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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선택, 경험하지 못할 순간
기업명
COSMAX
국가
담당업무
업무보조
작성자
장범진
기수
상시
작성일
2020.12.08

“부딪히면서 배워보자“

대학원 진학을 앞둔 나에게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필수였다. 어려서부터 해외에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상황이 쉽지 않았고, 늘 고민거리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과학고, 공대를 나와서 일상적인 영어를 쉽게 접해볼 수 있는 상황이 없었다. 대학교를 수료한 상황에서 교환학생은 힘든 조건이었고, 어학연수나 영어를 배울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학교 홈페이지 채용에서 해외 인턴에 관한 글을 보았고, 지원하게 되었다. 사실, 인턴십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갈등이 있었다. 25살의 절반이 지나간 나에게 인턴십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1년 못해도 6개월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아까운 시간은 아닌지 고민을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 했을 때 이때까지의 농도있는 6개월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는 절실했던 상황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집에서는 보증금을 써서라고 갈 것이냐는 물음에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고, 나는 2달도 안되어서 한국을 뜨게 되었다.

2달의 준비시간은 간단했다. 회사 선택, 서류 준비, 인터뷰, 비자 면접 그리고 출국. 여유가 없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인턴 종료 이후를 생각해서 시간이 늘어지지 않게 빠듯하게 준비했다. 생명공학과 전자전기 전공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회사의 리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선택은 미국 동서부를 떠나서 화장품 계열의 회사를 선택했고, 이유는 한국에 와서도 이력에 적었을 경우, 알 수 있는 회사를 선택했다. 그렇게 운 좋게 첫 번째 선택한 회사에 합격을 하고, 빠르게 출국을 했다. 중간에 국내 인턴을 하느라 조금 빠듯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 준비해서 출국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6개월간의 인턴 기간은 시작되었다.


인턴의 업무

“인턴은 인턴“

경우의 따라, 다르지만 인턴에 대한 환상은 없다는 것을 느꼈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인지 사진도 먼저 예쁘고, 로망 가득한 일상보다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상 인터뷰에서 “매일 비커를 닦고, 이러한 잡다한 일도 매일할 수 있어요?” 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고 했으며, 나도 들었다. 어떠한 일인지 모르지만 당연히 나는 그렇다고 답을 했다. 생각을 해보면, 나도 출발 직전에 미국 인턴일에 대해 환상이 많았던거 같다. 여기저기 전화오는 상황, 그리고 고객을 만나거나 이런 일을 하며, 여기저기 출장을 간다던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인턴은 인턴이다. 직원의 업무보조를 하는 일을 해야한다. 연구소라는 특성상, 실험기구에 대한 준비 및 원료 재고 확인 등 화장품 회사라면, 상상할 유명한 브랜드의 화장품을 뚝딱 만들어서 내놓고 쓰는 일은 인턴의 업무는 아니다.


샘플들

인턴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들은 말은 인턴이 하는 기본적인 일이 없으면, 회사에서 돌아가는 큰 일에 지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기본적이 원료와 부자재가 없으면 할 수 있는 없는 말이다. 그렇기에 이런 부분에서 늘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은 원료에 대한 주문이 밀려, 화장품 제작에 1~2주 정도 밀리는 상황이 생겼다. 이처럼 정말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을 하는 것에 인턴 업무가 배정되게 된다. 파운데이션 팀이라 가끔씩 실제로 파운데이션을 만들어보았다. 또한 흔히 말하는 파운데이션 호수(색상)을 만드는 일도 하였다. 피부에 직접 발라가며, 발현되는 색상을 맞추어 가는 과정도 진행했다. 그래서인지 시작할 때, 화장품을 손에 덕지덕지 묻히는 일을 멀리했것과는 달리, 지금에 와서는 그냥 바르고 지우면 괜찮아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뿐만 아니라 실제 화장품 가게에서 유명한 회사의 화장품이 왜 유명한가 라는 궁금함에 발라보기도 한다.


“할로윈 콘테스트 3등“

미국이라는 근무환경에 맞게, 과도한 업무는 없었다. 상황에 따라 야근을 하는 인턴도 있었지만, 나는 회사 업무는 업무시간에 다 해보자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고, 6개월간 인턴을 하면서 야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업무에 대해서도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가 힘들다는 생각은 쉽게 해본 적이 없었다. 가장 큰 근무 환경이라면, 미국의 문화라는 것이다. 가끔은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기도 하고, 미국의 문화를 배우기도 한다. 또한 회사 차원에서 시행하는 경연도 있었다. 9월에 일을 시작해서, 10월, 11월, 12월에 할로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회사에서 10월에는 할로윈 콘테스트를 하였고, 코스튬 혹은 분장을 하고 출근을 하였다. 나도 이번기회 아니면 언제 해보냐는 생각에 게임 캐릭터인 슈퍼마리오 분장을 하였고, 운이 좋게도 외국인들 사이에서 3등을 했다. 인턴이자, 미국 문화 행사에서 그렇게 상을 받으니 기분이 새롭기도 하고, 언제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추수감사절

11월에는 추수감사절 기념으로 냉동 터키를 받았으며, 12월에는 어글리 스웨터라는 크리스마스시즌에 못생긴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행사에도 참여했다. 회사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행사를 열어주었고, 그에 맞게 다들 잘 참여해주어서 나도 이를 잘 즐길 수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회사는 뉴저지 주에 있었지만, 버스 한 번이면 바로 뉴욕 맨하탄에 나갈 수 있었고, 뉴욕에서 하는 행사를 참여했다. 할로윈 퍼레이드, 메이시스 퍼레이드, 크리스마스 트리 등 보면서 미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관광지로도 유명한 뉴욕을 주말마다 왔다 갔다 하면서, 남들은 하루에 여러 개 보는 것들을 하루에 하나씩 길게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값진 경험이었다.


미국

“이게 미국이구나“

인턴 기간 중에 느꼈던 생각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라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자유로운 구사와 완벽한 것이 아닌 나라마다의 악센트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완벽한 발음을 구사하려고 하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그걸 무서워했던 나의 생각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발음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문법과 순서가 중요시 된다는 것을 체감하고 배워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말 한 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기본적인 문장이 습관적으로 써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들에도 구체적인 차이가 있구나 라는 걸 알았다. will 이라는 용어와 be going to 라는 용어는 “(미래에) ~할 것이다”라고 알지만, 실제 쓰임에 있어서는 will은 의지를 가지고 할게 라는 뜻이고, be going to 는 할 것 같다라는 예상의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앞으로 내가 영어를 배워가는 큰 하나의 방법을 배웠다.

휴가철에 미국 여행을 준비하던 중, 미국에서 잠시 살았던 사촌누나와 연락하면서 그간 인턴 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여행이라는 점이다. 사촌누나는 52주가 1년이니 인턴을 하면 매주 다른 주로 여행을 가보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휴가동안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엔젤로스를 다녀오면서 미리 유명한 곳도 가 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점에서 미리 휴가를 쪼개서 가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다. 한국에서 오가면 못해도 직항으로 80이 넘는 금액이 여기서는 국내선으로 잘 구하면 20만원정도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 인턴에서 가장 좋은 기회는 미국을 여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무리하며”

사실 영어라는 단 하나의 목적만 보고 왔지만, 생각하는 목적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6개월이었다. 그간 살면서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그걸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작년 학교 홈페이지에서 해외 인턴 채용을 본 그 순간은 아마 지금까지의 삶을 크게 바꿀 수도 있으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생활에 있어서 지원금을 받으면서 생활해서 조금더 안정적인 해외 생활이 아니었나 하며 재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다. 영재교육원, 과학고, 대학교 전액장학금, 해외 지원금을 받으면서 항상 무엇인가 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이 있었고, 좋은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내가 가진 직업이던, 여유로운 자금이던 남에게 좋은 기회를 주는 내가 되어보자고 생각했다. 6개월의 해외 생활이 끝나 귀국하게 되면 이런 마음가짐 까먹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