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 운영사례

2022 한인회 운영사례 – 31)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크즐오르다 지부
작성일
2022.11.14

[2022 한인회 운영사례 –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크즐오르다 지부]


회장 김옐레나


[한국 역사 보존, 홍보 활동(홍범도 장군, 계봉우 지사 묘역 및 추모 기념비 관리)]


1. 한인회 개요
ㅇ 크즐오르다 한인회(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 크즐오르다 지부)
     - 설립 일자: 1989년 10월 28일
     - 2014년 3월 4일, 지역 정식 등록
     - 크즐오르다 주에는 약 7,000명의 고려인들이 생활하고 있음

ㅇ 역대 한인회장:
     - 1989-1999 - 한 예브게니 하리토노비치(Khan Yevgeny Haritonovich)
     - 1999-2006 – 오가이 에두아르드 혜노비치(Ogai Eduard Henovich)
     - 2006-2011 – 박 발레리 보리소비치(Park Valery Borisovich)
     - 2011-현재 – 김 옐레나 알렉세예브나(Kim Elena Alexeevna)

ㅇ 설립 목적: 크즐오르다 지역 고려인 디아스포라 발전
ㅇ 주요 활동
    - 한인 문화, 관습, 전통 부흥, 언어와 카자흐스탄 고려인 역사 배우기
    - 다민족 간의 화합 강화 및 유지
   - 고려인 협회 주최 행사에 미래 세대(청소년과 어린이)를 참여하게 함
   - 한국 전통문화 계승 위한 환경, 기반 조성
   -  카자흐스탄과 한국 간 문화적 유대관계 - 수립 및 발전

2. 주요 모범사례
ㅇ 크즐오르다 배경
- 크즐오르다는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에 고려인들 상당수가 정착한 지역으로,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에 벼농사 등 쌀 재배법을 전파하기도 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원동 사범대학(현재 크즐오르다 주립대), 고려일보, 고려극장도 함께 강제 이주 되어온 역사가 있는 곳임
- 특히,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계봉우 지사가 크즐오르다에서 생을 마쳤으며, 홍범도 장군의 묘역에는 그의 기념비가 세워져있고 도시 내 홍범도 거리와 계봉우 거리가 지정되어 있음.

ㅇ 구체적 모범 사례
- 크즐오르다 고려인 협회는 카자흐스탄과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갖기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홍범도 장군과 계봉우 지사의 묘역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왔으며 90년대 초반부터 수십 년 동안 고려인 협회의 회원들(대부분 연금수령자인 노인들)이 추모 단지를 관리하고 조경과 정돈 같은 일을 해왔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고, 무언가를 바라고 한 것도 아니었지만, 묘역이 방치되고 사라지지 않도록 협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활동을 작게나마 지속해왔습니다. (꽃을 심고 풀을 뜯고, 방문자들을 위한 안내 활동 등) 이후 기념비가 세워지고, 한국 정부와 관련 단체들의 지원으로 인해 2021년 8월 14일에 고국으로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식이 수행되었고, 장군님은 현재 한국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해 봉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려인 협회에서 의견과 지지를 모았고, 유해 봉환이 이루어진 후에도 그 터가 없어지지 않도록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런 결과로, 고려인 협회는 크즐오르다 주정부와 한국의 국가보훈처와 협의하여 현재 홍범도 장군 및 계봉우 지사 묘역을 공원조성화 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 역사를 카자흐스탄, 한국 사람들은 미래 세대들이 기억하도록, 지방 고려인 협회임에도 불구하고 다각적으로 모색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크즐오르다 지부가 한국을 사랑하고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협회의 회원들이 오랫동안 이 두 분의 묘역을 관리하지 않았다면 우리 세대들은 홍범도 장군과 계봉우 지사의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참고: <주요 역사>
홍범도는 1868년 8월 27일 평안도의 농민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가난했고 그는 8살 때 고아가 되었습니다. 15살까지 삼촌의 집에서 일했고 그 후 보병에서 나팔수로 복무하고 제지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홍범도는 포수로 «의병 부대»를 조직해서 1907-1910년 일제강점기에 항일투쟁을 시작했습니다. 홍범도의 부대는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북한 영토에서 일제의 세력과 싸웠습니다. 수비대에 대담한 공격에 대해 적들이 그를 «날으는 홍장군»이라고 불렀습니다. 홍범도는 1910년부터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군»을 만주 (중국)에서 구성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소비에트 극동 (1918-1922)에서 펼쳐진 내전에서 참여했고 레닌과 만나며, 붉은 파르티잔 (게릴라 부대)의 투쟁에 합류했습니다. 러시아 영토에 있으면서 내전 시 홍범도가 구성한 파르티잔 부대들은 적위군 (공산군)과 함께 백위대를 지원하는 일본군과 싸웠고, 따라서 극동에서 소련 세력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내전 후 홍범도는 소련에 남아 공산당에 입당했습니다.
스탈린의 결정으로 극동에서 살던 고려 사람들이 1937년에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의 다른 나라로 강제 이주 당했습니다. 약 172,000명의 고려 사람들이 남 카자흐스탄 (투르키스탄) 지역, 아랄해 인근 지역, 발 카쉬, 현대 우즈베키스탄 영토로 추방되었고, 홍범도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크즐오르다에서 그는 고려극장에서 경비 책임자 겸 화부로 일했습니다. 극장의 연기자 중 한 명이 우연히 그의 파르티잔 과거를 알게 되었고 홍범도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1942년에 전설 장군에 대한 연극이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우리 영웅의 겸손에 감탄하다»고 하며, «극장에서 화부로 일하면서 그는 자기의 용감한 과거에 대해 상기하지 않고 삶과 불의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냥 갖춰진 조건 속에서 살며 운명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이 올렉 감독은 고려일보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홍범도는 194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저기, 갈대 사이에서 묻었는데, 갈대가 많은 묘는 쉽게 불에 태울 수가 있는 리스크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파르티잔이었으며, 파르티잔으로서 묻혔습니다. 나중에 카자흐스탄이 독립되고 난 후 홍범도재단이 설립되었고, 기념관이 세워졌습니다. 지자체와 합의해서 장군이 다시 묻힐 다른 토지 할당에 대한 허락을 받고 홍범도의 묘를 옮겼습니다.
1993년 홍범도의 125주년 때 크즐오르다에서 그의 이름으로 공익 재단이 설립되었습니다.

<홍범도 기념비>

홍범도의 기념비는 크즐오르다 시 «자파 드니» (서부) 소구역에 있는 구 묘지에 있습니다. 한국의 또 다른 영웅인 계봉우의 기념비도 여기 있고 2019년에 고국 (한국)으로 계봉우의 유해 봉환되었습니다.
기념비의 중앙 부분은 높이 1.2 미터의 청동 흉상이며, 받침대는 2.5x1.5 미터, 댓돌은 1x1.8 미터, 둘 다 검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기념 석판이 3개가 (0.2x1.x1.5 미터) 있으며, 하나는 홍범도의 기본 정보가 있는 붉은 화강암으로, 둘째는 검은 대리석으로 (강제 이주를 상징하는 주제로 한 바릴리프 – 화물기차 배경에서 이별 인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 셋째는 하얀 대리석으로 (카자흐스탄 다민족을 상징하는 유르트의 천장인 «샤르나크» 배경에서 비둘기 모습)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념비에 «홍범도, 1868-1943» 한글로 쓰여 있으며, 두 번째 석판의 바릴리프 밑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셋째 석판의 그림 밑에 «민족간 화합, 평화, 정의를 위하여» 쓰여 있습니다.
기념비 설립일: 1996년 5월 20일
조각가 (authors): Kim L.N., Kim V.G.
기념비는 홍범도 재단 이사장인 Kim L.N. 발의로 세웠습니다.
기념비는 개인, 현지 사업가, 공공단체 기부금과 한국 대사관, 보훈처, 기업의 주요 지원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홍범도 재단은 자체 청산되고 기념비 관리와 관련 책임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가 맡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이상 협회의 회원들이(대부분 연금자와 노인들) 추모 단지를 관리하고 조경과 정돈 같은 일을 합니다.
2021년 8월 14일에 한국으로 홍범 전설 장군의 유해 봉환식은 수행되었습니다. 다음 날 홍범도의 유해를 모시고 한국 대표단이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에서 대전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3. 향후 계획(해당 사례 관련 운영계획 작성)
현재 동 묘역은 크즐오르다 주정부, 한국의 국가보훈처가 협의하여 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 추진 중에 있습니다. 우리 단체는 동 사업의 주체로서, 앞으로도 기념관 관리 업무를 지속해서 할 계획입니다. 추모 단지 조경을 계속할 것이며, 또한, 일제에 대항한 한국의 해방투쟁에 대한 역사를 현지인과 동 지역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에게 널리 알리는 역할도 계속해서 해 나갈 것입니다. 최근에는 대전 교육청 관계자와 학생들이 역사 탐방을 오기도 했습니다. 강의나 교육적인 행사도 개최할 계획입니다. 예를 들어, 홍범도 장군의 지도로 대항한 조상들의 업적과 계봉우 지사 활동에 대한 그림 그리기 대회, 글 지식 대회, 기타 문화 행사를 진행할 계획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우리 한인회는 오래전부터 먼 타지인 이곳 카자흐스탄에서 역사적 모국인 한국의 영웅들을 지속적으로 모셔왔으며, 그 누구보다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도시, 나라, 그리고 한국 대표단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지금껏 해왔듯이 묘역 관리는 물론, 한국 독립운동을 위해 싸운 독립유공자 분들의 활동에 대해 지속해서 정보를 연구하고 배포하겠습니다.

4. 기타(맺음말)
이 모범사례 공모 신청서를 한국의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계봉우 지사가 카자흐스탄 땅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 각국의 한인들이 알 수 있도록 제출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크즐오르다 지역의 한인으로서 우리 지역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영웅들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역사적 모국인 한국과 영웅들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예우하며, 국내외 사람들에게 지속해서 알리는 역할을 할 마음을 굳게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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