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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바람이 가져다준 터닝포인트
기업명
COSMAX
국가
담당업무
마케팅
작성자
김지연
기수
10기
작성일
2020.12.07

글 쓰기에 앞서 제목을 뭐라고 지어야 될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미국인턴십은 내 대학생활 4년동안 제일 큰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대학생활의 끝이 보이는 졸업반때 잡은 기회를 나는 늦바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이것이 내 인생에서 얼만큼의 영향력을 끼칠 줄은 모르겠지만, 아마 많은 것들을 바꾸었고 바꾸고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누구보다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평범한 지방대 4학년이었다. 학점이 뛰어나지도 스펙이 훤칠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 여느 날처럼 졸업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학교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때까지는 정말 몰랐었다 내가 이렇게 미국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을 줄은


때는 살인적인 더위가 지속되는 여름이었다. 익숙한 자대 복도를 지나 실험실 문을 활짝 열었다. 오늘은 내가 1등이었다. 모처럼 여유롭게 출근한날 커피한잔을 사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학교 홈페이지를 열었다. 학사공지 게시판을 쭉 둘러보던 중 “청년 해외인턴사업” 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글은 미국에서 인턴십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미국에서 인턴십을 하면 진짜 멋있겠다.’ 라고 생각한 나는 한번 도전해 볼까 싶었지만 해외 교환학생을 신청했다가 서류에서 광탈했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가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이놈의 스펙이 항상 내 발목을 잡았다.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넘쳤지만 마음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사실 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와 미국은 접점이 하나도 없었으며, 영화배경으로나 봤던 그곳에서 인턴십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그냥 접기로 마음먹은 나는 졸업논문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달정도 시간이 흘러 어느덧 방학이 찾아왔고 나는 영어회화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같이 수업을 듣다가 친해진 언니가 있었는데 언제부터 인가 영어로 작성된 문서를 보면서 열심히 무언가를 연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어공부를 하는 줄 알았는데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바로 한달전쯤 내가 봤던 미국 해외 인턴십에 지원해서 면접을 준비중이었던 것이다!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떨어져도 도전은 해보자’ 수업이 끝나자 마자 해외인턴십 공고를 올린 인력개발원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미국인턴십 희망자 모집 끝났을까요?” 우렁차게 물어봤지만 전라남도에서 주최하는 사업이라 마감됐을 수도 있다는 다소 실망스러운 답변을 들었다. 혹시 모른다며 담당자분의 명함을 주셨고 건물을 나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남은 한자리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원어민과의 전화인터뷰, 호스트회사와의 화상면접이 남아있었고, 마지막으로 미국대사관 인터뷰를 통과해야 적어도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하나 하나 도장깨기 하는 느낌이었다. 한달 늦게 시작한 나는 시간적인 여유도 없을뿐더러, 남들을 따라잡기 위해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과정은 마치 순탄하지 않은 소설을 보는 것 같다. 영어인터뷰는 턱걸이로 어렵사리 통과했었고, 호스트회사와의 면접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의 답을 영어로 요구하셔서 대답을 하지 못했던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면접관님의 말씀에 “저의 단점이라고 볼 수 있는 영어실력을 한달 안에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한달안에 영어가 늘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싸늘한 질문이 돌아왔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면접은 종료되었다. 완전 망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막 쏟아졌다. 지금까지 노력했던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울면서 집에 갔던 것 같다.


평소처럼 실험실에서 수업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띠링하고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COSMAX최종 합격 소식 전달 드리며….” ‘합격? 내가 합격이라고?’ 5초동안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 차오른다.  


나는 겨울에 인턴십을 갈 예정이었다. 뉴저지의 겨울은 정말 길고 혹독하다고 들어서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생생한 정보를 듣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에 미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최초라니...!’ 뿌듯한 마음과 약간의 두려움이 공존했다. 덕분에 나는 인터넷을 이 잡듯이 뒤져야만 했다. 뉴저지와 관련한 카페, 블로그, 뉴스 등의 모든 글을 다 읽어보았다. 다행히도 인터넷에서는 나처럼 겨울에 뉴저지로 인턴을 가는 사람들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블로그들은 친절하게도 본인이 챙겼던 짐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첨부해 두었다. 그 파일을 토대로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써 내려갔고, 그 결과 누구보다 완벽하게 1년동안 나와 함께할 캐리어가 완성되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같은 짐가방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 진짜 가는구나, 미국으로” 그렇게 내 인턴십은 시작되었다.


코스맥스는 화장품 연구개발 OEM 생산 전문업체로써 기초 및 색조화장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뉴저지에 연구소와 마케팅 본부를 두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게 될 R&I 연구센터는 건물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R&I 연구소가 위치한 건물의 모습 / 서머타임 시작 전, 퇴근길의 모습

< R&I 연구소가 위치한 건물의 모습 / 서머타임 시작 전, 퇴근길의 모습 >


연구소는SKINCARE, LIP, FOUNDATION, MASCARA 총 4개의 팀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나는 SKINCARE팀으로 배정되었는데, 다른 팀들에 비해 5배 정도 규모가 큰 팀이었다. 책임님께서 팀원들에게 간단히 나를 소개시켜주셨다.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의 비율에 깜짝 놀랐지만, 언제 내가 외국인들과 함께 일을 해보겠는가?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 기대되었다.


첫 출근 날,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없었다. 팀원들의 이름을 외우며, 어떤 물건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스캔하기 바빴다. 스킨케어 팀에는 나 말고도 다른 두명의 인턴이 있었다. 나와 같은 J-1비자를 가지고 한국에서 인턴십을 하러 온 언니들이었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직 모르는 입장에서는 일을 찾아서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음 날부터 언니들이 시키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케미스트 분들이 실험에 사용했던 비커들을 세척하고, 약수터에서 사용할 것 같은 큰 통에 들어있는 D.I Water를 항상 새로 채웠다.


비어있는 DI Water 통 / 주문한 원료가 도착한 모습

< 비어있는 DI Water 통 / 주문한 원료가 도착한 모습 >


내가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일까? 나는 연구원의 실험적인 서포트를 진행하면서 화장품 제작에 관련한 업무들을 담당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이름하여 ‘잡일’이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일 들도 있었는데 그건, 다른 인턴 언니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문득 인턴십을 오기 전 나를 책임지고 담당해 주셨던 스폰서기관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회사의 규모가 클 수록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업무는 작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되는 필요한 일’ 이라고 하셨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짧은 강연을 본 적이 있었다. 강연자는 고등학교 시절 모든 사람들이 포기할 정도로 문제아였는데, 현재는 그 누구보다 멋지게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분이었다. 그 분은 ‘누군가는 해야 했지만 꺼리는 일이 있으면 항상 내가 발 벗고 나섰고, 그런 일을 하는 동안 남들이 모르고 지나갔던 기회가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그래, 이것도 분명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쓸모없는 일이 아니야’ 그게 내 첫 깨달음이었다.


출근한지 한 이주가 지났을까? 처음으로 실장님과 함께하는 총 인턴 미팅이 잡혔다. 미팅주제는 ‘효율적인 원료창고 정리 방안 검토’ 였다.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원료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원료를 주문하고, 관리 및 정리하는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핵심 주제였다. 가끔 케미스트가 직접 주문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소통에 오류가 생길 뿐더러 같은 원료가 창고에 넘치고 있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필요한 원료가 있으면, 리스트를 종합하여 주문하고, 엑셀파일을 만들어 원료창고 관리 및 정리 모두 인턴들이 담당하자는 것이 실장님의 의견이었다. 미팅이 끝나고 일이 많아졌다는 둥 투덜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조금 더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 주어졌다는 것에 대해 내심 뿌듯했다.


시간이 흘러, 같은 팀의 인턴언니 한 명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될 때가 가까워졌다. 그 언니는 연구소와 공장에서 생산되는 SKINCARE의 모든 제품들의 안정성을 책임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일을 인수인계 받아서 계속 진행해야만 했다. 어느 날 팀장님께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언니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인수인계에 관해 물어보셨다. 뜻 밖이었다. 나보다 먼저 들어온 다른 인턴이 아닌, 나를 인수인계 대상자로 지목한 것이다. 언니는 팀장님께 지금까지 내가 했던 행동들을 봐 왔을때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샘플 안정성 측정’에 관한 인수인계를 받기 시작했다.


팀장님과 책임님께서는 내가 앞으로 해야 될 일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셨다. ‘우리 회사의 모든 제품들은 이 안정성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생산이 들어가니까 너가 책임지고 열심히 해 줘야해’ 그랬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지내오니까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이런 의미 있는 일이 주어지자 나도 이제 회사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 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성을 체크하는 일은 꼼꼼함과 정확함을 요구하는 복잡한 일이었다. 한 제품을 유리병에 넣어 6가지의 온도에서 3달동안 관찰해야했다. 눈으로 관찰하는 외관(Appearance, Odor)뿐만 아니라, 점도측정기(RV, LV)를 사용하여 점도 및 토크값을 재고, pH또한 매주 기록해야 했다. 심지어 어떤 제품들은 Hardness도 측정했다.


점도측정기(RV, LV Viscometer), Hardness 측정기

< 점도측정기(RV, LV Viscometer), Hardness 측정기>


처음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숙련도가 없어서 그런지 하나하나 측정하는데 실수도 있었고 여러 번 반복해야만 했었다. 하루 종일 저것만 하려고 하니까 어깨, 목, 허리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래도 처음의 마음가짐을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안정성 체크 이외에도 샘플링(Sampling)업무도 함께 하게 되었다. 샘플링은 케미스트가 화장품 bulk를 만들어서 주면, 고객사와 마케팅팀에서 원하는 컴포넌트에 알맞게 담으면 되는 일이었다. 컴포넌트 종류는 Cream jar, Tube, Airless pump 등 수십개가 넘었다. 종류를 외우는 시간도 무척 많이 걸렸으며, 컴포넌트에 포뮬라를 담는, 어쩌면 쉬워 보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미세한 감각이 필요한 일이라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실수와 성공을 경험하며 하나씩 배워 나가는 기쁨을 맛보았다.


화장품의 제형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컴포넌트 타입들

< 화장품의 제형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컴포넌트 타입들>



회사생활을 하면서 여러 행사도 참여했었다. 12월 달에는 R&I, 마케팅 직원들이 모두 모여 오하이오 주에서 열린 ‘NEW YEAR PARTY’에 참석했었다. 또한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어글리 스웨터 콘테스트’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문화가 너무 즐거웠다.


NEW YEAR PARTY’ 모습 / ‘UGLY SWEATER CONTEST’ 모습

< ‘NEW YEAR PARTY’ 모습 / ‘UGLY SWEATER CONTEST’ 모습 >


어느 덧 시간이 흘러, 6개월이 지났다. 미국에 도착해서 헤맬 때가 어제 같은데 말이다. 벌써 반이나 지났다고 생각 할 수도,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크고 작은 트러블도 많았지만 그 때마다 인턴십을 준비하던 처음의 나를 떠올렸다. 회사에서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는 않았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를 한 걸음 더 성장하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해외 인턴십을 통해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많이 배웠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 나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또한 터득했다.


대한민국의 정 반대편에 있는 나라라고 봐도 무방한 미국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 처음에 그냥 지나쳤던 그 글이, 지금 나에게는 큰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혹시나 안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지만, 일단 부딪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제 어떤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 주변사람들에게 떨어져도 좋으니 도전은 해봐라고 꼭 전해주고 싶다.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잡는 사람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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