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기자 24시

비우호국 자산 동결로 인해 한인들 거주와 사업에 어려움 겪어
작성일
2023.04.25

비우호국 자산 동결로 인해 한인들 거주와 사업에 어려움 겪어


4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러시아 한인 사회는 더 시끄러워진 상태입니다. 이미 비우호국으로 지정되어 경제적인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심각한 생존의 위협을 받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한인들은 길거리에서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까지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4월 24일 러시아와 CIS 한인회는 우크라이나 무기 제공을 반대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그 동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숨죽이며 지켜보았던 한인들의 한국 정부를 향한 간곡한 호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러시아의 한인들은 이미 경제적, 사회적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몇가지 사례를 통해서 한인들이 거주와 사업 상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러시아CIS 5개 한인회의 성명서를 실은 재외동포신문 기사

러시아CIS 5개 한인회의 성명서를 실은 재외동포신문 기사(출처 :재외동포신문)


사례 1. 러시아 진출 대기업 현지 채용 K씨의 경우
러시아에 진출한 대기업에 현지 채용 형식으로 오랫동안 일해왔던 K씨는 최근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보통 현지 채용된 직원들은 오래동안 러시아에 거주해 온 교민들이 대부분인데 계약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말미암아 대기업들이 하나 둘 철수하면서 현채직들도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체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재원들은 철수 명령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가 재배치를 받으면 되지만, 현채직들은 한국에 기반이 없어서 쉽게 철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통해서 노동비자를 발급받아 살던 현채직과 그 가족들은 당장 체류에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는 그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러시아에 부동산을 마련한 경우에 상황은 좀 더 복잡해집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비우호국가로 지정된 외국인의 경우, 부동산을 매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자산이 동결된 상태입니다. 당장 러시아를 떠나야 하는데 부동산을 처분하지 못하므로 재산상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큽니다. 학교를 다니는 자녀가 있는 경우는 학교비자를 새로 발급받아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증가됩니다. 그 동안 현채직들의 경우, 다른 한인들에 비해 안정적인 체류를 보장받아왔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런 돌발상황 앞에서 가족과 함께 장래를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지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에 진출한 대기업에 취직한 현재직들은 대부분 K씨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러시아 대표 국영은행인 스베르방크러시아 대표 국영은행인 스베르방크


사례 2. 러시아에서 자영업을 하는 P씨의 경우

러시아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P씨 또한 사업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P씨는 몇년 전 러시아인과 50:50 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자금의 어려움으로 은행에 대출을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거절 통지를 받았습니다. 은행에 사유를 알아 본 P씨는 비우호국 국민의 주식 비율이 50% 이상이어서 아예 대출 심사조차 안된다는 설명을 듣고 망연자실하였습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통해 지분을 50% 이하로 줄이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또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우호국 외국인의 경우는 지분 거래도 불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비우호국 외국인이 대표로 있는 회사는 현상 유지만 가능할 뿐, 대출, 매매, 증여 등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나마 사업은 유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4년째 매출 하락으로 회사 유지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P씨는 출구가 없어 보입니다. SWIFT 코드 제재로 송금도 받을 수 없고, 더구나 은행 대출조차 막힌 상황에서 P씨는 회사 유지 뿐 아니라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사례 3. 모기지 대출을 받으려고 했던 L씨의 경우

러시아에서 임시거주허가를 받고, 러시아 회사에 취직하여 일하고 있던 L씨는 얼마 전 결혼을 하였습니다. L씨는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모기지 대출을 알아 보았습니다. 외국인이라도 세금을 성실히 납부한 기록이 있으면 모기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을 듣고 알아본 것입니다. 그러나 은행으로부터 모기지 대출 거절 통지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역시 외국인이어서 안되는 줄 알았으나, 변호사를 통해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우호국 외국인이기 때문에 모기지 대출 불가라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L씨는 신혼의 단꿈을 꿀 겨를도 없이 현실의 어려움에 직면하였습니다. 비우호국 지정이 풀릴 때까지 월세 부담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국내 언론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러시아 한인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들이 자못 심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 발언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아직까지 인도적 지원만 가능하다는 원칙론을 말하고 있지만, 그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러시아 한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 동안 조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숨죽이고 있던 러시아 한인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평화로운 해결책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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