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 운영사례

2022 한인회 운영사례 – 37)재일본주시고쿠 히로시마 한국인연합회
작성일
2022.11.14

[2022 한인회 운영사례 – 재일본주시고쿠 히로시마 한국인연합회]


회장 김인숙


[강제노동 사고유적지 탐방 및 위령제]


1. 한인회 개요
<재일본 주시코쿠 히로시마 한국인 연합회 소개>
・ 저희 ‘재일본 주시코쿠 히로시마 한국인 연합회(약칭:히로시마한인회)는 2018년 9월 15일에 발족하였습니다.
・ 일본에 있어서 1980년대 이후 방문한 '뉴커머'로 불리는 재일한국인의 친목 단체로서, ‘재일본한국인연합회'의 6번째 지방 조직으로서 출범했습니다.
・ 재일한국인의 친목 교류, 한일 우호 교류 사업과 이벤트의 개최, 유학생 지원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2. 주요 모범사례
일본의 여러 지역 중에서 저희 주시코쿠 히로시마한인회의 거점 도시인 히로시마라고 하면, 원자폭탄의 투하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봅니다. 그러한 불행한 역사적 배경 속에는, 이 지역이 군수 물자의 생산이나 인프라 건설을 위해서 강제로 동원되었던 우리 동포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지역적 특성이 있습니다. 또한 관할 지역이기도 한 바로 이웃 현인 山口県(야마구치현)은, 구한말 정한론의 구심적 역할을 한 요시다 쇼인과 이토 히로부미가 태어나 활동하던 지역이며, 그리고 최근에 암살된 이들을 숭배하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인 근거지이기도 해서, 우리들 입장에서는 복잡하고 착잡한 심경이 앞서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저희 재일본 주시코쿠 히로시마한국인연합회가 2018년 9월 15일에 창립한 이래, 매년 빼놓지 않고 개최하고 있는 사업이 바로「강제노동 사고 유적지 탐방 및 위령제」입니다. 2018년 10월 11일에 처음으로 高暮(고보) 댐 위령제를 개최한 이래, 2019년 11월 17일에는 長生(조세이) 탄광 탐방 및 위령제, 2020년 10월 18일과 2021년 10월 24일에는 다시 高暮(고보) 댐 탐방 및 위령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참가모집은 한인회의 회원뿐만이 아니라, 유학생과 일본인을 포함한 일반 시민까지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참가비는 무료입니다.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첫 행사와 야마 구치현 조세이탄광이라는 원거리 행사를 치른 후에 바로 코로나 사태가 옴으로써, 평균 참가자가 20명 전후라는 인원적인 제한이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행사는 불행한 역사 속의 유적지를 같이 탐방함으로써,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되는 과거를 되새기는 것과 함께, 그곳에서 불의의 객이 되신 우리 동포들의 혼백을 기리는 매우 뜻깊은 행사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도 불구하고 중단하지 않고 계속 개최해 온, 저희 주시코쿠 히로시마한인회의 정체성이 결집된 사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두 유적을 간단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먼저 高暮(고보) 댐 사고 유적은, 広島県 庄原市 高野町(히로시마현 쇼바라시 다카노쵸)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中国(주고쿠)지방의 1,200m 급 산지로, 간노 세강을 수원으로 하는 약 30킬로의 협곡에 있습니다. 1940년 3월 15일, 당시 주고쿠 지방 최대라고 불리던 고보 댐의 기공식이 있었습니다. 이 고보 댐의 건설 공사는 1945년 8월의 패전을 끼고서 1949년 12월까지, 전후 약 1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서 건설이 되었습니다. 그 기간 중인 1940년 여름으로부터 가을에 걸쳐서, 한반도로부터 약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이송되어 와서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를 회고하는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비인도적인 대우와 가혹한 노동 환경, 몸이 얼어버릴 것 같은 추위의 혹독함에 이 댐은 백골 댐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위령제를 유적지의 위령비 앞에서 지내는데, 거기까지 도착하기까지는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만한 좁고 험한 산길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차를 타고서도 한참을 들어오는 첩첩산중, 고향과도 일본의 도회지와도 멀리 떨어진 그 깡촌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을까요? 지친 몸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혹한 일상들… 그 첩첩산중에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고, 많은 분들의 희생 위에 오늘날 우리들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탐방이라고 절감하고 있습니다.

長生(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유적은 山口県 宇部市(야마구치현 우베시)의 동부에 위치하며, 瀬戸内海(세토나이카이)와 접하고 있습니다. 해안에는 마치 묘비처럼 長生 (조세이) 탄광의 2개의 피야(배기·배수통)가 해수면으로부터 삐죽이 튀어나와 있습니다. 당시 야마구치현에는 많은 탄광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長生(조세이) 탄광은 해저 갱도에서 작업이 진행되었던 매우 위험한 탄광으로, 당시 전국적으로도 비교적 조선인 노동자가 많았던 야마구치현에서도 특히 조선인 노동자의 수가 많았던 탓에「조선 탄광」이라고도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1942년 2월 3일 오전 6시경, 해안의 갱도 입구로부터 1,000미터 이상 바다 쪽으로 들어간 갱도에서 이상 출수가 시작이 되어 오전 8시경에는 수몰이 되는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의 피해자는 183명, 그중 70%에 달하는 137명이 조선인 노동자였습니다. 희생자들의 영령은 지금도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고 계십니다.

행사는 1. 제단 준비, 2. 개회, 3. 경위 설명, 4. 献香(헌향)및 献酒(헌주), 5. 추도사, 6. 헌화, 7. 묵념, 8. 폐회의 순으로 진행이 됩니다. 특히 2021년의 고보댐 위령제에서는 위령비 옆에 저희 주시코쿠 히로시마한인회가 기념 식수한 무궁화 나무에 물 주기도 식순에 함께 넣어서 진행하였습니다.

인간성을 유린당하는 가혹한 노동, 먼 조국에 대한 끝없는 망향의 마음을 품고 병에 쓰러지고 또 불의의 사고로 댐 제방의 시멘트 속과 차디찬 바닷속에 묻혀갔을 수많은 생명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외진 땅에 와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숨져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생활을 강요당하고 돌아갈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의 가혹한 중노동이었으며, 이국에서의 바라지 않는 개인의 희생은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고향에 있는 그리운 가족들의 이름을 몇 번이나 목청껏 외쳐 보았을까요? 가족들과 재회도 못한 채, 값진 삶을 타지에서 허망하게 마감한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드리며 아직도 햇빛을 보지 못하시는 분들의 완전한 수습도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오셔서 영혼이나마 조국에 돌아가시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3. 향후 계획(해당 사례 관련 운영계획 작성)
이들 유적은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서 외면되고 방치되어 왔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의식 있는 시민들이 강제 연행의 실태와 사고 유적에서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당시의 사고 현장에 추모비를 세우고서 매년 위령제도 개최해 오고 있습니다. 한일 간의 관계가 어떻든 간에 이렇게 진실을 계속 추구하는 시민 의식의 존재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한국과 일본의 진정한 화해와 우정의 미래를 여는 큰 힘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러한 유적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하니 저희 한인회에서는 그 유적의 발굴과 함께, 이를 알리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갈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종식 후에는 일본 전국의 한인회와도 연계하여 더욱 많은 참가자를 아우르는 큰 규모의 사업으로써 발전시켜나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위가 한층 더 기상이 올려져야 가능한 일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너무도 간절히 고향으로 돌아가시고 싶었을 영령들의 유골을 발굴하여, 조국의 땅에 묻히게 해드리고 싶은 간절한 소망도 꼭 실현하고 싶습니다.

4. 기타(맺음말)
저희 주시코쿠 히로시마한인회도 강제노동 사고 유적지를 기리는 데에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 것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위령제를 지내기 위한 일 년에 단 한 번의 방문이지만, 매년 참가할 때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고향에 있을 때는 어딘지도 몰랐을 머나먼 이국땅, 험하고 깊은 산골짜기와 바닷속 탄광까지 강제로 연행되어 힘겨운 생활을 하셨을 분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흐려지고 목이 메어지는 듯합니다. 강제 노역의 고통과 함께, 사고로 인해 너무도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신 영령들께, 깊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1년에 한 번이나마 머리 숙여 꼭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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