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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시] 그곳에는
작성일
2024.01.26

시부문 가작


그곳에는

조현숙(미국)


어디서 왔냐고 묻더라
서울 코리아에서 왔다고 했지
그곳은 어땠냐 묻데

어릴 적 약국에 아저씨는 솔나무 가지처럼
눈꼬리가 올려 붙어 있고 웃음은 하나도 없었어
약 심부름이라도 가면 겁부터 먹었지
동네 슈퍼 아줌마 아저씨는 태엽 감긴
시계처럼 또각또각 소리가 들리는 듯했어

동네에 들어서면 곰인형 눈알처럼
밝혀지는 불빛들이 반가웠지

세월이 몇 바퀴 돌았는지 셀 수도 없었는데
그곳의 불빛과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그 자리에 있어서
우리는 같은 그림 속 풍경이 되는 역사가 된 거지

올려졌던 눈이 송충이 꼬리처럼 내려온
온화한 빛의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어릴 적
아저씨의 기억을 얘기했지
그랬냐고 웃으시데

똑같은 매일매일이 쌓여서 세월의 탑을 쌓아 올렸지

지금 이 시애틀에 있는 한 타운에서
역사의 반복이 되고 있는 게야
내가 있는 곳의 불빛과 공간이 타인에게
내가 느꼈던 그림이 되어 주고 있는 거지

파란 눈의 꼬마가 훌쩍 커버린
아가씨가 되어 나타나
제 어릴 적 봤던 모습과 지금도 같다고
시카고로 이사 갔다가 어릴 적 살던 이곳이
보고파서 들렸노라고
어느새 내가 그의 고향이 되어 있더라
어릴 적 살던 그곳에 가면 지금도 그분들이
내 그림 속의 흘러가는 배경이 되어 주고 있을까
내게는 사람들이 고향이더라
나도 다른 이들에게 역사가 되는 고향이 되어 가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