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아름다운 우리 가락과 전통문화를 뉴질랜드에
구분
문화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3.04.18

5천 년을 이어 내려온 우리 가락과 전통문화를 말과 풍토가 전혀 다른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은 힘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을 30년 가까이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해오고 있는 단체가 있다. 바로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전문 예술인들을 발굴하고 그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연의 장을 만들어 함께 예술인들의 공연을 보면서 뉴질랜드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누리고자 결성된 국원국악원(Korean Culture Society)이다. 이 단체가 성장하기까지, 뉴질랜드 한국문화예술협회를 오랫동안 이끌어 온 백효순 명예회장이 있다.


공연사진


1990년대 초중반 '길고 흰 구름의 나라' 뉴질랜드에는 한인들의 이민 열풍이 불었다. 오클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해밀턴 등 뉴질랜드 주요 도시에 하루가 다르게 한인들의 숫자가 늘어갔다. 그중에서 오클랜드에는 오늘의 뉴질랜드 한국문화예술협회 백효순 명예회장이 있었다. 그녀의 이민 짐에는 남들과 다르게 독특한 것들이 있었는데 바로 가야금, 징, 그리고 장구 등 한국의 전통악기 들이였으며 짐을 풀자마자 우리 전통음악 보급에 나섰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뉴질랜드인들은 대한민국이 지구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한국에 대해 무지했다. 한국문화는 물론 전통문화는 전혀 알 리가 없었다. 들어본 적도 없고 본적도 없는 '별세계 문화'나 다름없었던 뉴질랜드에 그녀는 오기 전부터 한국의 전통음악을 널리 알리겠다는 의지로 다부진 결심을 했다.


단체사진


백효순 명예회장은 한국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10여 년을 군대에서 간호장교로 근무했다. 교민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지만 '가야금 연주자'는 더 눈에 띄었다. 다들 먹고살기 바쁜 초창기 이민 생활에 어쩌면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전통음악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며 얼마나 국악을 사랑하는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야금에 빠졌어요. 얼마나 독하게 연습했는지 저를 가르친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효순이 너는 끝까지 하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 충주 시립 국악연주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긍지를 느꼈어요. 이민 오기 전부터 삼십 년이 넘게 가야금은 늘 제 곁에 있었고 가야금을 이민 짐에 가장 먼저 실을 정도로 애정이 많았어요."


단체사진2


그녀는 한국문화를 중국문화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뉴질랜드 사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의 전통문화가 중국문화를 넘어서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 연습 공간이 마땅치 않아 오클랜드 노스쇼어 글랜필드에 있는 한 차고 앞에서 어린 학생들을 모아놓고 가야금을 가르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실력이 늘어 함께 연주에 나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원들이 늘었고 현지에서 가야금의 청아한 소리와 부채춤의 화려한 움직임이 퍼져 나갔다. 2년 뒤인 1996년 백효순 씨는 단체를 'Korean Traditional Music & Culture (KTMC)'로 이름을 정하고 원장 역할을 맡아 본격적으로 뉴질랜드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단체사진3


그 뒤, KTMC라는 이름을 내걸고 한 발짝 두 발짝 걸어온 아름다운 발자취는 뉴질랜드 방방곡곡에 빛을 비추었다. 한국과 한국문화를 뉴질랜드인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전통 공연을 볼 때마다 "원더풀"을 연발하며 힘찬 박수를 보냈다. 한국의 전통음악이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까지 전파된 것이다. KTMC는 '한국 전통음악의 전도사'였다. 뉴질랜드 현지 사회가 주최한 여러 문화 행사에 단골로 참여하였으며 뉴질랜드 정부나 단체가 주도한 행사는 물론 초중고등학교, 도서관, 각종 커뮤니티 등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국 전통의 미를 한껏 뽐냈다.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이라면 지역이나 시간에 상관없이 동참했지요. 그렇게 서른 해 가까이 해왔네요. 지금까지 크고 작은 행사를 800회 가깝게 참여한 것 같아요.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친 것까지 합치면 훨씬 더 넘을 거고요. 이제 70대 중반을 넘어섰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그저 저의 작은 몸짓이 뉴질랜드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단체사진4


KTMC는 한인 사회를 위해서도 여러 방면에 이바지했다. 먼저 1997년부터 시작한 북오클랜드 한국학교, 서오클랜드 한국학교, 남오클랜드 한국학교 등 한글학교를 주축으로 한 전통문화 보급을 꼽을 수 있다. 이 단체는 한글학교에 전통문화 강좌 시간을 마련해서 자라나는 세대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고 특별활동 시간이나 특강을 통해서도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알려주었다. 또한, 10대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에게도 가야금, 장구, 북 등 여러 전통악기를 가르쳤다. 한 주에 두세 시간씩 지도해 조금은 미숙하더라도 전통악기 연주의 흐름을 이을 수 있도록 했다. 어쩌면 이민 1세대에서 끝날 수 있는 전통악기 연주의 명맥을 지켜준 데는 KTMC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KTMC는 한인들의 주요 행사가 있는 곳에는 늘 함께 있었다. '한인의 날', '광복절 행사' 같은 한인 사회와 두고 온 고국을 기리는 크고 작은 행사는 물론 소소한 행사에도 기쁨으로 참여했다. 이 숱한 행사를 책임지고 맡은 백효순 명예회장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라고 하는 곳이 많아졌어요. 내심 뿌듯하고 자부심도 느꼈지요. 하지만 단원들이 시간을 쪼개어 연습하고 또 바쁜 이민 삶 속에서 공연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어요. 좀 더 잘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고요. 그동안 자리를 빛내 준 모든 단원과 후원자들께 감사드려요."

KTMC의 업적은 이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국악 관련 공연이 펼쳐질 때 가장 먼저 접촉되는 곳이 바로 KTMC이다. 가야금 명인 함병기 씨의 공연,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 등 숱한 공연이 KTMC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한국 전통문화의 가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현장


KTMC의 역사는 뉴질랜드 안의 한국 전통문화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민 초창기 KTMC와 유사한 성격의 단체가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 사라져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유일한 단체로 남아있다. 그만큼 한국 전통문화 같은 고귀한 것을 지키는 일은 힘들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백효순 명예회장은 '그 많은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 냈을까?'에 대한 물음에 "좀 거창하게 말하면 애국심으로 버텼어요. 제가 간호장교 출신인 만큼 군인 정신으로 지켜왔다고 볼 수 있고요. 한국의 전통문화가 계속 이어지게 하겠다는 마음은 제가 뉴질랜드에 살면서 쭉 가져온 신념이에요. 훗날 뉴질랜드 한인 역사에 '가야금에 미친', '전통문화를 이으려고 애쓴'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거예요. 제가 지금도 '가야금' 하면 자다가도 눈을 뜨거든요."

그녀는 뉴질랜드에서 사는 동안 숱한 시간과 많은 돈을 아무 조건 없이 썼다. 오롯이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사용했다. 그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기에게 가장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때로는 말 못 할 슬픔의 눈물을 흘렸고,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삶을 그렇게 '한국 전통문화의 전도사'로 바쳤다. 그런 의미 있는 한 사람이 있어 한인 사회에 전통문화의 꽃이 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단체사진5


2009년 KTMC는 'Korean Culture Society(KCS)'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한국문화'에 방점을 찍었다. 전통문화와 함께 한국문화 전반을 한인 사회와 뉴질랜드 사회에 알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때에 맞춰 뉴질랜드 정부에 비영리단체로 등록하여 보조금도 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아울러 재외동포재단에서도 힘을 보태주었다. 명실공히 '한국문화의 기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문화원'이라는 이름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KCS는 최근 들어 활동 영역을 다양화했다. 기존의 전통문화 공연과 전수 외에도 태권도, 붓글씨 등 같은 한인들이 비교적 편히 접근할 수 있는 분야까지 확대했다. 모름지기 '한국문화의 둥지' 그 소임을 다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단체사진6


하지만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후계자 양성이 급하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전통문화나 악기에 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들었다. 한인회와 한인 사회 등 모든 한인이 관심가지고, 해결해야 한다. 백효순 명예회장은 은퇴하고 명예회장으로서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30년 가까이 한길을 묵묵히 걸어온 '전통문화 지킴이'에게 범 교민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제가 KCS를 설립하기는 했지만, 결코 제 것이 아니라 우리 교민 모두의 것이에요. 한인 사회가 존재하는 한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 단체가 한 군데는 꼭 있어야 합니다. 부디 애정을 가지고 많이들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했다.


공연현장


뉴질랜드 한국문화예술협회 회원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다채롭고 풍부한 문화예술을 배우고 사랑하면서 뉴질랜드에 한국인의 문화예술을 널리 알리고 있다. 백효순 명예회장은 그동안 이 단체를 운영하면서 받은 숱한 기관과 사람들의 도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시간과 돈을 써가며 각종 공연에 자리를 함께한 단원들과 어린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무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30년 가까이 한국문화 알림꾼으로 활동해온 백효순 명예회장은 정말로 뉴질랜드 한인 사회 문화계의 보석 같은 존재다. 한 사회에 문화가 없다면 그것은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얼과 혼이 그 안에 다 있기 때문이다. 부디 뉴질랜드 한국문화예술협회가 50년 100년을 넘어 계속해서 뉴질랜드에 한인 사회가 한 대를 이어 빛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출처: 뉴질랜드 한국문화예술협회 백효순 명예회장






홍석훈
 뉴질랜드 홍석훈
 재외동포재단 해외통신원6기,8기
 커리어넷 사이버 상담위원
 KEDI 교육정책네트워크 자문위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