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한상넷 로고한상넷

전체검색영역
기회를 잡았다면, 길을 만들어라
기업명
Hojunara
국가
담당업무
미디어 콘텐츠 제작, 현지 뉴스 기사 번역
작성자
황예송
기수
3기
작성일
2019.04.25

“빠뜨린 거 없지?”


집을 나서기 전에 엄마가 물었다. 빠뜨린 게 있을 리가. 지난 3일 내내 살피고 또 살폈다. 목록을 작성해 둔 종이가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들여다 보며 캐리어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륙 시간은 오후 3시 45분이었지만, 집은 나선 건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짧게는 6개월, 어쩌면 1년이 될지도 모를 이 긴 여정에 한껏 들뜬 나는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2016년 여름이었다. 아니, 호주는 겨울이었다. 내가 호주 멜버른에 처음 발을 디딘 날 말이다. 대학교의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으로 멜버른에 갔던 그때만 해도 호주에서의 내 삶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내가 언제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땅을 떠나 살아보겠냐며 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따뜻한 날의 호주 생활은 얼마나 더 좋을까…


두 달은 너무 가혹했다. 아쉬운 마음에 더 달콤하게 느껴졌던 호주 생활은 항상 내 마음 속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나 보다. 휴학을 하고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일상을 보내던 중, 만원 지하철에서 핸드폰도 꺼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고 있을 때 작은 지면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상 기업 청년 인턴십’ 광고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그 광고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오직 나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마치 영화처럼 나와 그 광고 위에만 조명이 켜진 것 같았다. 심지어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했다. 급하게 눈을 굴려가며 읽어보니 해외로 인턴을 파견하는 국가 프로그램에 관한 광고였다. 나는 마지막까지 한 글자라도 더 보려고 노력하다가 ‘한상기업’이라는 단어만 되뇌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렇게 나는 한상 인턴이 되어 그 달콤했던 호주로 다시 돌아왔다. 기업 목록을 훑어보던 내 눈에 다른 나라는 들어오지 않았다. 학과 선배들을 보면 매년 한두 명씩은 미국으로 인턴을 하러 가곤 했는데, 그래서 ‘해외 인턴=미국’이라는 공식이 머리에 박혀 ‘해외 인턴도 돈이 많아야 가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꿈만 같았다.



호주나라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 사진

호주나라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



“안녕하세요? 호주나라 인턴 황예송입니다”


나는 호주 최대 한인 커뮤니티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호주나라’라는 회사에 미디어 업무 담당자로 파견되었다. 면접을 볼 때 내가 공모전이나 과제로 만든 영상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추후에 관련된 자료를 대표님 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회사의 미디어팀에 ‘막내’로 들어가 미디어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도울 거라 예상했다. 내가 호주에 도착한 첫날부터 정식 출근을 하기 전까지 가장 많이 한 일은 호주나라 홈페이지에 수시로 들어가 미디어 섹션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 섹션은 이런 걸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 섹션은 이렇게 하면 활성화가 되겠네’하는 내 생각들을 하나하나 적어 나갔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호기롭고 열정 넘치는 막내’로서 스스로 자처한 일이었다.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을 안고 첫 출근을 했는데, 왠 걸, 내가 상상한 미디어 팀에는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나에게 주어진 첫 업무는 현지 뉴스 기사를 번역하는 거였다. 뉴스 기사를 채택하고, 번역하고, 컨펌을 받으면 워드프레스를 이용해 웹사이트에 올리고, 그걸 호주나라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하면 됐다. 


나는 번역이라고는, 특히나 뉴스 번역은 전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했고, 긴장했다. 그래, 지금도 내 인턴생활의 시작을 떠올리면 긴장감이 피어 오른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영화 스크립트나 소설책을 번역해도 힘들 것 같은데, 의미만 통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딱딱한 기사용 어투까지 더해야 하는 뉴스 기사는 내게 너무 멀게만 느껴졌고, 그래서 서툴렀다. 하루에 몇 개의 기사를 번역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업무가 고작 그거 하나인데 하루 종일 앉아서 해낸 ‘업무’의 결과가 기사 3개 뿐이라는 건 너무 자존심이 상했고, 내가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눈이 빠져라 열심히 타자를 두드렸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2주가 지났다. 딱 2주가 지나니까 더 이상 컨펌을 받지 않고 기사를 올려도 될 정도가 되었다. 하루에 번역하는 기사의 개수도 훨씬 늘었고, 퀄리티도 높아졌다. 어떤 기사가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은지, 제목은 어떤 식으로 수정하면 좋은지, 바이럴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대충 감이 잡히는 시기였다.



호주나라 홍보영상

호주나라 홍보영상



“예송씨, 우리가 홍보 영상이 없는데…”


기사 번역에 조금 익숙해지던 즈음, 나에게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다. 회사 홍보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영상 만들러 온 거지. 그렇게 생각했다. 딱히 정해진 컨셉이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없었다. 그냥 홍보 영상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기한도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맘껏 하면 되는 거였다.


정확히 2주 만에, 호주나라 홍보 영상이 완성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우리 회사를 최대한 홍보할 수 있는 영상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일단 촬영은 할 수 없었다. 장비도 없었고, 무엇보다 시드니를 위주로 운영되는 회사의 사무실이 멜버른에 있었기 때문에 촬영할 거리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이폰6 광고’를 패러디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아이폰 광고 원본 영상과 함께 보고를 드렸더니 ‘오케이’가 떨어졌다. 그때부터 영상에 들어가야 할 내용과, 그에 맞는 수많은 문구와, 소스로 사용 될 이미지며 영상이며 하는 것들을 작업하고 에프터이펙트로 본격적인 편집에 들어갔다.


영상을 만들면서 ‘자발적인 야근’이라는 것도 해봤다. 그래도 즐거웠다. 번역 일도 병행하면서 하는 거라 편집에 투자하는 시간은 하루에 두 시간에서 많으면 세 시간,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감칠맛이 났다. 그러다 보니 영상이 거의 완성될 단계에서는 좀 섭섭해졌다. 이 일이 끝나면 나는 다시 하루 종일 번역만 해야 하나?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인턴 국내 사전 교육 때 매니저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신흥국가가 아닌 선진국가로 파견되는 인턴들은 어쩌면 상상한 것만큼의 업무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또 정직원으로 뽑힐 가능성도 극히 희박하기 때문에 인턴 기간 동안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어진 업무만으로 6개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스토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그래서 나는 남은 5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스스로 업무를 만들고, 미래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력서에 ‘해외 인턴’ 한 줄을 적기 위해 이 6개월을 보내는 것보다, ‘해외로 인턴 가서 무슨 일 하다 왔어요?’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6개월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주 수요일 오전,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모습

매주 수요일 오전,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모습



“호주나라 팟캐스트를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회식 자리였다. 대표님과 이사님이 다 계신 자리에서 ‘호주나라 팟캐스트’를 제안 드렸다. 호주 최대의 한인 커뮤니티 웹사이트인 만큼 호주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용이하고 흥미로운 정보로 구성된 팟캐스트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였다. 


일주일에 한 번, 팟캐스트 음성파일 한 개와 짧은 미리보기 영상 한 개를 만들어 업로드 하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반응이 좋았다. 다음주까지 팟캐스트 주제 10가지를 포함한 기획서를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하루 종일 번역만 하던 내 업무 일과는 이렇게 바뀌었다. 월~화요일 오전은 팟캐스트 대본을 짜고, 수요일 오전엔 녹음을, 목~금요일 오전엔 편집을 하고 금요일 퇴근 전에 완성물을 업로드 하는 것. 나머지 시간엔 기사 번역을 했다. 


뭔가를 기획하고, 기획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거기에 예산(이사님이 사연 당첨자에게는 영화 상품권을 보내주기로 하셨다)이 들어가고 하는 것들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기대했던 것처럼 반응이 없어서 심란했지만, 점차 구독자도 늘어가고 댓글도 달리는 것을 보니 뿌듯했다.



글로벌 한국 문화 축제 ‘KCON’에서 관객들을 취재하는 모습

글로벌 한국 문화 축제 ‘KCON’에서 관객들을 취재하는 모습



“그러면 프레스카드 신청해줄까?”


그렇게 인턴 생활을 한지 두 달 정도가 흘렀을 때 나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CJ E&M에서 주관하는 한국 문화 축제 KCON이 2017년의 마지막 행사지로 호주 시드니를 선택하면서 호주나라가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KCON에 가고 싶어서 비행기표와 숙소를 잡아 놓은 상태였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대표님이 ‘기자증’을 신청해주셨고 KCON 측에서 정식으로 초청 메일을 보내왔다. 그렇게 나는 취재진 자격으로 KCON에 참석할 수 있었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행사 중 내가 초대를 받은 날은 금요일이었다. 대표님께서는 당연히 금요일 출근을 출장으로 빼주셨고, 나는 목요일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공항으로 달려갔다. 저녁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정신 없이 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비행기를 타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내 마음은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호주 멜버른이라는 타지에서 시드니라는 또 다른 타지로, 그것도 ‘출장’으로 이런 여정을 떠나는 것은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도착한 행사장은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현지인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계절에 맞지 않게 특히 무더웠던 날씨도 한 몫 했다. 그 열기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사실 별 거 없었다. 함께 초청을 받은 다른 미디어팀들과 모여 KCON 행사를 조금 관람하다가, 저녁 콘서트에 초청된 아티스트들의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그 콘서트를 관람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주최 측이 바라는 것은 딱히 없었다. 


그냥 잘 관람하다가 후기 같은 것을 ‘써줬으면’ 하는 거였다. 대표님도 그랬다. 재밌게 즐기다가 별 탈 없이 돌아와 출근하는 것. 그래도 바라는 게 있다면 기왕 (우리 회사의 베이스 도시인)시드니까지 갔으니 시드니에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을 좀 찍어왔으면 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명색이 기자증도 받았는데…’라고 생각했다. ‘기자증’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기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취재권을 부여하는 ‘마스터카드’가 아닌가. 그래서인지 기자증을 목에 걸고 구경을 하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이 카드를 이렇게 버릴 수 없다. 큼지막하게 PRESS라고 적힌 이 카드를 내 평생 언제 또 받아보겠나.


그래서 나는 정말로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 레드카펫 행사를 기다리는 사람들, 아티스트와의 하이터치를 기다리는 사람들, 다른 행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무작정 인터뷰를 시도했다. 사실 다가가기 전까지 너무 부끄럽기도, 또 두렵기도 해서 많이 망설였지만, 핸드폰 메모장에 간단한 질문지를 작성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후 어렵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사람들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줬고, 인터뷰는 물론 사진 촬영까지 허락했다.



직접 작성한 호주나라 취재 기사

직접 작성한 호주나라 취재 기사



행사 이후 이틀 간의 여행을 마치고 멜버른에 돌아온 나는 곧바로 기사를 썼다. 인터뷰를 녹음한 음성 파일을 들으면서, 그 열기를 전부 담을 수 없었던 사진들을 보면서, 그렇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사’가 완성되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호주나라가 추천하는 시드니 맛집 1탄, 시티편>, <호주나라와 함께하는 시드니 여행 영상>, <호주나라가 추천하는 시드니 맛집 2탄, 여행지편>, <호주에서 꼭 쟁여야 하는 주전부리 TOP8>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호주나라가 추천하는 시드니 맛집 1탄, 시티편>, <호주나라와 함께하는 시드니 여행 영상>, <호주나라가 추천하는 시드니 맛집 2탄, 여행지편>, <호주에서 꼭 쟁여야 하는 주전부리 TOP8>



“도대체 얼마나 찍어 온 거니…?””


내가 시드니에 가서 얻어 온 건 소녀들의 인터뷰나 아름다운 추억뿐만이 아니었다. ‘명색이 기자증도 받았는데’라는 생각이 내 욕심을 건드려 기사를 만들어냈다면, 이번엔 ‘기왕 시드니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이 욕망을 건드려 영상을 만들어냈다. 


내 눈에 담은 것은 무엇이든, 내 입으로 들어간 것은 무엇이든 내 핸드폰 카메라에도 담겼다. 다시는 올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편집을 할 때 ‘이런 걸 좀 더 찍어 올 걸’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이 출장의 주 목적은 사실 여행이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열심히 녹화 버튼을 눌러댔다.


그렇게 나는 시드니에서 담아 온 영상들(그리고 마지막 달에는 호주 전역에 있는 마트 체인점에서 새롭게 촬영을 했다)을 가지고 한 달에 하나씩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영상 편집에 투자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전에 하던 업무의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 하루 일과는 정말 빠듯해졌다. 출근하자마자 연합뉴스(호주나라는 한 달에 40개의 연합뉴스 기사를 올릴 수 있도록 계약이 되어 있다) 하나를 올리고 바로 팟캐스트 작업을 하다가 점심 먹기 전에 기사 한두 개를 끝낸다. 점심을 먹고 오면 다시 연합뉴스를 하나 올리고 세 개 정도의 기사를 번역한 뒤 바로 영상을 편집한다. 이것이 내 일과였다. 누가 지정해준 것이 아닌, 내가 만든 업무 일과였다.



왼쪽부터 주말에 리틀펭귄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 골드코스트에서 휴가를 즐기는 모습

왼쪽부터 주말에 리틀펭귄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 골드코스트에서 휴가를 즐기는 모습



6개월은 너무 짧았다. 아니, 실은 긴 시간이다. 하지만 단 몇 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다 보니 눈 깜빡 할 사이에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 6개월의 끝자락에 와 있더라.


처음에 한상인턴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일단 붙었으니 어떻게든 6개월을 보내고 나면 인턴이라는 경력이 생길 것이고, 그걸로 된 줄 알았다. 그래, 나는 그렇게 욕심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정해진 것은 6개월이라는 시간뿐, 그 안에서 길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누구도 정해주지 않고, 누구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내가 한상인턴 프로그램에 감사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내 길을 개척할 사람은 오직 나라는 사실을 체험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준 것. 

이 간단하고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나는 호주 멜버른에 와서 인턴생활을 하며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앞으로의 내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회를 잡았다면, 길을 만들자.