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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돌아온 미국
기업명
Forever21
국가
담당업무
상품관리
작성자
류수연
기수
상시
작성일
2020.12.09

인턴십에 참여하게 된 계기

[엄마 이거 사기 아니야!]

내가 일할 수 있는 직종은 영업 관리와 은행일 뿐일 줄로만 알았다. 왜냐하면 우리 학과 동기들이, 선배들이 다 그걸 준비하니까. 내 주변 사람들은 주로 그 일을 하니까.

나도 여느 마지막 학기를 앞둔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게 학교에서 유명하다는 취업동아리에 들어갔다. 매달 뜨는 공고에 맞춰 자기소개서를 쓰고, 매주 두 번씩 면접 스터디를 하였다. 왠지 모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들어 항상 불편하고 불안했다. 자기소개서도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적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휴학, 준비했던 일에 대한 실패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만큼 떨어진 때였다. 그러니 혼자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는 시기가 왔고. 정말 내가 뭘 하고 싶었는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자기소개서의 기업이 정말 내가 가고 싶었던 기업인지, 남들이 다 가니까 써보라고 하니까 쓰고 있는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문득 떠올랐다. 아 나 해외 인턴 하고 싶어 했지. 작년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로부터 더 나아가서 해외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해외 인턴은 아무나 하나, 내가 해외 인턴 할 나이인가, 그럼 돈은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로 고이 접어두었던 마음이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 기를 쓰고 찾아보았다. 커뮤니티 카페든 유튜브든 어떤 경로로든 갔다는 사람이 있으면 쪽지를 보내고 메일을 보내어 물어보았고 정말 발품 팔며 알아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 한상재단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의심하였다. 교육도 받게 해 주고 지원금을 이만큼이나 준다고? 사기이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으로 혼자서 1달을 고민했다.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부산에서는 아는 사람이 잘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아니야 사기도 당해봐야 사기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혹시나 아니더라도 그 책임은 감내하자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1년 동안 살짐을 싸 들고 부산에서 부모님과 마지막 인사를 한 후 청년 인턴십 5기 교육 날 신라 서초 스테이에 도착하였다. 한상 재단 청년 인턴십이라는 배너를 보자마자 엄마한테 전화 걸었다. “엄마 이거 진짜 사기 아니야, 나 미국 다녀올게” 불안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내가 했던 고민들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다양한 나이대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가졌던 사람들이 우리 7조의 테이블에 모여있었다. 벌써 설레고 흥미로웠다.


배울 점이 많았던 우리 7조 동기들

<배울 점이 많았던 우리 7조 동기들>


근무 활동과 환경

내가 근무했던 곳은 FOREVER 21로 한인교포가 설립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패션 유통 기업이다. 기업을 선정 할 때도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파산 보호 신청을 한 회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큰 규모와 회사 분위기를 보았을 때 미국 기업의 문화와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하였다.


Forever 21 본사 모습 / 업무할 때 사용하였던 BI

<Forever 21 본사 모습 / 업무할 때 사용하였던 BI>


내가 속해 있는 부서는 매 시즌에 대한 판매량을 리뷰하고 검토하여 다음 시즌을 위한 모든 품목과 재고량을 결정하는 Planning & Allocation 부서였다. Planner 들과 Allocator들을 위해 매주 판매되었던 데이터들을 가지고 세일즈 리포트를 만들고 함수에 대한 오류들을 고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그중에서도 WGA(women’s global apparel)팀에서 여자 옷에 대한 모든 카테고리를 맡았다.

한상 재단 사전 교육에서 선진국가로 파견되는 인턴들은 단순한 업무를 맡을 확률이 높다고, 그래서 주어진 업무 외에 스스로가 목표를 세워 스토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정말이었다. 다들 새로운 인턴에게 줄 만한 일도, 관심도 없었다.


[나라는 사람을 알리자]

회사 규모도 워낙 클뿐더러 그중에서도 우리 부서가 직원들이 50명 남짓으로 큰 규모에 속하였다. 게다가 우리 부서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첫 출근을 한 날에는 내 자리는커녕 책상조차 없었고, 내 매니저였던 사람은 나에게 관심도 없었다. 한국인의 정은 무슨 한국인이 없으니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모든 직원에게 오늘 새로 온 인턴이라고 “Hi I m a new intern from today, if you have any help please let me know” 이렇게 인사하며 다녔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온 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고 책상이 오기 전 옆에 앉아서 보며 일하는 것들을 배워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동료로써 친구로서]

Forever 21에는 16명가량의 인턴이 있는데 대부분 인턴끼리 점심을 먹고 인턴끼리 어울려 다닌다. 알게 모르게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인턴과 정직원의 벽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한국인들과 어울리기가 외국인과 어울리기 보다 더 쉬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forever21이라는 곳은 너무 좋은 환경이었다. 이 좋은 환경에서 옆자리의 사람들과 왕래 없이 그냥 일만 하다가 가는 곳으로 두고 싶진 않았다. 그 모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싶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적극적으로 근처에 있는 직장동료에게 매일 먼저 “Good Morning”이라고 밝게 인사하였고, 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기도 하였고, 공통 관심사를 찾아 대화를 걸기도 하였다. 그러니 이번엔 먼저 가져온 음식들을 나눠 먹자며 말을 걸었고, 미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냐며 나에 대한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다음번에 함께 bar에 가자며 약속잡기도 하였다. 그렇게 친해져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되었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재미있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대체 불가능한 인턴]

인턴이지만 나 아닌 다른 아무나 다 와서 대체 할 수 있는 직원이 되기는 싫었다. 한날은 우리 팀의 Angela가 누가 봐도 인턴이 할 수 없는 일을 나에게 시켰다. planner들이 쓰는 공식들과 3년 차는 넘어야 볼 수 있는 Ladder plan이라는 엑셀 폼과 모든 함수를 다시 수정 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인수인계해 주는 것도 가르쳐 주는 것 또한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았다. 한국인 매니저분께 메일을 보내어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옆에 가서 Ladder plan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배우고, 동료들에게 sales에 필요한 함수 참고 자료를 받아 집에서 함수들을 더 공부하여 여러 시행착오 끝에 원하는 새로운 폼을 만들어 주었다. “This is what I exactly wanted!”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또한 2일의 시간적 여유를 주고 시킨 일도 2시간만에 뚝딱 해치우고 더 도울 일이 없냐고 먼저 물어보곤 하였다.

미국은 뭐든 자율에 맡기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처럼 인수인계나 교육 시스템은 없었다. 어떤 방법이 더 좋은 것인지 장단점에 대해 생각 해 볼 좋은 기회였다.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Black Friday에 본사 직원을 스토어로 파견 요청하는 공고가 떴다. 블랙프라이데이 때 스토어에서 일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며 모두가 꺼렸지만 내 눈에는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나는 힘들지 않기 위해, 편하기 위해 미국에 온 것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있다면 주저 없이 잡으러 온 것이다. 내 매니저인 Carla에 승인을 받고 그날 Figueroa store로 새벽같이 출근하였다. 또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니 너무 설레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재고 정리와 손님 응대였다. 보통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물량들을 세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손님들이 요청하는 것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찾아주고 동료 직원들과 살 부대끼며 웃으며 일하는 것이 office work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직원과 손님 모두 외국인이어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너무 좋았다. 그렇게 또 몇 시간 만에 빨리 적응한 내가 대견하기도 하였고, 역시나 스토어에 신청했던 선택은 너무 잘한 일이였다.


[Forever 21 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우리 부서의 큰 규모가 큰 장점이 되어 주었다. 규모가 큰 만큼 부서 내에서 하는 행사가 많았다.

달에 몇 번씩은 꼭 pot luck을 하며 다 같이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기는 시간을 가졌고, 크리스마스 달에는 “Secret Santa”를 하여 서로서로 몰래 선물을 준비하곤 하였다. 나는 부사장님의 시크릿 산타가 되었는데 사실 선물 고르는데 꽤 힘들었다.


hristmas decoration contest

<Christmas decoration contest>


회사에서는 크리스마스 문을 꾸미는 대회도 열어 모든 부서의 문이 화려하게 한 달간 꾸며져 있기도 하였고, Thanks giving 때와 Christmas, New year 전날에는 점심쯤 무조건 일찍 퇴근하게 하여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점은 정말 한국이 닮아갔으면 하는 문화이다.

또한 내가 있을 때 경영주가 바뀌어서 기업의 흥망성쇠도 볼 수 있었다. 기업이 팔리기 전 현 상황을 직원들을 모아 솔직하게 말해주며 직원들 또한 눈치 보지 않고 궁금한 점을 여과 없이 자유롭게 질문하는 모습은 나에겐 조금 인상 깊었다. 결국 새로운 대표가 오게 되었고 새로운 경영주가 왔기에 부서마다 하게 되는 미팅과 회의에서 직원들과 소통을 하려 노력한다는 점 또한 흥미로웠다.


LA에서의 생활

[LA의 모든 것이 나에게 영감이었다.]

버스는 나에게 가장 좋은 생각의 장소였다. 옆자리에 앉아 인사하며 말 거는 귀여운 히스패닉 꼬마는 내를 스페인어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고, 벽화가 빼곡히 그려져 있는 멕시칸 동네를 보며 회색 건물이 주는 흐리고 차가운 빛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하였다.

나를 앞에 두고 그냥 지나가는 버스를 보며 생각했다. 지나간 것에 미련 두지 말고 바로바로 차선책을 찾으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 것이였다. 그걸 책임을 견디면 더 단단해 지지는 것 당연지사였다. 매번 지연되는 버스를 통해 인내를 배웠고, 운행하다 역주행하는 미국 지하철을 겪으며 우리나라의 시스템과 미국의 다른 점에 대해 항상 생각했다.

아는 사람도 연고도 없으니 외롭고 스트레스받을 때 혼자 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았다.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나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이곳에서 찾은 큰 재미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나에겐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전부 감사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룸메이트와 함께 차를 타고 다닐 때는 고속도로에서 차가 서는 일도, 전복당할 뻔도 하였고 차에 잔고장이 많아 항상 불안에 떨며 운전해 가곤 하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정비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생전 관심도 없던 차 내부에 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관심이 없던 분야들에 눈을 뜨게 해준 이곳은 내가 와보고 싶었던 넓은 세상이 맞는 것 같다.


[좋아하는 것 투성이]

LA에 살며 가장 좋은 점은 좋은 날씨에 예쁜 풍경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예쁜 구조물, 건물, 풍경들은 내가 한 번도 그려 본 적 없는 미래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윤곽을 그리게 해 주었다.

또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를 본고장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고, 내가 살았던 San Angelo에 사랑하는 친구들을 보러 갈 수 있었다. 너무 작은 도시라 한국에서 가려면 꼬박 하루를 걸려 도착하는 곳이라 교환학생을 끝으로 다시는 갈 수 없을 줄 알았다. 미국에 있기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내가 대견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소홀해 하지 않았고, 새로운 경험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다른 주로는 많이 여행하지 못했지만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며 4개월 동안 LA를 빼곡히 누렸다.


태어나서 처음 본 양귀비 꽃밭 / 내가 좋아하는 영화, LALALAND 촬영지 / 공원에서 사귄 친구들

<태어나서 처음 본 양귀비 꽃밭 / 내가 좋아하는 영화, LALALAND 촬영지 / 공원에서 사귄 친구들>


[애증의 미국]

미국에는 좋은 것들도 너무 많았지만 예쁘기만 한 꽃동산은 아니었다. 노숙자들투성이에, 개인주의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하고, 사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정말 미국이 선진국인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준 나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외국에서 혼자 산다는 것과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과 은행 등 살아가야 할 기반의 모든 것을 혼자서 해야만 했고 미국의 개인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터라 그리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일을 배우는 것 또한 아주 낯설었다.

상처를 받기도 서럽기도 하였지만 그랬던 과정이 있었기에 더 빨리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종료 후기를 끝으로

[원하지 않는 조기 종료이자 새로운 시작]

아쉬운 점이 있냐고 물으면 나에게 내일이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간 것이 가장 아쉽다.

나에게는 1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여유롭게 생각하며 3개월 차부터 생기는 휴가도 아직은 쓰지 않고 계획했던 여행을 위해 아껴 놓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계획했던 것들을 뒤로한 채 중도 포기를 하고 돌아오는 결정은 정말 쉽지 않았다. 자가 격리를 하며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LA가 너무 그립다

내가 미국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진정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을 따라서 노트북 앞에서 자소서를 쓰고 있었다면 겪지 못했을 이 경험들이 너무 값지고 소중하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을 했던 소중한 시간들이다.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청년 인턴십 프로그램에 임하였는지 초심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체험수기 또한 너무 감사하다. 주변에 해외 취업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 한상청년인턴십 프로그램을 추천 해 주고 싶다.

친구들이 그랬다. “네가 해외인턴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자리잡은 주변 사람들을 보며 불안해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 지금은 그 대답을 할 수 있다. “응 자신 있어”.

미국에 다녀온 지금 나는 나의 선택을 믿어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심지가 곧은 사람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준 한상인턴 프로그램에 나는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아쉬웠던 만큼 또 다른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그만의 후기를 써 내려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