그에 관련된 문서를 관리하고 정리하는 업무 또한 회사 차량 수리비 인보이스 관리였다.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상황(한국인 직원 2명이 근무경력이 아직 6~7개월밖에 되지 않았음.)에서 폴란드 현지인 또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물어봐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고,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글번역기를 통해 폴란드어,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의사소통하려 노력했다. 그것도 부족하면, 직접 카센터로 찾아가서 설명을 듣기도 하였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무엇이든지 막히는 느낌을 받으며 위축되는 적도 많았지만 끈질기게 부딪혀보니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근로자들이 폴란드에 와서 일을 하기 위해서 작성해야 할 서류가 14가지이다. 은행 계좌개설을 위한 서류, PESEL 신청을 위한 서류, 연금 관련 서류, 워크퍼밋 등을 위한 행정절차를 위한 11가지 서류가 그것이다. 이 외에도 회사는 근로자들의 정보가 필요하다. 비자기한, 여권사본 및 자격증사본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을 한 명의 근로자에게 받아내야 할 서류이자 정보이다. 이 모든 정보를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엑셀자료를 만드는 업무를 맡았다.  

투입을 위한 비용 중 직접적인 비용으로는 근로자들이 사용할 장비구매비용, 그들이 묵을 숙박비용, 근로자들 월급 등이 있다. 간접접인 비용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맡아 관리할 비용관련 인보이스는 회사 차량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근로자들의 월급부분을 제외하고 비용 관련 계약서나 그에 관한 인보이스를 엑셀에 정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특히, 까다로웠던 비용관리 품목은 근로자들 숙소 계약서 및 인보이스였다. Megastaff는 근로자들을 투입하는 고객사의 위치에 따라 숙소를 임대해야했다. 나는 브로츠와프 지도를 프린트하여 고객사의 위치와 회사가 임대하고 있는 숙소의 위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위치를 파악 후에는 폴란드어로 작성된 계약서를 구글번역기를 통해 영어로 변역하고 다시 해석하여 계약서내용을 파악하였다. 숙소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수, 계약기간, 노티스기간, 임대료 등을 파악하여 한 달 후 계약서에 맞게 인보이스가 청구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내가 가야할 길과 폴란드와의 작별]

업무에 탄력이 붙을수록 늘어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신감과 업무시간이었다. 인턴 초반 시기에 대표님의 잔소리 때문에 한국의 집이 너무나 간절하게 그리웠던 것이 무색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대표님의 칭찬을 듣고 신임을 얻고 있었다. 숙소 인보이스 결제를 받기 위해 대표님의 실을 찾을 때 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깐깐하게 집어내시며 잔소리하시는 대표님 덕분에 결제 받는 매 순간이 공포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별말씀 안하시고 서명을 해주셨으며 급기야 나중에는 “네가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라는 말씀까지 들어버렸다. 자신감과 업무 효율은 비례하게 효과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높아진 자신감은 업무를 하는데 가속도를 높여주었고, 시간 가는지 모르게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업무시간도 늘어나게 되고, 업무성과의 효율도 높여줬다. 그러나 나의 몸과 마음은 나도 모르게 지쳐가고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파로 제대로 된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나 같이 친구들 사이에서 예수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주일에 교회예배를 빠지면 매우 힘들다.(현지 한국교회도 코로나로 인해 교회를 폐쇄하였음.) 나는 스트레스를 풀 것이 필요했다. 예배는 드리지 못했지만 인턴동기와 공원 산책, 꽃놀이, 시내 산책,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공원 풍경

< 공원 풍경 >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한상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귀국비행기 비용 지원’관한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현재 나는 업무도 즐겁고, 배워가는 것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민이 되었다. 내 마음속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더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도 생각해보았다. 제일 처음 확신이 들었던 것은 현지취업은 나에게 맞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매일매일 힘들었다. 폴란드에 도착해서 업무에 적응하고 나서부터는 하루에 최소 12시간 이상 회사에 있었다. 매일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려야 했고, 극복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성장했고, 성과도 있었다. 지쳐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폴란드에서의 생활에서 아직 배울 것이 남았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공존하고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론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예배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짧은 9주였지만 매일이 힘든 9주였다. 하루를 보낼 때 1.5배의 업무를 했다고 자부하며 배우기도 많이 배웠으며 끝에는 결국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폴란드에서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충분히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코로나라는 상황에서 한상의 비행기표 지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나만의 영역을 펼쳐보기로 했다. 9주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속에 꾀 많은 것이 바뀐 것이 느껴졌다. 한 번의 휴학도 없이 대학교를 칼 졸업을 하고 1년 동안 모교에서 행정업무 경력을 쌓았다. 그 후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열심히 달려온 나는 지쳐있었으며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지금까지 달려온 나의 길은 100% 나의 의지가 아닌 상황이 만들어 준 길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후라서 였을까. 나는 27살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 어딘지 알고 싶어졌고, 도전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껏 나에게 주어진 일을 중도에 포기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께 그렇게 배웠고, 사회에서 배운 것 또한 그랬다. 그러나 이번 한상인턴은 결과적으로 본다면 중도에 포기한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변한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내세워 어쩌면 겁쟁이였던 나를 못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 내가 지금 걷는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간다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 나는 내가 만든 나의 울타리를 깼다. 사실 내가 깬 것이 아니다. 한상이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내가 경험한 것들이 나를 깰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한상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과거의 내가 참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